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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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리아] 금융당국이 독립리서치회사(IRP) 제도 도입을 추진하기로 했다. 그동안 ‘매수’ 일색인 증권사 리서치센터에 대해 개인투자자들의 불만이 높았던 만큼, 기업의 눈치를 보지 않는 객관적인 분석 보고서가 확산될 것이라는 기대도 커지고 있다. 

앞서 금융감독원은 지난 6일 ‘2023 금융감독원 업무계획’을 발표하고 “애널리스트의 성과평가 체계 개선 등을 통해 (증권사) 리서치보고서의 신뢰성을 제고하고 독립리서치회사(IRP) 제도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독립리서치회사는 증권사 내에 설립된 리서치센터와 달리 전문적인 보고서 제공을 목적으로 하는 독립된 회사를 말한다. 국내에서도 지난 2016년 리서치알음이 설립된 이래 밸류파인더, 한국금융분석원, FS리서치, CTT리서치 등의 독립리서치 회사가 출범돼 운영 중이지만 아직 제도권 내로 편입되지는 못한 상태다. 실제 현행 자본시장법상 독립리서치 회사는 금융투자업이 아닌 유사투자자문업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전문적이고 객관적인 보고서를 꾸준히 발간하더라도 ‘주식 리딩방’과 다를 바 없는 취급을 받고 있다. 또한, 보고서 공표 전 매매 금지 등의 강력한 규제를 받는 증권사 리서치센터와 달리 독립리서치회사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규제만 적용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금융당국이 독립리서치 회사의 제도권 편입을 추진하기로 결정하면서, 그동안 증권사 리서치센터의 고질적인 병폐였던 ‘매수’ 쏠림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실제 국내 증권사에서 발간하는 보고서는 기업의 실적과는 관계 없이 대부분 ‘매수’ 의견을 담고 있다. 지난해 9월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강병원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7~2021년 5년간 발간된 국내 증권사 보고서 2만2097건 중 매수 의견은 2만335건으로 92%에 달했다. 중립 의견은 2520건으로 11.4%였으며, 매도 의견은 32건으로 0.14%에 불과했다. 

이는 매도 의견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외국계 증권사와는 상반된다. 같은 기간 발간된 외국계 증권사 보고서 11만8019건 중 매수 의견은 5만9213건으로 50%를 차지했다. 중립 의견은 4만126건으로 33.9%였으며, 매도 의견도 1만8680건으로 15.8%에 달했다. 국내 증권사의 매도 의견 비중은 외국계 증권사의 10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셈이다.

증권사가 이처럼 매도 보고서 발간을 주저하는 것은 기업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특정 기업에 대해, 또는 운용사가 보유한 대형주에 대해 매도 의견을 냈다가 자칫 해당 기업·운용사와의 거래가 끊길 위험이 있기 때문. 금융당국이 증권사의 독립적인 보고서 작성을 유도하기 위해 다양한 제도를 도입했지만, ‘고객’과의 관계를 고려해야 하는 증권사 리서치센터의 근본적인 한계를 넘기는 역부족이었다. 실제 금융당국이 지난 2015년 5월 투자의견 비율 공시제, 2017년 9월 목표주가 괴리율 공시제 등을 도입했지만 매도 의견 비중은 좀처럼 늘어나지 않았다. 

개인·기관투자자들의 반발도 매도 보고서를 쉽게 내놓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실제 카카오뱅크의 공모 청약 첫날인 지난 2021년 2월 26일 BNK투자증권은 매도 의견을 담은 보고서를 냈다가 곤욕을 치른 바 있다. 당시 김인 BNK투자증권 연구원은 ‘카카오뱅크는 은행이다’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투자 열기가 과열됐다며, 공모가 3만9000원보다 낮은 2만4000원의 목표주가를 제시했다. 하지만 공모 흥행을 기대하던 투자자들의 비난이 빗발쳤고, 결국 BNK투자증권은 해당 보고서를 자체 홈페이지를 제외한 다른 플랫폼에서 삭제해야 했다. 

문제는 증권사 리서치센터의 매수 쏠림 현상이 결국 투자자들의 피해로 귀결된다는 점이다. 김승한 한국금융분석원 리서치센터장은 지난 2021년 12월 이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일반적으로 주식시장은 매도 리포트에 비우호적인 것이 사실이다. 객관적인 분석 리포트임에도 불구하고 해당 주식을 보유 중인 투자자분들의 공분을 사는 경우도 있고, 해당 기업과의 관계도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라며 “현재처럼 ‘매도’ 리포트 발간에 소극적이거나 비이성적인 주가흐름을 방관한다면 그 피해는 궁극적으로 투자자에게 귀속된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보고서 제공을 목적으로 설립된 독립적인 리서치회사가 기업의 눈치를 보지 않고 과감하게 다양한 투자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제도권으로 편입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 한국거래소, 예탁결제완, 한국증권금융 등 증권 유관기관이 공동 출자해 설립한 리서치센터가 지난해 1월 문을 열기도 했다. 해당 리서치센터는 코스피·코스닥·코넥스 시가총액 5000억원 미만의 중소형 기업에 특화된 보고서를 연 600건 이상 발간해 중소형주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을 높이겠다는 목적을 내세우고 있다. 

한편, 금감원은 “투자자 보호 및 신뢰 제고를 위한 자본시장 공정기반을 확충하고, 신뢰할 수 있는 자본시장 투자환경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독립리서치회사의 제도권 편입을 통해 리서치센터의 매수 쏠림 문제가 해소되고 투자자들이 참고할 만한 정보가 늘어나게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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