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13일 개최한 제5차 자살예방 기본계획 공청회 발표자료 중 일부. 자료=보건복지부
보건복지부가 13일 개최한 제5차 자살예방 기본계획 공청회 발표자료 중 일부. 자료=보건복지부

[이코리아] 정부가 자살예방을 위해 번개탄 생산을 금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자살의 원인보다 수단에 초점을 맞춘 정책의 효과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는 가운데, 차라리 마포대교도 없애라는 비아냥까지 나오는 모양새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지난 13일 ‘제5차 자살예방 기본계획안 공청회’를 열고 자살률 감소를 위한 주요 대책을 발표했다. 올해부터 오는 2027년까지 추진될 이번 계획에서 논란이 된 부분은 ‘자살위해수단 관리 강화’ 대책 중 번개탄과 관련된 내용이다. 복지부는 “산화형 착화제가 사용된 번개탄(성형목탄)은 생산을 금지하고, 인체 유해성이 낮은 친환경 번개탄 대체제를 개발·보급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계획안에는 새로 등장한 자살위해수단인 마약류에 대한 관리 강화를 비롯해 정신건강 위기군에 대한 관리 및 치료, 정신응급 대응체계 구축, 정신건강 검진 체계 확대 개편, 자살 시도자에 대한 통합관리 시스템 구축, 연령·직업 등 대상자 특성에 따른 맞춤형 지원, 자살 관련 통계 및 연구체계 강화 등 자살위험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대책이 담겼다. 하지만, 여론의 관심은 모두 번개탄 생산금지로 집중됐다. 자살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기보다 특정 자살수단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겠다는 복지부의 대책이 ‘언 발에 오줌 누기’로 들렸기 때문.

한 누리꾼은 “자살하려는 사람이 번개탄을 못 샀다고 삶의 의지가 다시 생기나?”라며 “번개탄 생산을 금지할 거면 마포대교도 철거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 자살수단에 대한 접근 제한, 효과 있을까?

그렇다면 번개탄 생산금지는 과연 자살예방에 효과가 있을까? 과거 사례나 연구결과를 보면, 자살시도자들이 주로 활용하는 자살위해수단에 대한 접근성을 제한하는 정책은 실제 자살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의견이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상품명 ‘그라목손’으로 불리는 파라콰트(Paraquat) 제초제다. 농촌진흥청은 지난 2012년 농촌지역에서 음독자살에 악용되어온 그라목손의 생산을 금지했는데, 2011년 10만명당 5.26명이었던 농약자살은 2013년 2.67명으로 절반이나 감소했다. 이원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 지난 2016년 국제학술지 ‘국제역학저널’(International Journal of Epidemiology)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이 기간 농약자살 전체 감소 중 56%는 그라목손 규제의 영향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2013년 실제 농약자살자 수는 2003~2011년 추세에 따라 예측한 수치보다 847명(△37%) 적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라목손 규제가 847명의 자살을 예방한 셈이다. 게다가 그라목손 규제로 인한 자살자 감소 효과는 상대적으로 남성·고령층·시골지역 거주자에게서 두드러졌지만, 대체로 연령·성별·지역과 관계없이 확인됐다.

해외에서도 자살수단 규제를 통한 자살예방 효과에 대한 연구 결과가 적지 않다. 특히, 홍콩 연구진이 지난 2010년 ‘영국정신의학저널’(the British Journal of Psychiatry)에 발표한 논문에는 특정 지역에서 번개탄 구매를 제한하자 자살률이 감소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연구진은 2006년 홍콩 내 두 구역을 선정한 뒤, 한 구역의 주요 슈퍼마켓 체인 진열대에서 번개탄을 빼고 구매를 원하는 소비자에게는 상점 직원에게 문의하도록 했다.

또한, 번개탄을 꺼내올 때까지 소비자가 10분 가량 기다리도록 하고 구매 정보도 기록했다. 그러자 번개탄 판매를 규제한 지역에서는 번개탄을 이용한 자살이 10만명 당 4.3명에서 2.0명으로 53.5% 감소한 반면, 기존대 판매한 지역에서는 10만명당 3.0명에서 4.3명으로 43.3% 증가했다. 

복지부의 번개탄 생산금지 방침에 대한 또 다른 반론 중 하나는 자살을 하려는 사람이라면 번개탄을 구하지 못하게 돼도 다른 자살수단을 찾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자살시도자들이 자살수단을 쉽게 바꾸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실제 대만 연구진이 지난 2008년 ‘사회정신과학과 정신의학역학’(Social Psychiatry and Psychiatric Epidemiology)에 게재한 논문에 따르면, 지난 2004~2005년 5261명의 자살시도자를 분석한 결과 번개탄을 사용한 자살시도자는 다음 자살시도에서도 번개탄을 사용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연구진 또한 지난 2014년 발표한 ‘번개탄을 이용한 자살에 대한 전반적 고찰과 예방 대책’ 논문에서 “한 자살 방법은 다른 자살 방법으로 단순히 대치될 수 없다. 번개탄을 이용해 자살을 기도한 경우에도, 다음 시도시에 같은 방법을 반복적으로 이용하는 경향이 있다”며 “각각의 자살 방법은 그 선호도와 접근성이 다르며, 그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여러 연구들은 자살 방법에 대한 접근을 차단함으로써 자살을 성공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근거를 제시한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이어 “자살을 결정하기까지 고민하는 시간이 생각보다 짧고, 90% 가량의 자살시도자들이 결국 자살로 죽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치명적인 자살방법의 접근성을 제한할 경우 자살률이 낮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복지부도 ‘번개탄’ 논란에 대해 해명에 나섰다. 복지부는 지난 22일 설명자료를 내고 “번개탄 생산시 사용되는 산화형 착화제는 인체 유해성 논란이 있어 2019년 10월에 이미 산림청에서 관련 기준을 개정하여, 2024년 1월 1일부터 산화형 착화제가 사용된 번개탄에 대해 생산을 금지한 바 있다”며 “보건복지부는 일산화탄소(번개탄), 농약 등 자살로 빈번히 사용되는 자살위해수단에 대해 관계부처와 협의하여 고독성 농약은 품목등록취소(2011년)·생산금지(2012년)하고, 일산화탄소, 농약은 자살위해고시에 포함(2020년)하는 등 지속 관리하여 뚜렷한 정책효과를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검증결과] 번개탄 생산을 금지해 자살예방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대체로 사실’로 판단한다. 자살수단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는 정책이 자살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은 다양한 연구결과를 통해 확인된다. 국내에서도 과거 특정 제초제(그라목손) 생산을 금지하자 농약자살자 수가 급감하는 현상이 확인됐다. 특정 자살수단을 제한할 경우 다른 수단을 찾게 될 가능성도 있지만, 자살시도자가 쉽게 자살방법을 바꾸지 않는다는 연구결과도 있는 만큼 치명률이 높은 자살수단을 제한하려는 시도에 의미가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 

※ 참고자료

Paul S. F. Yip et al., Restricting the means of suicide by charcoal burning, The British Journal of Psychiatry, 2010

Chian-Jue Kuo et al., Suicide by charcoal burning in Taiwan: implications for means substitution by a case-linkage study, Social Psychiatry and Psychiatric Epidemiology, 2008

이원진 등, Impact of paraquat regulation on suicide in South Korea, International Journal of Epidemiology, 2016

이태엽 등, 번개탄을 이용한 자살에 대한 전반적 고찰과 예방 대책, 대한신경과학회지,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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