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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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리아] 4대 금융지주의 주주총회가 지난주 모두 마무리됐다. 지배구조 개선 이슈가 이번 주총 시즌의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지만, 결국 4대 금융 이사회 구성에 큰 변화는 없었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KB·하나·우리금융 등 4대 금융지주사는 지난 23~24일 정기 주주총회를 마무리했다. 이번 주총 주간에는 신규 회장 및 사외이사 선임 등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해 굵직한 안건이 논의됐지만, 모두 별다른 반대 없이 통과됐다.

지난 23일 가장 먼저 주주총회를 연 신한금융은 곽수근·배훈·성재호·이용국·이윤재·진현덕·최재붕·윤재원 등 8명의 사외이사를 모두 유임했다. 퇴임한 사외이사 3명의 자리에는 신규 사외이사를 추천하지 않았으며, 이로 인해 전체 사외이사 수는 기존 12명에서 9명으로 감소했다. 

24일 주주총회를 연 KB·하나·우리금융 또한 사외이사 선임 안건이 모두 통과됐다. KB금융이 권선주 사외이사를 재선임하고 여정성·조화준 사외이사를 신규 선임하면서 국내 금융지주사 최초로 3명의 여성 사외이사를 배출한 것이 관심을 끌었을 뿐, 대부분 '변화'보다 '안정'에 무게를 둔 이사회 구성을 완료했다.

올해 4대 금융지주 사외이사 중 28명이 임기가 만료됐지만, 새로 추천된 사외이사 후보는 7명에 불과했다. 4대 금융지주 전체 사외이사 30명 중 신규 사외이사 비중은 23%에 불과하다. 과거 채용비리, 부실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 등과 관련해 경영진에 대한 감시와 견제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사외이사들이 대거 유임되면서, 사실상 이사회 구성이 그대로 유지된 셈이다. 

지난 주총 주간에 앞서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는 신한·하나·우리금융 지주의 기존 사외이사 연임 안건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힌 있다. 과거 라임·DLF 사태 및 채용비리 등의 문제에 대한 직·간접적 책임이 있는 만큼, 이들의 유임 자격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 국민연금 또한 신한금융 진옥동 회장 선임 안건 및 하나·우리금융 사외이사 연임 안건에 대해 감시 의무 소홀 등을 이유로 반대표를 던졌다. 

하지만 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금융지주사 이사회 구성이 그대로 유지되면서 ‘거수기’ 이사회 논란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4대 금융지주사의 지난해 ‘지배구조 및 보수체계 연차보고서’를 살펴보면 이사회에서 주요 안건에 반대표를 던진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실제 지난해 4대 금융 이사회에는 총 128건의 결의안건이 논의됐지만, 사외이사가 반대표를 던진 경우는 단 4건에 불과하다. 신한금융에서 3건의 반대가 나왔으며, 우리금융에서는 1건의 반대가 나왔다. KB·하나금융에서는 사외이사가 결의안건에 반대한 경우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정부는 소유구조가 분산된 ‘주인 없는 기업’의 지배구조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며, 통신사를 비롯해 금융지주를 대표적인 개혁 대상으로 꼽은 바 있다. 실제 금융위원회는 지난 1월 30일 업무보고에서 금융사 임원 선임 절차의 투명성과 합리성을 제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윤석열 대통령 또한 이날 업무보고에서 “소유가 분산돼 지배구조에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일어날 수 있는 경우에는 절차와 과정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해줘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금융당국은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들의 ‘셀프 연임’ 관행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뚜렷하게 밝혀 왔다. 이러한 영향 때문인지 올해 8개 금융지주사 중 신한·우리·NH농협·BNK 등 4개 금융지주사는 CEO를 교체했다. 조용병(신한)·손태승(우리) 등 연임이 확실시됐던 기존 CEO들도 세대교체를 이유로 용퇴를 결정했고, NH농협금융도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을 신규 회장으로 선임했다. 

하지만 셀프 연임의 토대로 지목되는 ‘거수기’ 이사회가 구성이 바뀌지 않고 거의 그대로 유지되면서 금융지주사 지배구조 개편이라는 금융당국의 정책 목표가 무색한 상황이 됐다. 

반면, ‘거수기’라는 비판은 지나치다는 반론도 나온다. 김우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발표한 ‘국내 은행지주의 거버넌스 이슈 및 개선방안’ 보고서에서 “안건 대부분은 이전에 개최된 정기이사회들을 통해 반복하여 논의되기 때문에 이미 이사 상호 간에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사안”이라며 “무엇보다도 사외이사 중심의 이사회 제도가 정착된 이후 경영진은 통과될 가능성이 낮은 안건의 경우 부의 자체를 꺼리게 되었다. 보고할 사안이 있는데 이사회에 상정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문제의 소지가 있는 경영활동을 애초부터 추진하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다만 김 연구위원은 이사회의 독립성을 제고할 필요는 있다며 미국 사법부의 배심원 제도를 참고할 것을 제안했다. 미국에서는 배심원들이 재판을 통해 충분한 정보를 습득한 후 최종판결 전서 배심원들만의 비공개회의를 열고 토론을 진행하며 합리적 의견을 도출한다. 

김 연구위원은 “만약 인수·합병과 같이 회사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 사전에 이해와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진행되다가 마무리 단계에서 안건으로 상정되고 이사회는 지엽적인 문제만 논의하는 상황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며 “이를 위해 사외이사만의 비공개 간담회의 정기개최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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