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및 G7 국가의 상위 5대 은행 자산집중도. 자료=세계은행
한국 및 G7 국가의 상위 5대 은행 자산집중도. 자료=세계은행

[이코리아] 정부가 은행을 향한 채찍을 더욱 거세게 휘두르고 있다. ‘이자장사’와 ‘성과급 잔치’에 대한 비판, ‘고통분담’과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요구에 이어, 이제는 ‘과점체제’의 폐해를 지적하며 경쟁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 ‘이자장사’, ‘지배구조’ 이어 ‘과점 폐해’... 정부의 계속된 은행 때리기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5일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우리 은행 산업의 과점 폐해가 크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금융·통신은 공공재적 성격이 강하고 정부에 의해 과점 형태가 유지되고 있다”며 “예대마진을 축소하고 취약차주를 보호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이전부터 금리상승으로 역대급 이자이익을 거둔 은행권에 대해 강력하게 고통분담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이번 윤 대통령의 발언은 고통분담을 넘어 은행권의 오랜 ‘과점체제’를 개선하고 경쟁을 촉진하겠다는 구상까지 담고 있다. 실제 이날 발표된 ‘물가・민생경제 상황 및 분야별 대응방향’에는 과점구도에 기댄 (은행의) 과도한 이자수익 의존도를 개선하고, 취약계층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가 확충될 수 있도록 핀테크 혁신 사업자 등 신규 플레이어 진입을 위해 경쟁을 촉진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정부에 발맞춰 은행권을 압박해온 금융당국 또한 최근 같은 입장을 밝히고 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지난 17일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 운영계획을 발표하고 은행권 경쟁촉진 및 구조개선을 위한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이날 ‘빅테크의 금융업 진출 진단 및 향후 과제 세미나’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은행이 약탈적이라고 볼 수 있는 방식의 영업을 하고 있다”며 “그 배경은 독과점적 시장 환경”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 국내 은행 산업 과점화 정도는?

실제 국내 은행 산업은 지난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를 거치며 각 은행의 구조조정 및 폐쇄, 인수·합병 등을 통해 과점체제로 재편됐다. 외환위기 직전 32개였던 은행은 이후 합병 등을 통해 19개로 줄어들었고, 자산규모가 큰 대형은행을 중심으로 과점구조가 고착화되면서 다른 금융선진국에 비해 높은 시장 집중도가 유지되고 있다. 

수치적으로 봐도 국내 은행 산업의 과점화 정도는 비슷한 경제 규모의 다른 국가에 비해 낮은 편은 아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한국 상위 5대 은행의 자산집중도는 지난 2021년 기준 88%로 G7 평균(72.1%)보다 15.9%포인트 높았다. 한국을 제외한 OECD 35개 회원국 평균(82.8%)과 비교해도 5.2%포인트 높은 수치다. 순위로 보면 OECD 36개국 중에서는 16위로 중간 정도지만, G7 국가와 비교하면 한국보다 5대 은행 자산집중도가 높은 곳은 독일(94.3%) 뿐이다. 미국(49.7%), 영국(59.9%) 등 금융시장이 개방적이고 경쟁 강도가 높은 국가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다만 국내 은행업의 과점화 정도가 점차 낮아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금융산업경쟁도평가위원회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일반은행을 대상으로 시장집중도를 분석한 결과 중기대출 및 총예금을 제외한 총자산·총대출·가계대출 등 3개 부문의 집중도 지표는 점차 개선되는 경향을 보였다. 위원회는 “은행과 유사한 예수금, 대출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저축은행을 고려할 경우 은행업 집중도는 전반적으로 하락했다”며 “기은·농협·수협을 고려할 경우 은행업 집중도는 큰 폭으로 하락하며, 2018년 3월과 비교했을 경우 일반은행만 비교하는 것과 유사하게 2021년 12월 기준으로 중기대출과 총예금 부문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집중도가 낮아져 개선된 모습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시중은행을 대상으로 한 분석에서는 시장집중도가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위원회는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이 합병한 2015년 이후 시장집중도가 그 이전에 비해 대체로 악화됐다”며 “2018년 경쟁도 분석 당시와 비교하면 경쟁도가 대체로 낮아져 악화된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인터넷전문은행이 대형 시중은행에 유의미한 경쟁자로 되기에는 아직 규모가 작아 시중은행에는 아직 큰 영향을 주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고 설명했다. 

◇ 은행 산업 발전 위한 ‘경쟁’의 방향은?

국내 은행 산업의 과점화 및 낮은 경쟁강도가 효율성을 악화시켰다는 지적은 이전부터 제기돼왔다. 한국은행은 지난 2020년 발표한 ‘우리나라 은행산업의 미래와 시사점’ 보고서에서 “그간 국내 은행산업은 엄격한 진입규제 하에서 과점구조가 고착화 됨에 따라 저위험·고수익 추구가 가능한 담보대출 위주의 자산 포트폴리오 편중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며 “디지털 경제 확산, 인구구조 변화 등에 따른 다양한 금융수요에 대응하여 새로운 금융상품을 출시하는 등 금융혁신을 통해 적극적으로 은행 수익성 및 안정성을 제고하기 위한 유인이 충분치 않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은행은 이어 “경기 하강시 편중된 자산이 동시에 부실화될 경우 시스템 리스크(횡단면 리스크)를 유발할 가능성도 상존한다”며 자칫 과점체제가 금융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과점화된 국내 은행권이 금융혁신에 도전하기보다는 이자마진 확대에 의존하면서 글로벌 금융사에 뒤처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지난해 4대 은행지주사(신한·우리·하나·KB)의 이자이익은 39조6735억원으로 전년(33조494억원)보다 20%나 증가한 반면, 비이자이익은 8조7300억원으로 전년(11조6840억원) 대비 25.3%나 감소했다. 지주사 순이익에 대한 은행 기여도 또한 60~80% 수준으로 금리상승과 함께 오르는 추세다. 

물론 은행 산업의 경쟁 촉진이 오히려 시스템 리스크를 키울 가능성도 있다. 한국은행은 2016년 발표한 ‘은행산업의 경쟁도 현황 및 금융안정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2000~2015년 국내 은행 산업 경쟁 강도가 건전성에 미친 영향을 분석했는데, 경쟁도가 높아질수록 은행의 무수익여신비율과 부도확률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 대출시장의 경쟁이 확대될 경우 대출을 주요영업 기반으로 하는 우리나라 은행들의 건전성과 수익성에 부정적 영향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 

이 때문에 은행 산업의 경쟁을 촉진하더라도 ‘방향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건전성 악화 위험이 큰 대출영역에서만 과도한 경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은행의 영업분야를 다양화해 금융혁신에 대한 도전을 유도해야 한다는 것. 금융혁신에 소극적인 은행권에 ‘디지털 전환’이라는 화두를 던진 빅테크·핀테크를 통한 경쟁촉진과 금융서비스 개선도 필수적이다. 실제 국내 은행 산업의 자산집중도(상위 5대 은행)는 케이뱅크, 카카오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이 출범한 2017년 91.6%에서 2021년 88%로 3.6%포인트 감소했다.

한국은행은 “기존 은행 단독으로는 시스템 전환에 따른 막대한 투자 비용, 지배 구조의 안정성 등의 문제로 인해 단기간 내에 디지털 환경에 적합한 차세대 은행(Better Bank)으로 변화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현재로서는 금융시스템 안정성, 국내 은행 산업 진입규제 수준, 경쟁력 강화를 위한 비용 최소화 등을 감안할 때 국내 은행산업은 기존 은행, 핀테크 및 빅테크 기업(인터넷은행 등 포함)이 협력·공존하면서 경쟁구도를 형성해나가는 유기적인 구조가 바람직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편 금융위·금감원은 오는 23일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TF’ 1차 회의를 열고 은행권 경쟁촉진 및 구조개선, 성과급‧퇴직금 등 보수체계, 손실흡수능력 제고, 비이자이익 비중 확대, 고정금리 비중 확대 등 금리체계 개선, 사회공헌 활성화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윤석열 정부가 과점체제 폐해를 개선하고 은행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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