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6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한일 확대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6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한일 확대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윤석열 대통령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한일관계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일부 매체는 이번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 관계회복을 위한 첫걸음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과거사 문제를 제쳐 두고 지나치게 저자세를 취했다며 비판하는 매체도 적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일본에서 기시다 총리와 약 1시간 반가량 정상회담을 갖고 한일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두 정상은 12년째 중단된 ‘셔틀 외교’를 재개하는 한편, 일본은 대(對) 한국 수출규제를 해제하고 한국도 일본에 대한 세계무역기구(WTO) 불공정무역행위 제소를 취하하기로 합의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공동 기자회견에서 “오늘 회담에서 저와 기시다 총리는 그간 얼어붙은 양국관계로 인해 양국 국민들께서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입어왔다는 데 공감하고, 한일관계를 조속히 회복 발전시켜 나가자는데 뜻을 같이했다”며 “외교, 경제 당국 간 전략대화를 비롯해 양국의 공동 이익을 논의하는 협의체들을 조속히 복원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이어 “미래세대가 교류하며 상호 이해를 심화할 수 있도록 양국 정부가 지원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는 점에도 서로의 생각이 일치했다. 이런 차원에서 오늘 양국 경제계는 '한일 미래 파트너십 기금'을 설립하기로 합의했다”며 “이번 기금의 설립이 양국의 미래지향적 협력을 위한 의미 있는 교류와 협력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준비하고 지원해 주시기를 당부드린다”고 덧붙였다.

◇ 한일 정상회담 보도 키워드는 'ICBM'?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운영하는 뉴스 빅데이터 분석시스템 ‘빅카인즈’에서 ‘정상회담’을 검색하자 지난 16일부터 17일까지 이틀간 총 1099건의 기사가 보도된 것으로 집계됐다. 한일 정상회담 관련 기사에 가장 많이 등장한 연관 키워드는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 등 양국 정상의 이름이었다. 그다음은 ‘공동 기자회견’, 한일 정상회담이 열린 ‘도쿄’ 등의 순이었다. 

ICBM(대륙간탄도미사일)도 연관 키워드 목록에 포함됐다. 북한은 한일 정상회담이 열린 16일 오전 7시 10분경 동해상으로 장거리 탄도미사일 1기를 발사했다. 언론은 북한의 갑작스러운 미사일 발사가 한일 정상회담을 견제하기 위한 조치라고 해석하고 있다.

한국일보는 16일 기사에서 “북한의 이날 ICBM 추정 탄도미사일 발사는 윤 대통령의 방일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며 “윤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일본과의 국방 협력을 논의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북한이 도발 카드로 응수한 셈”이라고 말했다.

‘강제동원’, ‘과거사’ 등의 키워드도 한일 정상회담 관련 기사에 자주 등장한 연관 키워드였다. 이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일본 측이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전혀 언급이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경향신문은 16일 기사에서 “기시다 총리는 강제동원에 대한 사과 등 과거사와 관련해 진전된 입장을 전혀 내놓지 않았다”며 “한·일관계 회복을 위해 일본에 강제동원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이 제기된다”고 보도했다. 

 

16~17일 보도된 한일 정상회담 관련 기사의 연관 키워드. 자료=빅카인즈
16~17일 보도된 한일 정상회담 관련 기사의 연관 키워드. 자료=빅카인즈

◇ 언론, “과거사 문제 해결 없는 한일 정상회담... 日 일방적 승리”

이번 정상회담 성과에 대한 언론의 평가는 극과 극으로 엇갈리고 있다. 진보 성향의 매체들은 일본이 과거사와 관련해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며, 정부의 대일외교가 일방적 양보에 그쳤다고 비판했다. 

경향신문은 16일 사설에서 “기시다 총리는 이번 회담에서 강제동원 생존 피해자와 다수 한국인들이 만족할 만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역대 내각의 역사 관련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한다는 기존 입장을 밝혔을 뿐”이라며 “한국이 일본에 일방적 양보를 한 뒤 이뤄진 이번 회담에서 윤 대통령이 일본으로부터 조금이라도 성의 있는 호응 조치를 이끌어낼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도 물거품이 됐다”고 말했다.

경향신문은 이어 “12년 만의 양자 차원 정상방문에서 두 정상은 ‘과거’를 몰각한 채 ‘미래’만 얘기했다”며 “미래를 지향한다는 이 조치들은 과거를 직시한다는 다른 한 축이 허물어진 상황에서 동력을 얻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한겨레 또한 이날 사설에서 “윤 대통령은 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한일 관계 악화를 2018년 한국 대법원 판결 탓으로 돌리며, 일본 기업에 구상권을 청구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면죄부’를 남발했다”며 “윤 대통령이 이날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발전적 계승’을 이야기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 선언에 일본의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가 담겼다는 것을 제대로 생각해 보기는 했는가”라고 반문했다. 한겨레는 이어 “두 정상은 이날 12년 만에 한-일 ‘셔틀 외교’를 복원하기로 했다며, 양국 관계의 ‘새 출발’을 강조했다. 그 출발선에서 일본은 과거사 사과 책임에서 벗어났고, 지소미아 복원 등 구체적 성과를 확보했다”며 이번 회담이 “일본의 외교적 압승”이라고 평가했다.

일본의 태도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동아일보는 17일 사설에서 “기시다 총리는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사죄 없이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계승한다’는 간접 표현으로 대신했고, 일본 측 피고 기업의 배상도 ‘한일 미래기금 참여’라는 우회로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며 “일본의 태도는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동아일보는 이어 “일본은 용서받을 기회를 또다시 놓쳤다. 과거사 갈등은 일단 접어뒀다지만 해결된 것이 아니다”라며 “봉합한 상처는 큰 응어리로 남을 것이고, 역사는 언제고 일본의 부끄러움을 추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언론, “이번 정상회담은 한일 협력 출발점”

반면 이번 회담으로 한일 양국이 관계개선의 첫걸음을 뗐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 매체도 적지 않다. 조선일보는 17일 사설에서 “징용 문제와 관련해 일본 측의 진전된 입장이 나오지 않은 것은 아쉬운 대목”이라면서도 “하지만 계속 과거에만 얽매일 수는 없다. 미래로 전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선일보는 이어 “이번 방일은 미·중 전략 경쟁과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 질서의 새판 짜기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이뤄졌다”며 “낙오하지 않으려면 자유·인권·법치의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우방과 공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앙일보도 이날 사설에서 이번 회담을 “미래로 함께 나아갈 출발점”이라고 평가했다. 중앙일보는 “일본이 윤 대통령 방일에 맞춰 셔틀 외교 복원에 합의하고, 반도체 3대 핵심 소재 수출 규제를 4년 만에 해제한 것은 의미가 작지 않다”며 “한·일 관계의 대표적 걸림돌이 사라져 양국의 교류 지평이 확장될 계기가 마련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중앙일보는 이어 “양국을 가로막아 온 과거사의 깊은 골이 정상회담 한 번으로 메워질 수는 없을 것”이라며 “그러나 이번 회담으로 두 나라가 불화로 얼룩진 과거를 매듭짓고, 미래 지향의 협력 관계로 나아갈 기틀을 다졌다는 점에선 점수를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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