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하나금융경영연구소
자료=하나금융경영연구소

[이코리아] 은행권을 향해 화석연료 사업에 대한 자금조달을 중단하라고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내 산업은 아직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은 만큼 점진적인 출구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은행이 기후위기 대응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은 전 세계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비영리단체 ‘리클레임 파이낸스’(Reclaim Finance)가 지난달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넷제로은행연합(NZBA)에 가입한 대형은행 중 56곳이 가입 이후 대출 134건, 인수계약 215건을 통해 화석연료 기업에 약 2700억 달러를 대출한 것으로 집계됐다. 

COP26 이후 전 세계 45개국 약 450개 이상의 금융기관들이 탄소중립을 위해 결성한 글래스고 금융연합(GFANZ) 또한 설립 취지를 무색하게 만드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민간 환경보호단체 ‘시에라 클럽’(Sierra Club)에 따르면, GFANZ 가입 은행의 자산 중 화석연료 관련 비중은 오히려 비가입 은행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은행이 탄소중립을 외치면서 정작 화석연료 사업에 대한 자금조달을 중단하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김종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원은 지난 13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2022년 글로벌 은행들은 석유, 가스, 석탄 부문에 대해 5310억 달러의 채권과 대출을 편성했다”며 “2021년 6575억 달러보다는 줄어들었으나, 감축률이 제한적이라는 비판을 피해가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국내 은행권의 경우 자산 대비 화석연료 비중이 다른 금융권에 비해 높지는 않지만, 탈석탄 선언을 한 지 수 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화석연료 사업과의 관계를 끊어내지 못하고 있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과 양이원영 국회의원실이 공동 발간한 ‘2022 화석연료 금융 백서’에 따르면, 국책은행인 수출입은행뿐만 아니라 다수의 민간은행이 국내외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사업에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6월말 기준 KB국민은행은 강릉 안인 및 인도네시아 찌레본 석탄화력발전소 사업 PF에 참여 중이며, 우리은행(인도네시아 찌레본), 하나은행(인도네시아 자바), NH농협은행(베트남 응이손) 등도 해외 석탄화력발전소 PF에 참여하고 있다. 수출입은행을 포함해 화력발전소 사업 PF에 참여 중인 은행들은 모두 탄소중립을 선언한 곳이다.

 

5대 은행 재생에너지 vs 석탄 누적 투자 비교.(2012년~2022년 6월 말, 억 원) 자료=2022 화석연료 금융백서
5대 은행 재생에너지 vs 석탄 누적 투자 비교.(2012년~2022년 6월 말, 억 원) 자료=2022 화석연료 금융백서

반면 은행권의 재생에너지 투자는 여전히 미약한 수준이다. 백서에 따르면, 민간 금융에서 재생에너지와 석탄 투자 격차가 가장 큰 분야는 은행권이었다. 실제 최근 10년간 국내 은행의 석탄 투자액은 재생에너지 투자액보다 약 3.2배 더 컸다. 석탄 투자 규모 또한 은행이 민간 금융 중 가장 크다. 5대 시중은행 중 석탄보다 재생에너지에 더 많이 투자한 곳은 우리은행과 KB국민은행 2곳 뿐이었다. NH농협은행은 재생에너지와 석탄 누적 투자 비율이 각각 2%와 98%로 석탄 투자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은행권의 화석연료 투자 문제가 해소되지 않으면서, 전 세계적으로 은행의 그린워싱을 근절하기 위한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JP모건체이스, 시티그룹,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미국 대형은행 주주들은 지난달 석유와 가스 탐사 및 개발에 대한 자금 지원을 단계적으로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제출했다. 이들은 미국 대형은행이 지난 5년간 화석연료 프로젝트 감축에 상당한 진전을 이뤘으나, 여전히 기후위기 대응정책 및 기후목표 달성방법에 대한 투명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여전히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은 국내 전력시장 구조상 은행이 급진적으로 탈화석연료 정책을 추진하기는 쉽지 않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 지난해 석탄과 가스가 국내 발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32.4%, 27.2%로 약 60%를 차지한다.

김종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원은 “국내 금융권은 석탄 의존도가 높은 국내 발전산업 특성 상 탈석탄 흐름을 획기적으로 진행하는데 한계가 있어 글로벌 탈석탄 흐름보다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가 있다”며 “국내 금융사는 국내 상황에 부합하는 구체적 기후 목표 달성 방법을 제시하는 등 ESG 정책의 투명성을 제고해 친환경 정책에 대한 주주 가치 실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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