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글로벌 기금관 전경. 사진=국민연금
국민연금 글로벌 기금관 전경. 사진=국민연금

[이코리아]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국민연금이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면서, 정부가 국민연금을 기업 통제 수단으로 악용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함께 커지고 있다. 반면, ‘관치’ 논란을 두려워해 국민연금이 주주권 행사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된다는 반론도 나온다.

경영계가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의식하게 된 것은 최근 KT 차기 대표이사 선임 절차 때문이다. 앞서 국민연금은 KT가 지난해 12월 28일 구현모 현 대표를 차기 대표이사 최종 후보로 단독 추천하기로 하자, 후보 선임 과정의 불투명성을 비판하며 곧바로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당시 국민연금은 입장문을 통해 “기금이사는 지난 27일 취임 인사 과정에서 말씀드린 'CEO 후보 결정이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경선의 기본 원칙에 부합하지 못한다는 입장”이라며 “앞으로 의결권행사 등 수탁자책임활동 이행과정에서 이러한 사항을 충분히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이 이례적으로 강경한 반대 의견을 밝히자 KT는 결국 차기 대표이사 후보를 공개경쟁 방식으로 선출하기로 결정했고, 지난 8일 윤경림 KT 그룹 트랜스포메이션부문장(사장)을 차기 후보로 확정했다. 국민연금의 반대로 구 대표의 연임이 결국 무산되면서, 이달 주총 시즌을 앞둔 기업들도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여부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그동안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강화가 요구되어 온 만큼 최근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는 환영받을 만한 일이지만, 오히려 재계와 시민단체를 가리지 않고 ‘관치’ 논란이 격화되는 분위기다. 이는 국민연금의 최근 행보가 ‘주인 없는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이 필요하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과 맞물려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 윤 대통령은 지난 1월 30일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과거 정부 투자 기업 내지 공기업이었다가 민영화되면서 소유가 분산된 기업들은 소위 '스튜어드십'이라는 것이 작동돼야 한다”며 “스튜어드십은 소유가 분산돼 지배구조 구성 과정에서 모럴해저드가 일어날 수 있는 경우엔 적어도 그 절차와 방식에 있어선 공정하고 투명하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지난달 24일에는 검찰 출신인 한석훈 변호사가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기금위) 산하 상근 전문위원으로 선임되기도 했다. 또한, 기금위는 지난 7일 주주권 행사 방향을 주도하는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탁위) 위원에 전문가 단체가 추천한 민간 금융전문가를 선임하는 내용의 수탁위 운영규정 개정안을 심의·의결했다. 수탁위에 부족한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한 방침이지만, 자칫 전문가 단체 추천 위원이 친정부 인사로 채워질 위험이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처럼 국민연금을 통한 정부의 기업 통제 우려가 커지는 가장 큰 이유는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가 ‘주인 없는 기업’에 치우쳐져 있기 때문이다. 뚜렷한 지배주주가 있는 재벌·대기업이 아닌 소유구조가 분산된 기업에만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강조하는 것은, 친정부 성향의 낙하산 인사를 CEO 자리에 앉히려는 의도 아니냐는 것. 실제 경제개혁연대는 “재벌 등 가족지배기업에 대해서는 정부나 기관투자자의 역할을 강조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KT, 금융지주사와 같이 이른바 ‘주인 없는’ 기업의 지배구조 문제만을 거론하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며 “현재 국민연금은 소유분산기업을 포함하여 주요 대기업의 유의미한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인데 그중 특정 기업만을 상대로 주주권을 행사한다면 그 진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 자체보다는 ‘정부로부터의 독립성’이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상훈 전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은 지난 8일 열린 ‘2023년 주주총회,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가?’ 좌담회에서 “국민연금이 투자기업의 주주인 이상 투자기업의 장기가치 증진과 투명한 경영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스튜어드십 코드의 적극적인 이행은 반드시 필요한 과제”라며 “최근의 신(新)관치 논란을 이유로 이를 후퇴하려는 움직임은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우를 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위원은 “신(新)관치 논란의 원인은 국민연금이 시장 플레이어인 주주로서의 지위뿐만 아니라 외부의 국가행정 권력으로부터 지원받거나 종속될 수 있는 이중적인 지위에 있다는 특징에서 출발한다”며 “스튜어드십 코드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서는 국민연금이 시장 심판자인 정부의 영향에서 독립하여 다른 시장 플레이어와 동일한 조건에서 주주로서의 권한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의식적․지속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전 위원은 이어 “최근 정부는 유독 소유분산기업에 집중해서 지배구조의 문제점을 거론하지만, 지배구조 문제점은 소유분산기업뿐만 아니라 지배주주가 있는 대부분의 대기업에 동일하게 발생하기 때문에 이들 기업에 대해서도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며 “정부가 소유분산기업에만 선별적 정의의 잣대를 들이댄다면, 정치인들이 국민을 명분으로 주인 없는 기업에서 주인 노릇을 하려는 탐욕을 부리는 것이라고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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