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만 전 언론인.
임순만 전 언론인.

[이코리아]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좀처럼 오르지 않고 있다. 리얼미터가 13일 발표한 2월 2주차 지지율 주간 집계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긍정평가는 36.9%, 부정평가는 60.3%, 잘 모름은 2.8%로 나왔다. 지금까지의 윤 대통령 지지율 여론조사는 리얼미터 조사가 갤럽 여론조사보다 조금 높게 나온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주말에 발표될 갤럽조사에서도 상당한 지지율을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런 정도로 굳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게 한다.

새 정부의 신선함 때문에 지지율이 비교적 높게 나오는 집권 1년 기간에 부정평가가 60% 선을 유지하는 것은 윤 대통령이 국민 다수를 위한 정치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웅변하는 것이다. 이번 조사 결과 ‘잘못하는 편’ 8.6%, ‘매우 잘못함’ 51.7%로 부정평가의 강도가 상당히 세다. 윤 대통령이 민심과 동떨어진 정치를 하고 있다는 여론이 분명하다. 윤 대통령이 민심을 얻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만한전석’(滿漢全席)이란 말이 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면 청나라 시대에 개발된 만주족 요리와 한족 요리 중 뛰어난 요리를 엄선해 제공하는 중국의 뛰어난 연회 양식이라는 정도로 나와 있다. 맛있는 중국 요리 메뉴와 조리법 정도로 설명한 것이다. 그러나 만한전석이라는 말이 갖는 의미는 요리 메뉴로 그치는 게 아니다. 글자 그대로 보자면 만주족과 한족이 모두 연회장을 가득 채웠다는 뜻인데, 이 말의 중점은 만주족과 한족이 모두 기쁘게 한 마음으로 즐겼다는 ‘음식 정치’에 있다. 다시 말하면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 맘에 맞는 국민의힘 의원들만 초청하는 그런 협소한 정치가 아니라 개방적이고 통합적으로 하나가 되는 연회를 강조하는 음식정치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 말이 생겨나게 한 군주는 청나라 강희제로 알려져 있다. 강희제가 누구인가. 

중국 역사에 ‘천고일제’(千古一帝)로 일컬어지는 몇 명의 군주들이 있다. 천년에 한 번 나올 정도의 치적을 남긴 황제를 뜻하는 말로 진 시황 영정, 한 무제 유철, 당 태종 이세민, 청 강희제 현엽 등이 꼽히고 있다. 이 중에서도 강희제는 중국 역사에서 가장 으뜸가는 군주로 일컬어진다. 강희제는 문서를 읽어내는 속독 능력, 기억력, 7개 국어를 구사하는 회화력, 독서와 학습능력, 외교력과 친화력, 문무겸비와 건강한 체력 등 여러 장점을 갖고 있어 당대 중국에 온 서양선교사들이 본국에 보내는 보고서는 강희제를 칭송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고 한다. 

강희제의 장점 중 가장 돋보이는 것은 국민 통합능력이었다고 한다. 만주족(여진) 누루하치가 1616년에 금나라를 건국한 후 1636년 2대 숭덕제가 나라 이름을 바꾼 청의 가장 큰 문제는 만주족과 한족의 통합이었다. 당시 만주족의 총인구는 100만 명에 지나지 않았고, 만주족 군대는 강력한 기병 군단인 팔기군 15만 명이 전부였다. 부패한 명나라를 정복했지만, 실질적으로는 거대한 중원과 한족을 통치하고 군림할 수 없다는 것이 청 왕조의 고민이었다. 만주족을 뒤엎고 한족을 부흥시키자는 ‘멸만흥한’(滅滿興漢) 같은 구호가 중국을 뒤덮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3대 순치제는 사랑했던 후궁의 죽음으로 모든 의욕을 잃고 정사마저 멀리하다 천연두에 걸려 불과 23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강희제는 일곱 살에 4대 군주에 올랐다. 그는 충복들의 보필을 받으며 빠른 시일 내에 총명한 면모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강희제가 61년간의 통치 기간 중 가장 힘쓴 것이 한족과 만주족의 통합이었다. 그가 베푸는 연회가 만주족과 한족이 하나가 되어 참석한 사람 모두 한마음이 되어 사흘이고 나흘이고 잔치를 즐기는 만한전석이었다. 강희제는 명 왕조의 정사를 편찬하기 위하여 특별시험으로 저명한 한족 학자들을 선발해 우대했고, 이를 통해 자존심 강한 한족을 만주족의 통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여소야대 상황이라고 할 일을 못 할 것도 아니고, 지난 정권 때문에 나라가 발전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국민통합보다는 반대파 배제가 우선하는 것처럼 보이는 통치스타일, 약자에 대한 진정한 배려심 부족, 언론을 비롯해 맘에 안드는 세력에 대한 눈에 드러나는 편파, 시도 때도 없이 이루어지는 검찰과 경찰의 압수수색, 단 한 발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한 국무위원들의 국회 설전, 그런 것들이 사람들의 미더움을 사지 못하는 것이다. 따뜻함이 없고 겸손함이 부족해 보인다. 

한국인은 열정이 뛰어난 민족이다. 한국은 어디를 가든, 어떤 세대든 일을 하고 싶어서 열정이 폭죽처럼 터져 나오는 나라다. 그래서 한국의 지도자는 무엇보다 한국인의 이런 열정을 끌어내고 점화시킬 줄 알아야 한다. 집권 1년이 다 되도록 여야수뇌부 회담 한 번 갖지 않은 것은 물론, 여당 내부조차 결속시키지 못하고 국민의힘에서는 과거에는 볼 수 없던 기이한 형태의 당권경쟁이 이루어지고 있다.

집권 1년이면 통치자가 지닌 국정 철학의 대부분이 드러난다. 국민은 과거에 듣지 못했던 새 대통령의 신선한 언어, 양보와 미덕에서 나오는 중후한 인간성, 그런 걸 통해 기존 정치에서 느꼈던 불신과 무질서에서 새로운 길을 찾고 싶어 한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국정 철학은 아직도 아리송하다. 새해를 맞아 전 언론을 상대로 한 기자회견 한번 갖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 집권자의 힘이 빠지는 후반기에는 정국이 이루 말할 수 없는 정도로 거칠어질 우려가 있다. 지금 점검해야 한다. 점검의 기회를 놓치면 다시 시간을 내기 어려울 것이다. 

임순만 작가 · 전 국민일보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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