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2022년 5월 국내 상장사(코스피·코스닥)의 자기주식 취득 목적별 공시 건수와 취득예정 주식수. 자료=자본시장연구원
2020년 1월~2022년 5월 국내 상장사(코스피·코스닥)의 자기주식 취득 목적별 공시 건수와 취득예정 주식수. 자료=자본시장연구원

[이코리아]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주주환원율을 높여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되면서 자사주 매입에 나서는 상장기업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매입한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고 지배주주의 이익을 위해 남용하는 사례가 많아,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일반적으로 기업의 자기주식 취득은 주가 안정 및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조치로 이해된다. 이 때문에 기업의 자사주 매입 소식은 증시에서 호재로 인식되지만, 정작 자사주 취득 공시 이후 주가가 하락한 사례를 찾아보기는 어렵지 않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자사주 취득·처분 공시를 낸 534개 상장사 중 293개의 주가는 28일 현재 공시일보다 하락했다. 자사주 취득·처분 공시 바로 다음 날 주가가 하락한 상장사도 174개나 된다. 자사주 취득 공시이후 주가 부양 효과가 장기간 유지되는 경우도 드물다. 자사주 취득·처분 공시 3개월 뒤 주가가 오히려 하락한 상장사는 514개 중 넘는 302개로 집계됐다. 

국내 상장기업의 자사주 취득 공시가 주가 상승으로 잘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취득의 이유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기업이 취득한 자사주를 소각하는 경우 주가 상승 동력으로 작용하지만, 국내에서는 다른 이유로 취득한 자사주를 남용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 27일 보고서에서 “자사주의 경우 기업이 기존 주주들에게 현금을 주고 주식을 매입한 것이므로 자사주 취득을 배당과 마찬가지로 주주환원 정책의 하나로 이해할 수도 있다”면서도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지배구조 측면에서 이러한 자사주가 경영권 방어의 수단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자사주 취득을 통해 의결권을 가진 주식 수를 줄이거나 취득한 자사주를 우호세력에게 매도하면 지배주주의 의결권을 강화할 수 있다. 또한, 인적분할 시 기존 회사가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으면 신설 자회사의 주식을 배정받을 수 있는데, 이를 통해 기존 회사의 지배주주가 추가적인 비용 없이 신설 자회사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할 수도 있다. 

또한, 기업이 매입한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고 보유하고 있다가 자금 조달이나 임직원 보상 등의 목적으로 처분하는 경우도 많다. 이 경우 기업이 취득한 자사주는 투자자들에게 잠재적 매도물량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주가를 부양하는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자사주를 저가에 매수해 주가 상승을 유도한 뒤 시세차익을 올리는 수단으로 악용할 가능성도 있어, 투자자들로서도 자사주 취득 공시를 호재로 받아들이기만은 어렵다.

실제 국내 상장사 중 취득한 자사주를 소각한 경우는 많지 않다. 강소현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이 지난해 6월 발표한 ‘국내 상장기업의 자기주식 처분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1월부터 2022년 5월까지 유가증권시장(코스피)과 코스닥의 자기주식 취득 공시를 분석한 결과 전체 365건 중 가장 많이 제시된 공시목적은 ‘주가안정’(316건)이었으며, ‘소각’은 17건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자기주식 처분 공시 837건의 공시목적 중 가장 비중이 큰 것은 ‘임직원 보상’(517건)으로 61.8%를 차지했다. 주식 수 기준으로는 ‘운영자금 확보 및 재무구조 개선’(199건, 약 2억2천만 주)의 비중이 가장 컸다. 주주환원을 목적으로 제시한 경우는 25건, 17만주에 불과했다. 

강 연구위원은 “분석기간 동안 운영자금 확보 및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자기주식 처분이 예정 주식수를 기준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해당 목적의 처분은 대부분 시간 외 대량매매로 이루어진다”며 “이는 상당한 규모의 자기주식이 처분 공시와 함께 시장에 재유통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강 연구위원은 이어 “직원 성과보상을 위한 자기주식 취득은 즉각적으로 주가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되지는 않는다”면서도 “그러나 상여금 명목으로 자기주식을 받은 임직원이 지속해서 주식을 보유하지 않고 특정 시점에서는 보유주식을 매도할 것이기 때문에 결국 유통주식수는 증가하고 자기주식 취득시 주주가 기대했던 환원 효과는 감소한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상장기업의 자기주식 취득·처분과 관련해 실질적인 주주환원 제고 효과가 나타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업이 보유 중인 자사주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주식이므로, 이를 처분하는 행위는 개념상 신주의 발행과 동일하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현행 국내법상으로 신주발행 시에는 주주의 동의 등 보다 엄격한 절차가 요구되는 반면, 자사주 처분은 비교적 자유롭게 허용되고 있다”며 “따라서 자사주 취득 목적을 보다 상세하게 적고 취득의 판단근거 및 취득 규모를 결정한 기준 등 공시요건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이어 “국내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 발표가 주가 상승으로 바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도 자사주 매입 이후 이를 어떻게 활용할지 주주들이 명확하게 알기 어렵기 때문”이라며 “자사주 매입이 소각으로 이어진다면 주가의 저평가를 탈피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업무보고에서 자본시장 선진화 및 일반주주 권익 제고를 위해 자사주 취득·처분 목적 등에 대한 공시를 강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새해 들어 확산되고 있는 주주환원 제고 여론이 자사주 관련 제도의 실질적인 개선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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