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윤석열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를 둘러싸고 ‘친일’ 논란이 확산되면서, 진보 성향의 매체를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통해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3.1운동 이후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일본은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가 됐다”며 “복합 위기와 심각한 북핵 위협 등 안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한미일 3자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우리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연대하고 협력해서 우리와 세계시민의 자유 확대와 공동 번영에 책임있는 기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을 ‘파트너’로 지칭하며 연대와 협력을 강조한 윤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를 두고 야당은 역사의식이 부족하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3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일본의 잘못을 합리화하고 협력을 구걸하는 것은 학교폭력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것과 같다”며 “정부·여당의 대일 저자세와 굴종을 지켜보면 이 정권이 과연 어느 나라의 이익을 우선하는지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반면 정부·여당은 야당이 반일 감정을 악용하고 있다며 반박에 나섰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2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기념사 관련 논란에 대해 “한국과 일본에는 어떻게든 과거를 극복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는 세력과 반일·혐한 감정을 이용해 정치적 반사이익을 얻으려는 두 세력이 있는 것 같다”며 “과연 어느 쪽이 좀 더 국가 이익과 미래세대를 위해 고민하는 세력인지 현명한 국민들이 잘 판단하실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尹 3·1절 기념사, 언론은 일본 관련 발언에 초점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운영하는 뉴스 빅데이터 분석시스템 ‘빅카인즈’에서 ‘윤석열’과 ‘기념사’를 동시에 검색한 결과, 지난 1일부터 3일까지 595건의 기사가 보도된 것으로 집계됐다. 기념식이 열린 1일(196건)보다는 하루 뒤인 2일 276건으로 가장 많은 기사가 보도됐다.

윤 대통령 3·1절 기념사 관련 기사에 가장 자주 등장한 연관키워드는 ‘협력 파트너’였으며, 그 뒤는 ‘보편적 가치’,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 등의 순이었다. 해당 키워드는 모두 윤 대통령 기념사 중 일본과의 관계를 언급한 부분에 나오는 표현이다. 이는 언론이 윤 대통령 기념사 중 일본 관련 발언에 주로 초점을 맞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과거사’도 연관키워드 목록에 포함됐다. 이는 윤 대통령이 기념사를 통해 일본과의 협력을 강조한 반면, 강제징용 및 위안부와 같은 과거사 관련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점이 비판을 받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은 2일 성명을 내고 “우리 정부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저자세 굴종 외교를 일관하고 있고,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적법한 권리 행사를 저지하면서까지 일본 기업의 보호에 여념이 없다”며 “그래도 혹시 정부가 피해자들의 바람에 화답할까 3.1절 기념사를 경청한 피해자들은 모두 할 말을 잃었다”고 윤 대통령의 기념사를 비판했다. 민변은 이어 “윤석열 대통령이 기념사에서 말한 것처럼 ‘조국이 어려울 때 조국을 위해 헌신한 선열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이 정부에게서는 도무지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며 “정부는 강제동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비롯한 일제 강점기 피해자들의 권리 보호에 책임있는 자세로 나서라”고 촉구했다.

 

지난 1~3일 보도된 윤석열 대통령의 3·1절 기념사 관련 기사의 연관키워드. 자료=빅카인즈
지난 1~3일 보도된 윤석열 대통령의 3·1절 기념사 관련 기사의 연관키워드. 자료=빅카인즈

◇ “과거사 반성 없이 협력 어려워” vs “이제는 과거사 논쟁 넘어설 때”

윤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를 두고 언론은 대체로 비판적인 논조를 보이고 있다. 특히 진보성향의 매체는 윤 대통령의 기념사에 대해 쓴소리를 쏟아내는 모양새다.

한겨레는 2일 사설에서 윤 대통령의 기념사에 대해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나 종군 ‘위안부’ 등 첨예한 과거사 현안은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고, 일본의 반성과 사과도 요구하지 않았다”며 “오로지 ‘복합 위기와 안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한·미·일 3자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며 일본과의 협력 필요성만 일방적으로 강조했다. 균형감을 잃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겨레는 이어 “이전까지 역대 대통령들은 첫 3·1절 기념사에서 예외 없이 건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를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일본의 진정성 있는 반성과 태도 변화 또한 요구했다. 보수, 진보를 가리지 않았다”며 “국민적 합의에 기반하지 않은 정권의 섣부른 노선 전환은 우리 내부의 갈등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또 일본에는 자신은 움직이지 않아도 한국이 알아서 굽히고 들어올 것이라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일감정을 이용하는 세력이 있다는 대통령실 관계자의 발언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경향신문은 2일 사설에서 해당 발언에 대해 “무지한 폄훼이자 전형적인 이분법적 갈라치기 대응”이라고 평가했다. 경향신문은 “일본은 최근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에 대한 반성은커녕 책임을 부인하고 있다”며 “과거사에 대한 반성을 토대로 미래로 가자는 것은 역대 모든 정부가 견지해온 외교의 기본틀이다. 이를 무시하고 무조건 미래로 나아가자는데 어떤 시민이 수긍하겠나”라고 반문했다.

반면 이제는 과거사 논쟁과 친일·반일 논란에서 벗어날 때라는 주장도 나온다. 조선일보는 2일 사설에서 “과거 대통령들은 취임 후 첫 3·1절 기념사에서 일본에 날을 세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라며 “이런 연설 뒤 한일 관계가 서먹해지고 과거사 문제도 더 꼬이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곤 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이어 “이제 한국도 선진국이다. 여러 분야에서 일본을 넘어섰다”며 “이런 나라에서 정치인들은 일본 얘기만 나오면 적개심을 터트려야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고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제국주의 일본이 저지른 가해의 역사는 결코 잊어서도, 덮어서도 안 된다”면서도 “그러나 과거에 매몰돼 관성적으로 일본을 때리는 것은 국가 이익을 해치고 전략적 선택지를 스스로 제약하는 일이다. 한국은 이제 과거로 논쟁하는 나라의 수준을 넘어섰다”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먼저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인 만큼 일본 정부도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매체도 많았다. 한국일보는 2일 사설에서 “미래에 방점을 찍고 일관되게 한일관계 복원을 추진하는 윤 정부의 성의에 일본이 전향적으로 화답할 때가 무르익었다”며 “북핵 대응이라는 공통과제에 한일 협력이 강조됐지만 역사 문제는 두루뭉술하게 우회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일보는 이어 “막바지에 이른 강제징용 해법과 관련, 정부는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을 통해 피해배상금을 지급하되 일본 기업의 사과와 자발적 기금 조성 참여방안 등을 타협안으로 제시한 상태”라며 “국내 반발을 무릅쓴 윤 대통령의 일관된 유화 제스처에 일본 정부가 성의 있는 조치로 호응하는 게 순리”라고 강조했다. 

문화일보도 이날 사설에서 “윤 정부는, 정치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징용 배상 문제를 한국 내부에서, 그리고 1965년 한일 기본협정 틀 내에서 해결한다는 원칙을 견지하고 있다. 그래서 유력하게 검토된 것이 ‘대위변제’ 방식”이라며 “이것이 실효성을 거두려면 일본 측의 성의 있는 호응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문화일보는 이어 “그런데 (일본은) 계속 강경 카드를 내놓는다고 한다. 구상권 포기 선언 요구는 물론, 최근엔 징용 피고 기업의 성금 불참, 경제단체의 징용 관련 재단 기금 불가 등”이라며 “(일본은) 더는 치졸한 몽니를 부리지 말기 바란다. 두 나라가 함께해야 할 시급한 일이 쌓여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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