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글로벌 기금관 전경. 사진=국민연금
국민연금 글로벌 기금관 전경. 사진=국민연금

[이코리아] 국민연금의 반대 의견으로 KT의 차기 최고경영자(CEO) 선임 절차가 처음으로 되돌아가면서, 올해 주요 기업 정기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할 거란 전망이 커지고 있다. 

앞서 KT는 지난 9일 이사회를 열고 차기 대표이사 선임 절차를 공개경쟁 방식으로 재추진하기로 의결했다. KT는 이미 지난해 12월 28일 구현모 현 대표를 차기 대표이사 최종 후보로 단독 추천하기로 결정했지만, 국민연금 등이 후보 선임 과정의 불투명성을 지적하며 반대 의견을 냈기 때문. 실제 국민연금은 구 대표가 단독 후보로 추천된 이날 곧바로 입장문을 내고 “기금이사는 지난 27일 취임 인사 과정에서 말씀드린 'CEO 후보 결정이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경선의 기본 원칙에 부합하지 못한다는 입장”며 “앞으로 의결권행사 등 수탁자책임활동 이행과정에서 이러한 사항을 충분히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구 대표의 연임에 국민연금이 반대 의견을 내면서, 일각에서는 국민연금이 적극적인 스튜어드십 코드 강화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국민연금이 불투명한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주장은 지난 2018년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직후부터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돼왔다. 주요 기업 지분을 보유한 국민연금이 사익편취, 갑질, 횡령 등의 물의를 일으키고도 경영권을 행사하는 총수일가 및 임원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제고할 수 있다는 것. 반면 재계에서는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경영권 간섭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왔다. 

그동안 국민연금은 주주권 행사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지만, 이번 사태를 기점으로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 강화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 국민연금은 지난 1월 25일 현대백화점 주식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일반 투자’로 변경한다고 공시한 바 있다. 현대백화점의 지주사 전환을 위한 인적분할 계획에 반대하기 위해 3월 주주총회를 앞두고 주주활동에 적극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 결국, 지난 10일 임시 주주총회에서 인적분할 안건은 1.7%포인트 차이로 부결됐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최근 행보를 두고 ‘스튜어드십 코드’가 아니라 ‘관치’를 강화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오히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가 ‘주인 없는 기업’에만 치우쳐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국민연금은 지난해부터 총수일가가 없거나 총수 지분율이 낮아 소유가 분산된 기업에 대해 스튜어드십 코드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김태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지난해 12월 8일 기자간담회에서 “국민연금이 지배구조가 확고한 기업과는 다른 측면에서 소유분산기업에 대한 스튜어드십 코드를 강화해야 한다”며 “향후 기금이사가 선임되면 이 부분에 관심을 갖도록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서원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또한 12월 27일 “포스코와 KT 같은 기업에서 황제 경영 같은 우려가 해소되려면 지배구조가 건강하게 개선돼야 한다”며 “소유분산 기업의 건강한 지배구조 구축과 관련해 김태현 국민연금 이사장과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 또한 지난달 30일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과거 정부 투자 기업 내지 공기업이었다가 민영화되면서 소유가 분산된 기업들은 소위 '스튜어드십'이라는 것이 작동돼야 한다”며 “스튜어드십은 소유가 분산돼 지배구조 구성 과정에서 모럴해저드가 일어날 수 있는 경우엔 적어도 그 절차와 방식에 있어선 공정하고 투명하게 해줘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국민연금의 견제는 필수적이지만, 총수일가의 지배력이 약하거나 총수가 없는 기업에 대해서만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가 강화될 경우 자칫 정부 입맛에 맞는 인사를 CEO로 앉히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최근 소유 구조가 분산된 금융지주사 CEO 인사와 관련해서 관치 논란이 나오고 있는 만큼,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강화에 대해 지지보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더 높아지는 모양새다. 

경제개혁연대는 지난 10일 논평을 내고 “소유분산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의 필요성에는 누구나 공감하지만, 재벌 등 가족지배기업에 대해서는 정부나 기관투자자의 역할을 강조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KT, 금융지주사와 같이 이른바 ‘주인 없는’ 기업의 지배구조 문제만을 거론하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며 “현재 국민연금은 소유분산기업을 포함하여 주요 대기업의 유의미한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인데 그중 특정기업만을 상대로 주주권을 행사한다면 그 진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이어 “국민연금은 소유분산기업 외에 후진적인 지배구조를 갖고 있는 재벌 등 가족지배기업에도 동일한 잣대로 적극적인 인게이지먼트(적극적 대화와 관여 활동)를 해야만 불필요한 논란과 오해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며 “이것은 국민의 소중한 노후재산을 지키고 관리하는 국민연금기금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행위준칙”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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