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3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3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실리콘밸리뱅크(SVB) 파산 사태의 충격으로 당분간 미국의 긴축 속도가 느려질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한미 금리차 확대 및 원화 약세로 추가 인상 압박을 받고 있는 한국은행도 다음달 열릴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를 동결할 가능성이 커지는 모양새다.

앞서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지난 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베이비스텝’(정책금리 0.25%포인트 인상)을 결정하며 긴축 속도를 늦춘 바 있다.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폭을 0.25%포인트로 정한 것은 지난해 3월 이후 11개월만이다. 

연준이 약 1년 만에 긴축의 보폭을 줄였지만, 시장은 아예 걸음을 멈출 것을 기대하는 분위기다. 당초 시장은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매파적 발언을 근거로 오는 21일(현지시간) 열릴  FOMC에서 연준이 ‘빅스텝’(정책금리 0.50%포인트 인상)으로 회귀할 것을 예상했다. 하지만 최근 SVB를 포함해 미국 내 은행 3곳이 연이어 무너지면서 연준의 금리 결정에도 변수가 발생했다. 이들 은행이 급격한 금리인상에 따른 부담으로 파산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연준의 통화정책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 

실제 지난 10일 폐쇄된 SVB는 주 고객인 기술기업 및 스타트업이 최근 고금리 부담으로 예금을 인출하면서 자금사정이 크게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SVB는 부족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과거 저금리 시기에 매입한 채권을 손실을 보면서까지 팔아야 했고, 이러한 사정이 외부로 알려지자 고객들이 예금을 추가 인출하면서 상황이 악화됐다. 일각에서는 연준의 과격한 통화긴축이 결국 잠재적인 시스템 리스크를 키운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 때문에 연준이 이달 FOMC에서 당초 예상과 달리 빅스텝을 단행하기는 쉽지 않을 거란 전망이 나온다. 실제 골드만삭스는 지난 12일 보고서를 통해 “SVB 사태가 미국 기준금리 인상 경로에 미치는 불확실성이 광범위하다”며 “22일 FOMC에서 금리가 인상될 것이라고 더는 예측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SVB 파산 사태로 인해 다수의 지역은행이 뱅크런 위기에 직면한 만큼, 당분간 물가보다는 금융시장의 안정을 우선할 수밖에 없다는 것. 

연준의 금리 동결 전망이 확산되면서 한국은행의 추가 금리인상 가능성도 점차 줄어드는 분위기다. 앞서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달 23일 열린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에서 기준금리를 기존 3.50%로 동결할 것을 결정한 바 있다. 현재 한미 금리차는 최대 1.25%포인트로 이달 FOMC가 지나면 역대 최대 수준인 1.75%포인트까지 벌어질 것이 확실시됐다. 이 때문에 한미 금리차 확대 및 원화 약세에 따른 외국인 자금 이탈 우려 또한 적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오는 4월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에서 금통위가 추가 인상을 단행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왔다. 실제 14일 공개된 2월 금통위 의사록에 따르면, 일부 금통위원들은 연준의 결정에 따라 추가 금리인상 여부를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실제 한 위원은 “연준의 추가 금리인상으로 내외금리차가 예상보다 확대될 경우 원화절하 압력이 커지면서 국내 물가와 성장에 대한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적극적 대응도 필요하다”며 “앞으로 물가를 중심으로 국내외 경제여건의 전개상황을 점검해 나가면서 추가인상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위원도 “미 연준의 통화정책 등 여건 변화에 따른 환율 변화를 주목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대내외 금리차는 기계적으로 작동하지는 않지만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입, 경상수지 추이와 맞물려 시장 기대의 급격한 변화를 유발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여건상 환율 변동성 확대는 물가와 금융안정 모두에 영항을 미칠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추가 인상의 필요성이 크지 않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한 위원은 “인플레이션을 목표 수준으로 빠르게 안정시키기 위한 추가 긴축을 고려할 수 있겠으나, 지난 1년 반에 걸쳐 기준금리를 300bp 인상하였으므로 현 단계에서 얻을 수 있는 추가적 편익은 매우 작거나 불확실하다”며 “그보다는 경제회복력을 과도하게 위축시키거나 금융안정 측면에서의 리스크를 높일 가능성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SVB 사태로 연준의 금리동결 가능성이 커지면서 한은의 결정이 오히려 좋은 수가 됐다. 한미 금리차를 기존 수준으로 유지한 채로 그동안의 금리인상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할 시간을 벌 수 있게 됐기 때문. 만약 연준이 이달 FOMC에서 금리를 동결할 경우 금통위도 다음 달 회의에서 추가 인상을 선택지에서 배제할 가능성이 있다.

한편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4일 서울 은행회관에 열린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이번 (SVB 파산) 사태는 높은 수준의 인플레 대응을 위한 고강도 금융긴축이 지속되면서 취약부문의 금융불안이 불거져 나온 경우”라고 말했다. 이번 사태의 원인을 급격한 통화긴축이라고 지목한 만큼, 긴축속도 조절에 무게를 둔 발언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SVB 파산 사태로 추가 인상 압박에서 한결 자유로워진 금통위가 다음 달 회의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지 관심이 집중된다.

저작권자 © 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