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5.86포인트(0.24%) 오른 2400.45에 상승세로 출발했으나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영향으로 장 초반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13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5.86포인트(0.24%) 오른 2400.45에 상승세로 출발했으나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영향으로 장 초반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한 데 이어 시그니처은행까지 폐쇄되면서 금융위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시스템 리스크로 번지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지만, 당분간 국내 금융시장의 변동성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로이터에 따르면, 뉴욕주 규제당국 금융서비스부(DFS)는 12일(현지시간) 뉴욕주 소재 시그니처은행을 인수하고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를 파산관재인으로 임명했다고 밝혔다. 당국에 따르면 시그니처은행의 예치금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 885억9000만 달러(약 117조원)에 달한다.

지난 10일에는 캘리포니아주 금융보호혁신국이 불충분한 유동성과 지급불능을 이유로 실리콘밸리은행(SVB)을 폐쇄했다. SVB의 총 자산은 2090억 달러(약 277조원)으로,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문을 닫은 저축은행 워싱턴뮤추얼 이후 역대 두 번째 규모다. 마찬가지로 캘리포니아주에 본사를 둔 실버게이트 은행도 지난 8일 청산 절차를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은행별로 구체적인 파산 원인은 아직 밝혀진 것이 없지만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강력한 통화긴축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SVB는 스타트업이나 기술기업을 주 고객으로 하는데, 이들이 최근 고금리 부담으로 예금을 인출하면서 자금사정이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SVB는 과거 저금리 시기에 매입한 채권을 매각했는데, 금리가 크게 오른 만큼 매입 당시보다 손실을 보고 팔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이 고객들에게 알려지면서 다시 예금이 인출되는 악순환이 이어진 것. 시그니처·실버게이트 은행은 암호화폐 거래 비중이 매우 높은 곳으로, 금리인상으로 인한 가상자산 시장 침체와 암호화폐 거래소 FTX 파산, 당국 규제 강화 등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분석된다. 

세 곳의 은행이 연달아 문을 닫으면서 대형 금융위기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국내 금융당국은 이번 사태가 시스템 리스크로 번질 위험은 크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13일 오전 이승헌 부총재 주재로 ‘시장 상황 점검 회의’를 열고 SVB 파산 사태가 금융권 전반으로 확산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평가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은행의 건전성이 개선된 데다, 미국 정부가 예금자 전면 보호조치를 시행하기로 결정했기 때문. 실제 미 재무부와 연준, FDIC는 지난 12일(현지시간) 공동 성명을 내고 고객이 SVB에 맡긴 돈을 보험 한도와 관계 없애 전액 보증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또한 이날 오전 열린 ‘금융상황 점검회의’에서 “이번 사태는 SVB의 특수한 영업구조가 최근 금융긴축 과정과 맞물려 발생한 경우”라며 “미국 정부 및 감독당국이 12일 SVB의 모든 예금자를 보호하기로 조치함에 따라 시스템적 리스크로 확대될 가능성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증권가 또한 대형 금융위기의 가능성은 작을 것으로 판단하는 분위기다. 나정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SVB의 주요 고객이 실리콘 밸리 지역의 스타트업 또는 벤처캐피털 등 현금이 부족한 기업들이었기에 금리상승 여파가 현금소진 및 뱅크런으로 이어진 것”이라며 “고객군이 비슷하거나 규모가 비슷한 중소은행의 예금 이탈이 확산될 가능성은 존재하지만, 은행권 전반이나 대형 은행의 뱅크런으로 전염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나 연구원은 이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대형 은행의 자산건전성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었고, 2022년 진행한 미 연준의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에 따르면 최악의 시나리오에서도 테스트 대상 은행의 자본비율은 규제 기준을 크게 상회했다”며 “미국 자산 규모 1위 은행인 JP모건의 주가는 10일 오히려 2.5% 상승했다”고 덧붙였다. 

SVB 사태가 국내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력도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무엇보다 SVB은 벤처 스타트업에 특화된 은행으로 국내 은행의 사업 모델과 차이가 크다. 금감원에 따르면, SVB는 거액 기업예금 위주로 자금을 조달해 예금자 보호 대상이 아닌 예금이 87.6%에 달하는 데다, 총 자산의 56.7%를 장기 유가증권에 투자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가 급격히 오르자 예금조달비용이 증가하고 채권 평가손실 발생해 일반적인 은행보다 리스크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던 것. 

다만 대형 위기는 아니더라도 SVB 사태로 인한 단기적 영향을 완전히 피하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SVB 사태가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와 같은 금융시스템 위기를 촉발할 가능성은 낮다고 평가되지만, 후폭풍을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 연구원은 “SVB 파산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알려져 있는 증권투자손실은 SVB 한 은행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며 연쇄 은행 부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는 한편, “중형 규모인 SVB 파산으로 대규모 예금인출 사태를 촉발시켜 의도치 않은 심각한 자금경색 현상을 촉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SVB 사태가 벤처 스타트업 및 기술기업, 암호화폐 등과 연관된 만큼 투자심리가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 연구원은  “SVB 파산은 가뜩이나 고금리 영향 등으로 업황 부진 및 자금난에 직면한 실리콘밸리 내 벤처캐피탈 및 스마트 기업의 연쇄 부도 압력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로 연준이 금리인상 속도 조절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예상이 퍼지고 있다. 실제 SVB 사태에는 연준의 강력한 통화긴축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기술기업이 주 고객인 만큼 금리인상으로 인한 부실 여파가 컸다는 것. 비록 연준의 최우선 목표가 물가안정이라 하더라도 이미 지난달 ‘베이비스텝’(정책금리 0.25%포인트 인상)을 결정하며 인상 속도를 늦췄던 만큼, 오는 21일 열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는 재차 0.25%포인트 인상을 발표하거나 아예 금리동결을 선언할 가능성도 있다. 

이승훈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SVB가 파산에 이르도록 한 요인 만을 고려한다면 연준의 공격적 금리인상에서 비롯된 유동성 문제이기에 금융안정에 대한 고려가 있다면 3월에 50bp 금리인상을 강행하기는 어려워 보인다”며 “3월 25bp 인상과 더불어 6월 5.5%까지의 금리인상을 예상한다”고 말했다. 

한편 SVB 사태로 단기 변동성이 커진 만큼, 당분간 투자 결정에 신중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나정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SVB 파산은 투자자들의 위험 자산 회피가 강화된다는 측면에서 국내 주식 시장에 단기 변동성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국내 주식 시장에 단기 변동성이 확대될 시, 실적에 기반한 옥석 가리기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나 연구원은 이어 “최근 주가가 실적이 아닌 기대감 때문에 오른 종목은 주가 조정에 취약할 수 있는 반면, 양호한 실적을 기록하고 있으나 주가가 크게 하락하는 경우 매수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며 “SVB 파산이 시스템 리스크로 확대될 가능성이 제한적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주가 조정 시 매수 대응법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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