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대한간호협회 회원들이 지난달 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간호법 제정 촉구 전국 간호사 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사진은 대한간호협회 회원들이 지난달 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간호법 제정 촉구 전국 간호사 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간호법 제정을 앞두고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대한간호협회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3개국을 비롯해 세계 96개국이 간호법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대한의사협회는 OECD 38개 회원국 중 독립적인 간호법을 가진 나라는 11개국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이코리아>는 간호협회가 주장하는 세계 96개국 간호법 주장이 맞는지 팩트체크했다. 

간협은 지난해 1월 20일 "간호법을 가진 OECD 회원국은 33개고, 이를 포함해 전 세계 96개국이 간호법을 갖고 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당해 전일인 19일 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OECD 회원국 간호법 현황조사 보고 및 우리나라 독립 간호법 추진에 대한 문제'라는 보도자료에 대한 반박이었다. 

앞서 의협 의료정책연구소는 보고서를 통해 "OECD 38개국 중 간호법을 보유한 국가는 11개국뿐"이라고 주장했다. 간협에서 평소 '세계 90개국이 독립적인 간호법을 갖고 있거나 제정 중'이라며 간호법 제정의 근거로 해외 사례를 제시해왔는데 이를 반박한 것이다. 

의료정책연구소는 OECD 회원국 38개국을 대상으로 간호사 단독법 유무를 조사했다. 그 결과, 간호사 단독법을 보유한 국가는 오스트리아, 캐나다, 콜롬비아, 독일, 그리스, 아일랜드, 일본, 리투아니아, 폴란드, 포르투갈, 터키 등 11개국으로, 나머지 27개 국가는 간호사 단독법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의협 측은 분류 기준에 대해 "Law, Act, Code 등의 형식을 갖고 있는 경우에 한해 단독법이 있다고 보았으며, 간호사와 관련된 사항이 법의 일부 또는 하위법(Regulation, Order 등) 형태로 존재하는 경우는 단독법이 없다고 보았다"고 제시했다.

반면 간협은 보도자료에서 OECD 38개국 중 한국, 코스타리카, 칠레, 멕시코, 이스라엘 등 5개국을 제외하고 모두 간호법이 있는 것으로 분류했다. 이 같은 차이는 간협의 경우 별도의 간호법이 있느냐 하는 형식보다 간호사의 업무와 책임을 독립적으로 규율하고 있는지를 주된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간협은 "간호법을 보유한 33개 OECD 국가 중 일본, 콜롬비아, 터키는 20세기 초부터 이미 독립된 간호법이 있고, 미국과 캐나다는 각 주마다 간호법이 있어 간호사 업무범위와 교육과정 등에 대해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며 "호주와 뉴질랜드는 1900년대 초부터 독립된 간호법이 있었으나, 국가차원의 보건의료인력 규제 및 각 직역별 위원회에 업무범위 규정에 대한 권한(authority)을 부여하기 위해 지난 2003년 이후 법을 통합했다"고 설명했다. 

간호법을 보유한 나머지 OECD 26개국은 유럽국가간호연맹(EFN, European Federation of Nurses) 가입국으로 각 국가별 간호법을 보유하고 있으며 2005년 EU의회를 통과하여 제정된 '통합된 EU 간호지침'을 준수하고 있다. EU 간호지침에는 간호사의 정의, 자격, 업무범위, 교육, 전문 역량 개발 등 우리나라 간호법이 지향하고 있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렇다면 정부 당국이나 학계는 해외 간호법을 어떻게 분류하고 있을까.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2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간호법 해외 입법례 검토 결과를 보고했는데, 11개 주요국을 검토한 결과 일본, 미국, 독일, 영국, 캐나다, 싱가포르 등 6개국은 독립된 간호법이 있고, 프랑스, 핀란드, 노르웨이, 뉴질랜드, 호주는 미보유국으로 분류했다. 미국과 영국의 경우 복지부는 물론 국회 복지위 검토 보고서와 다수의 학계 연구논문들도 간호법 보유국으로 분류하고 있지만, 의협은 제외했다.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의원(보건복지위원회)은 지난해 10월 2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전문직 별로 개별적 법률을 마련하는 입법 방향이 최근 추세로 미국·영국·일본·독일 등 OECD 국가뿐만 아니라 중저소득국 등을 포함해 90여 개 국가에서 간호법을 별도로 제정하고 있다"며 "세계 대다수 국가와 같이 의료법과 별도로 간호사 등의 인력에 관한 총괄적인 법률 제정이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또 간호법 관련 학술논문들은 주로 미국, 영국, 일본 등 주요국 중심으로 해외 입법례를 언급하고 있는 가운데, 주요 선진국은 물론 많은 나라에서 대체로 간호관련 단독법에 기반해 간호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과정과 업무를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민의료비 증가와 만성질환 증가 등 보건의료환경의 변화로 간호사의 업무가 '치료 중심'에서 '질병관리'와 '요양'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에, 이를 규정할 수 있는 법체계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김종호 호서대학교 법학과 교수가 지난 2015년 발표한 '간호법 단독입법을 통한 간호인력의 합리적 재편 방안' 논문에서 "국제간호협의회(ICN)에 의하면 세계 80여 개 이상의 국가에서 간호법이 제정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밝혔다. 

논문에 따르면 1901년 뉴질랜드에서 최초의 간호법이 제정된 이후, 미국과 캐나다의 경우 모든 주(州)에서 주(州)차원의 간호법이 규정되어 있고, 일본의 경우 보건사조산사간호사법을 통해 보건사, 조산사, 간호사, 준간호사에 대한 면허, 자격 등을 규율하고 있다. 또 영국도 간호사, 조산사, 방문간호사법이 있으며, 중국, 싱가폴, 대만, 필리핀, 남아프리카공화국, 나이지리아 등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에서도 간호법이 이미 제정됐다. 

또 국회입법조사처가 발간하는 학술지 '입법과 정책'에 실린 2020년 '입법공백과 딜레마: 간호법 제정지연의 분석' 논문은 우리나라 의료법을 간호 환경 변화의 세계적 추세에 대응하지 못한 전근대적 규범으로 평가하면서 2018년 기준 개별법으로 간호법을 규정하고 있는 국가를 80개국으로 봤다. 

호서대학교 일반대학원 박사 과정 중인 송명환의 2022년 발표 논문 '간호법 제정 필요성에 관한 소고'에서도 "보건의료분야 및 사회 전반의 전문 직종에 대해 개별적 법률을 인정하는 것이 세계 공통의 보편적 입법체계"라며 "미국·일본 등 OECD 국가뿐만 아니라 아시아·아프리카 등 세계 90여개 국가에서 독립된 간호법 제정·운영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보건의료체계의 혼란이 발생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논문에 따르면 미국과 일본은 간호법이 이미 제정되어 있음에도 추가로 별도의 '간호사재투자법'(미국), '간호사 등 인재확보 촉진에 관한 법률'(일본)을 제정해 간호사 등에 대한 양성.교육.처우개선 등에 관한 정책 수립 및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일본은 1994년에 고령사회에 진입했는데, 그 보다 2년 전인 1992년 '간호사 등 인재확보 촉진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고, 병원 등의 개설자로 하여금 간호사 등의 처우 개선, 신규 간호사 임상연수 실시 등의 조치를 강구하도록 했다. 

한편,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지난 2월 9일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인 간호법 보건복지위원회안(대안)을 국회 본회의(신속 처리 법안)로 직행하도록 의결했다. 본회의 직회부가 결정된 간호법(대안)은 지난해 5월 17일 법사위로 회부된 법안이다. 이후 8개월 넘게 법사위에서 계류하다가 더불어민주당 소속 보건복지위 의원들 주도로 국회 본회의로 직회부됐다. 

[검증결과] 대한간호협회의 세계 96개국이 간호법을 갖고 있다는 주장은 대체로 사실이다. 간협은 간호사의 업무와 책임을 독립적으로 규율하고 있는지를 주된 기준으로 삼았고, 반면 의협은 간호법이 다른 의료법에서 완전히 분리된 단독법 형태로 존재하는지를 엄격히 따졌다. 간호법 관련 학술논문들은 주로 미국, 영국, 일본 등 주요국 중심으로 해외 입법례를 언급하고 있는 가운데, 간호법 개별 입법국을 80~90여개국으로 분류했다. 

 

※ 참고자료

김종호, 간호법 단독입법을 통한 간호인력의 합리적 재편 방안, 일감법학 제32호, 2015

송명환, 간호법 제정 필요성에 관한 소고, 한국법이론실무학회 법이론실무연구, 2022

국회입법조사처, 입법공백과 딜레마: 간호법 제정지연의 분석, 입법과 정책,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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