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나라 기후사회연구소장
한빛나라 기후사회연구소장

[이코리아] 인류는 이미 기후위기 시대를 살고 있다. 기후위기는 더 이상 북극곰만의 문제도, 미래세대들만의 문제도 아니다. 그 누구도 기후위기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기후위기의 피해는 공평하지 않다. 기후위기가 취약한 환경에 놓여 있는 이들에게는 생존과 인권의 문제가 됐다.

우리나라 탄소중립 기본법에는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는 물론이고, 대응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평등까지 최소화하는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방안을 마련하도록 규정했다. 그렇다면 기후 위기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코리아>는 24일 기후변화가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에 대해 한빛나라 기후사회연구소장으로부터 답을 들어봤다. 

◇ 기후사회연구소는 어떤 단체입니까.

기후사회연구소는 기후와 관련한 사회적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설립된 씨엔씨티(CNCITY)마음에너지재단 부설의 비영리 민간 연구소입니다. 

◇ 어떻게 기후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기후 이슈와 관련해 어떤 개인적인 깨달음을 얻은 사건이나 그런 일이 있었나요? 

처음부터 관심이 많아서 이 분야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기보다는, 이 분야의 일을 하면서 관심을 많이 갖게 됐습니다. 저는 공익 부문에 제 커리어를 헌신하고 싶었고 그래서 NGO에서 일을 하게 됐는데, 그곳이 기후 전문 NGO였던 것이죠. 일을 하면서 기후변화의 중요성에 비해 사회적 관심이 저조하다는 걸 느끼고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2010년대 중반에만 해도 기후변화 이슈의 사회적 측면에 대한 연구가 매우 미흡했어요. 대기온도가 몇 도 오르고, 해수면이 몇 센티미터 상승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우리 사회에,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잖아요. 제가 박사과정에서 사회인류학을 공부했는데, 기후변화와 관련한 사회적 영향과 대응에 대한 연구가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2018년에 기후사회연구소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 소장님이 ‘정의로운’ 맑은 공기 관리 방안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한 걸 봤습니다. 대기관리를 정의롭게 한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에너지 분야와 같은 온실가스 배출 산업에 대기관리 책임을 더 무겁게 져야 한다는 뜻입니까?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19년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7백만 명이 대기오염으로 조기 사망했다고 합니다. 주로 고령자, 기저질환이 있는 병약자, 어린이, 저소득 취약계층이죠. 그래서 우리는 맑은 공기를 숨 쉬지 못하는 취약계층, 소외계층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관심이 많죠. 그런데 맑은 공기를 위해 도입한 정책들이 거꾸로 불평등과 사회적 격차를 확대한다는 사실은 잘 보지 못합니다. 

온실가스와 미세먼지 없는 맑은 공기를 위해서 도입한 대표적인 정책으로 도시 녹화가 있죠. 나무를 심으면 대기 중 탄소 흡수도 하고, 공기정화도 하고, 열섬현상도 줄이고 다양한 메리트가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녹화 정책이 ‘그린 젠트리피케이션(green gentrification)’을 유발하기도 한다는 겁니다. 나무를 심었더니 의도치 않게 부동산 개발업자들이 모여들어 부동산 가격이 오르고, 결국 높은 주택 가격을 부담하기 어려워진 원래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떠나게 되더라는 거죠. 미국에서는 나무를 한 그루 심을 때마다 131달러의 가격 프리미엄이 붙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우리가 대기오염을 줄이고 온실가스를 저감하기 위해서 석탄발전소를 폐쇄하고 있는데요, 그러면 오랫동안 석탄발전소가 내뿜는 대기오염물질로 피해를 봐온 지역주민들이 너무 좋아하실 것 같죠? 그런데 그렇지가 않더라는 겁니다. 오히려 발전소가 지급하던 주변 지역 지원금을 못 받게 되고, 또 생계가 위태로워 질까봐 걱정하는 주민들이 대다수입니다. 이분들에게는 발전소의 대기오염물질보다 탈석탄 정책이 당장 더 큰 피해로 다가오는 것이죠. 

이처럼 맑은 공기를 위해서 좋은 의도를 가지고 도입한 정책이 거꾸로 취약계층의 피해를 확대하고, 사회적 격차를 심화하는 아이러니를 야기하기도 합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취약계층을 더 소외시킨 측면이 있는 것이죠. 이러한 맥락에서 맑은 공기도 좋지만, ‘정의로운’ 맑은 공기 관리 방안은 무엇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 탄소배출 산업에 벌금을 물리는 방식만으로는 답이 안 나와요. 결국 전환비용이 화두인데, 자발적인 기금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세계경제포럼(WEF)에서도 기후 이슈와 관련 자선재단의 펀드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습니다. 

그간 우리가 열심히 펀드레이징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여유와 신념이 있는 사람들이 펀드를 모아서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 힘쓰는 것도 이 논쟁에서 브레이크스루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결국 우리는 기후위기에 있어 한 배를 탔기 때문에 모든 사회이해관계자들이 노력을 해야 합니다. 

기후사회연구소가 지난 2020년 발간한 보고서
기후사회연구소가 지난 2020년 발간한 보고서

◇탄소중립의 골자는 저탄소 에너지 전환인데요. 최근 ‘정의로운 전환’이 이슈로 떠오르는데, 정의로운 전환과 탈탄소가 함께 갈 수 있을까요? 

분명한 것은 정의로운 전환과 탈탄소는 서로 배치되는 개념이 아니라는 겁니다. 정의로운 전환에는 조건이 있어요. 정의로운 전환은 탈탄소를 빠르게 실현한다는 전제 하에 필요한 정책입니다. 거꾸로 말하면, 탈탄소의 과정이 빠르지 않으면 불필요하지요. 탈탄소 해서 깨끗하고 건강한 환경에서 살자는데 누가 싫다고 하겠어요? 제로탄소 기술이 충분히 성숙해서 고탄소 산업이 자연도퇴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다면 탈탄소 과정도 순조롭게 진행되겠지요. 

문제는 우리 사회가 빠른 탈탄소를 요구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다보니 미처 준비하지 못한 사람과 산업군이 있는 것이고, 이해관계의 충돌이 발생합니다. 정부가 이들을 지원해야하는 공적인 의무가 발생하는 것이죠. 다시 말하면, 정의로운 전환은 탈탄소가 충분히 빠르게 이루어질 때 필요한 정책이고, 그것이 정의로운 전환의 전제조건입니다. 

정의로운 전환은 탈탄소와 배치되는 개념이 아니라, 정반대로 탈탄소를 빠르게 그리고 순조롭게 추진하기 위한 정책의 일환입니다. 탈탄소 과정에서 피해를 볼 수 있는 노동자와 지역사회를 지원해서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과 비용을 최소화하고, 이로써 순조로운 전환을 가능케하는 저탄소 전환의 가장 핵심적인 대책입니다. 정의로운 전환 없는 탈탄소는 실현이 불가능하고, 탈탄소 없는 정의로운 전환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서로 함께 갈 수 있냐 없냐’라는 문제는 성립하지 않는 것이죠. 운동회 때 했던 ‘이인삼각 달리기’처럼 반드시 서로 함께 가야 하는 분가분의 관계입니다. 

◇기후 관련 일을 하면서 느낀 가장 큰 벽이라면 뭐가 있을까요. 

사람들과 연구정보를 공유하는 데 있어 합리적 데이터 이상의 무언가로 다가가지 못하는 한계를 자주 경험합니다. 전통적으로 연구의 영역에서는 합리성과 객관성만이 중요하고, 감성의 영역은 철저히 배제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객관적 연구 데이터로 무장한 합리적 정책이 때로는 완벽한 실패로 끝나기도 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기 때문이죠. 

사람들은 이성뿐 아니라 감성, 즉 마음과 감정이 모두 동할 때 지지를 보내고 행동을 변화시킵니다. 저는 탄소중립 정책의 확산이 더딘 데는 정책연구자와 설계자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관심이 적었기 때문인 이유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연구의 영역에서 이성과 감성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까 늘 고민합니다. 

◇ 한국사회에서 탄소중립 실현에 있어 가장 시급한 것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정치가 바뀌는 것이 가장 시급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장기적 비전을 실현하는 정치가 돼야 합니다. 물론 정치인과 정부가 바뀌려면 사회적 관심과 요구가 높아야 하지요. 한국에서는 탄소중립, 기후대응, 지속가능성이라는 토픽이 다른 현안에 묻히기 일쑤입니다. 당장 급한 정치·경제 이슈에 매몰돼 버리기 십상이죠. 우선순위에서 늘 밀려요. 결국 정치를 바꾸려면 탄소중립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더 필요합니다. 

탄소중립을 위한 다양한 기술과 시장을 활성화하려는데 제도의 벽이 너무 높다는 지적이 많지요. 관료주의를 타파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규제를 개혁해야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가 싹틀 수 있잖아요.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인과 정부가 움직여야 합니다.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한 장대한 계획을 세우려면, 당장의 현안만 바라보기보다 10년 후, 20년 후를 바라보는 ‘장기적 시선’과 함께 한국을 넘어 국제사회를 바라보는 ‘지구적 시선’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 시장을 리드하려면 변화하는 환경에 맞는 정책과 제도의 선진화가 필요하고, 이는 바로 정치의 선진화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 기후사회연구소의 향후 목표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사회적 목적, 사회적 가치를 제고할 수 있는 연구를 계속해야지요. 기후대응의 과정에서 우리 사회에 필요한 신선한 화두를 지속적으로 던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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