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3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3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가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하면서 한미 금리차가 역대 최고 수준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원화 약세 및 자금 유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경기둔화 등 대내요인을 고려할 때 금통위가 당분간 통화정책의 방향을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한미 금리차가 역전된 것은 지난해 7월부터다. 당시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하는 ‘자이언트 스텝’을 2연속 단행하면서 기준금리가 2.25∼2.50%로 높아진 것. 한은 또한 사상 첫 빅스텝을 단행하며 2.25%까지 금리를 끌어올렸지만 0.25%포인트 차이로 금리가 역전됐다. 이후 한은이 다시 금리를 인상하며 한미 기준금리가 같아졌지만, 연준이 두 차례 더 자이언트 스텝을 밟은 데 이어 지난해 12월 한 차례 더 빅스텝(0.50%포인트 인상)을 추가하며 금리차가 1%포인트 이상으로 벌어졌다. 

현재 우리나라 기준금리는 3.5%, 미국은 4.50~4.75%로 1.25%포인트로 기존 최대 금리차(1.5%포인트)보다는 작다. 하지만 당장 내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빅스텝이 결정되면 한미 금리차가 1.75%포인트로 벌어져 역대 최대 금리차를 기록하게 된다.

한미 금리차가 더욱 확대될 경우 원화 약세 및 외국인 자금 유출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실제 지난해 10월 1400원대를 넘어섰던 원·달러 환율은 이달 초 1200원대 초반까지 하락했으나, 다시 급등하기 시작해 최근 1300원대를 넘어섰다. 이전에는 원화 약세가 수출을 증가시켜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지만, 최근에는 수입 물가가 급등해 구매력이 낮아지면서 오히려 경기가 둔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오히려 크다. 만약 한미 금리차가 역대 최대 수준으로 벌어지면 원화 약세를 자극해 경기 회복 속도를 늦출 수 있다.

외국인 자금 유출에 대한 우려도 여전하다. 한미 금리차가 벌어질수록 외국인 투자자가 더 안전한 투자처인 미국으로 자금을 옮길 가능성이 높기 때문. 실제 한은에 따르면 지난달 외국인 채권 투자 자금은 약 53억 달러 순유출됐다.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갈 경우 올해 들어 겨우 회복세로 돌아선 국내 증시가 다시 침체에 빠질 수 있다. 이러한 위험을 고려하면 오는 4월 열리는 금통위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가 다시 인상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반면 한미 금리차가 한은의 정책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우선 과거 한미 금리 역전 시기마다 외국인 자금이 유출된 것은 아니다. 실제 국제금융센터가 지난해 7월 발표한 ‘한미 정책금리 역전 가능성 및 자금유출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정책금리가 한국 기준금리보다 높았던 2018년 3월부터 2020년 2월까지 외국인은 원화채권에 25.1조원을 투자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한미 금리 역전 폭이 0.75%포인트로 가장 컸던 2018년 9월부터 2019년 8월까지 12조원을 투자하는 등 금리 역전 상황에서도 오히려 원화채권에 더 많은 투자금이 몰렸다. 

보고서를 작성한 김용준 국제금융센터 시장모니터링본부장은 “투자자들은 정책금리 수준 뿐만 아니라 다양한 요인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투자에 임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최근에는 ‘한미 정책금리 역전 = 자금유출’의 공식을 일방적으로 주장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은이 한미 금리차를 고려해 4월부터 다시 금리인상에 나서기에는 경기둔화 우려가 너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지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 27일 보고서에서 “미국을 따라 기준금리를 더 인상하기엔 내수가 걸림돌이다. 국가에서 대출금리 개입에 나섰다는 것은 가계와 기업이 견디기 어려운 수준에 가까워졌다는 의미”라며 “부동산 PF 는 급한 불만 껐을 뿐 일부가 되돌아오고 있다. 대외 금리차가 정책의 주가 되기에는 대내적 상황이 복잡하다”고 설명했다. 

김 연구원은 이어 “ 2월 금통위 결정 당시에도 이미 미국 기준금리는 5.50%까지 거론되며 시중금리에 반영된 상태였다. 금통위원들의 토론에서 이 부분이 빠졌을 리 없다”며 “이를 감안하더라도 동결을 택한 이유는 국내 물가는 낮아지는 추세가 분명하고, 경기에 대한 부담이 컸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원화 약세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은 변수다. 김 연구원은 미국의 기준금리가 국내 인상을 재개시킬 수 있는 경우는 결국 환율과 물가 경로”라며 “만약 달러 흐름이 다시 빠르게 강세로 전환해 추세적으로 머문다면, 금통위로서는 물가 경로에 대해 재점검하면서 인상이라는 카드를 다시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23일 기자간담회에서 “환율이 물가 경로에 주는 영향은 중요한 고려사항이지만, 특정 환율 수준에 의미를 두고 있지는 않다”며 “한미 금리차도 마찬가지다. 변동환율제에서 특정 적정 수준은 없다”고 말했다.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앞두고 동결과 추가 인상에 대한 전망이 엇갈리는 가운데, 한은의 통화정책 방향이 어느 쪽을 향할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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