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별 상대적 설명력. 자료=자본시장연구원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별 상대적 설명력. 자료=자본시장연구원

[이코리아] 한국 주식시장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목받아온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핵심 원인이 낮은 주주환원율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행동주의 펀드를 중심으로 적극적인 주주환원정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주요 기업들도 주주환원율 상향을 선언하는 만큼 한국 증시에 대한 평가가 바뀔 수 있을지 주목된다.

자본시장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기업 주가가 해외 기업보다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되는 현상은 지난 2000년대 초 이후 시작돼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는 45개 주요국 상장기업 자료를 분석했는데, 지난 2012~2021년 10년간 국내 상장기업(합산 기준)의 주가·장부가 비율은 평균 1.2로 선진국의 52%, 신흥국의 58%, 아시아태평양 국가의 69%에 불과했다. 이는 분석대상 45개국 중 41위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또한,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특정 산업부문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 국내 산업 전반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실제 의료 및 부동산을 제외한 모든 부문에서 한국 상장기업의 주가는 해외 기업보다 저평가받는 경향이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과 선진국의 격차가 가장 큰 부문은 유틸리티로 국내 상장기업의 주가·장부가 비율이 선진국의 25%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기술·산업재·경기소비재·금융 등도 선진국의 40~50% 수준에 그쳤다. 부동산 부문에 속한 국내 상장사가 겨우 8개에 불과한 것을 고려하면, 사실상 의료를 제외한 전 부문에 대해 심각한 수준이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적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산업적 특성과 관계없이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나타나는 원인은 취약한 기업지배구조, 미흡한 주주환원, 단기투기적 투자성향, 지정학적 위험 등이 꼽힌다. 보고서는 한국 증시의 낮운 주가·장부가 비율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인을 분석했는데, 가장 설명력이 높은 요인은 주주환원(37%)이었으며 그 뒤는 재무적 특성(수익성, 무형자산 비중 및 부채비율) 36%, 거시경제(국민소득 및 GDP 성장률) 13% 등의 순이었다. 기업지배구조(7%) 또한 설명력은 낮지만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으로 지목됐으며, 회계투명성 4%, 기관투자자 비중 4% 등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으로 지목되어온 지정학적 위험이나 단기투기적 투자성향은 한국 증시 저평가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낮은 주주환원율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가장 유력한 원인이라는 보고서의 진단은 그동안 적극적인 주주환원정책을 요구해온 행동주의 펀드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준다. 앞서 행동주의 펀드 얼라인파트너스는 국내 주요 금융지주사의 저평가 원인으로 낮은 주주환원율을 지목하며, 올해 정기주총에 앞서 개선된 주주환원정책을 발표할 것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실제 주요 금융지주사는 최근 지난해 실적을 발표하며 자본 여력을 자사주 소각 및 배당에 쓰겠다며 주주환원을 요구하는 여론을 신경쓰는 모습을 보였다. 

한편 상대적으로 설명력이 작은 것으로 나타난 기업지배구조(주주권리 보호, 일반-지배주주 간 이해상충 규제 등) 또한 여전히 무시해서는 안 될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요인이다. 보고서를 작성한 김준석 자본연 선임연구위원은 “거시경제적 특성의 영향을 제외한다면,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국내 상장기업의 미흡한 주주환원, 저조한 수익성과 성장성, 취약한 기업지배구조를 가장 주요한 원인으로 평가할 수 있다”며 “기업지배구조, 회계투명성, 기관투자자 비중의 경우 각각의 설명력은 상대적으로 높지 않으나 주주환원과의 상관관계, 상호간 상관관계가 높은 특성을 갖고 있어 독립적인 요인으로 취급할 수는 없다는 사실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지배구조는 한국과 선진국이 가장 큰 격차를 보이는 분야 중 하나다. 세계은행이 각국의 법률 및 규제 강도를 토대로 평가한 소액주주보호 지표에서 한국은 지난 2014~2017년 190개국 중 17~23위로 상위권을 차지했다. 하지만 세계경제포럼이 경영자 설문조사를 통해 발표하는 국가경쟁력지수(GCI)의 기업지배구조 항목에서는 140개국 중 100~116위로 하위권에 속했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이에 대해 “한국은 기업지배구조와 관련된 법제도는 잘 갖춰진 반면, 법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지거나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낮다고 해석할 수 있다”며 “지배주주의 사적이익 추구는 외부주주의 이익을 침해하고 기업가치를 훼손하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김우진 서울대학교 교수 또한 지난해 9월 금융위원회 주최로 열린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정책세미나’에서 “상장기업의 이익이 모든 주주에게 비례적으로 분배되지 않고 지배주주에게 주로 귀속되는 문제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 요인”이라며 일반 상장사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규제, 인수·합병 시 피인수기업 주주 보호, 쪼개기 상장 규제 등의 문제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주주활동을 보장하면 오히려 주주환원율이 높아질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김형석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연구위원이 지난 2019년 발표한 ‘국내 민간 기관투자자의 주주활동 현황 및 전망’에 따르면, 주주활동이 활발할수록 배당도 확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연구위원은 32개 기업을 대상으로 현금배당 확대를 요구한 주주활동을 분석했는데, 주주활동이 있었던 기업의 평균 배당성향은 15.4%에서 21.7%로, 평균 배당수익률은 1.65%에서 2.50%로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김준석 자본연 선임연구위원은 “주주환원 정책과 기업지배구조는 단기간에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사안이며, 법제도적 개선뿐만 아니라 기업의 관행과 인식의 개선, 그리고 투자자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수적”이라며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고 한국 자본시장이 새로운 성장단계에 이르기 위해서는 보다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관점에서 실효성 있는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저작권자 © 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