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법무부장관이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03회국회(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서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03회국회(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서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비동의 간음죄’ 도입 논의에 대해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를 도입한 해외 주요국과는 법 문화의 차이가 있는 만큼, 성급하게 도입하면 억울한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앞서 여성가족부는 지난달 26일 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2023~2027년)을 발표하며 비동의 간음죄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가, 법무부 및 여권의 반대에 부딪혀 철회한 바 있다. 

‘비동의 간음죄’를 도입하면 형법상 강간죄의 구성요건이 ‘폭행 및 협박’에서 ‘동의 여부’로 바뀌게 된다. 현행법상 강간죄가 성립하려면 피해자의 저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과 협박이 있어야 한다. 이처럼 법원이 강간죄의 구성요건인 폭행과 협박을 가장 좁게(최협의) 해석하고 있기 때문에 항거곤란을 입증하기 어려운 경우, 공포심에 짓눌려 저항하지 못한 경우, 위계·위력이나 그루밍에 의한 성폭행 등의 경우에는 처벌이 어려웠다. 이 때문에 강간죄 구성요건을 ‘동의’ 여부로 바꿔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 여성계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실제 독일·영국 등은 폭행·위협과 함께 타인의 인식 가능한 의사에 반한 성적 행위에 대해 성폭력범죄가 성립하도록 법률을 개정했다. 

반면, 한 장관은 비동의 간음죄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 장관은 지난달 31일 경기 과천 법무부 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관련 질문을 받자 “저는 성범죄에 대해 엄격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입장에 서 있다”면서도 “다만 이 문제는 그렇게 입법을 할 경우, 수사와 재판의 현장에서 동의 여부에 대한 입증책임이 검사가 아니라 사실상 피고인에게 전환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장관이 신중론을 내세운 이유는 비동의 간음죄를 도입한 국가와 국내 법 문화 간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한 장관은 “스웨덴, 독일에서 (비동의 간음죄를) 도입한 나라들은 성범죄에서 유죄 판결을 받는 확률이 굉장히 낮다”며 “우리나라는 성범죄에 있어서 법원의 유죄 판결율이 90%가 넘을 것이다. 독일은 8%, 스웨덴은 23% 정도로 우리 기준보다 많이 낮다”고 말했다. 한 장관은 이어 “이것은 완전한 정답이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억울한 사람을 처벌하는 결과가 생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

◇ 한동훈 “한국 성범죄 유죄 판결율은 90% 이상”

국내에서는 성범죄 유죄 판결율이 높아 비동의 간음죄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는 한 장관의 주장은 사실일까? <이코리아>는 법원 및 검찰의 범죄통계를 통해 한 장관의 발언을 검증해봤다.

법원행정처가 지난해 9월 발간한 ‘2022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 2021년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으로 접수된 사건은 총 5161건으로, 이 가운데 97.2%에 해당하는 5018건이 처리됐다. 여기서 소년부 송치 55건, 기타 290건을 제외하고 1심 판결이 내려진 성범죄 사건은 4673건(90.5%)으로 집계됐다. 

1심 판결이 내려진 성범죄 사건 중 무죄가 선고된 경우는 124건으로 전체의 2.7%에 불과했으며, 선고유예(47건), 형의 면제(3건), 공소기각(2건)을 모두 더해도 3.8%에 그쳤다. 반면 유기징역과 재산형 및 집행유예를 모두 더한 유죄 판결율은 96.3%로, 한 장관이 주장한 대로 90%가 넘었다. 

이는 같은 해 1심 판결이 선고된 형사사건의 유죄율보다도 높은 것이다.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 2021년 1심 판결이 내려진 형사사건은 총 21만8648건으로 이 가운데 무죄는 7090건, 3.2%에 불과했다. 선고유예와 형의 면제, 공소기각을 더해도 그 비율은 5.5%에 그쳤으며, 반면 유기형과 재산형, 집행유예를 더한 유죄율은 94.5%로 성범죄 유죄율보다 1.8%포인트 낮았다. 

다만 성범죄의 경우 다른 흉악범죄에 비해 기소되는 비율이 낮았다. 대검찰청이 발간한 ‘2022 범죄분석’에 따르면, 지난 2021년 성폭력 피의자 31991명 중 42.9%에 해당하는 1만3740명이 기소됐으며, 구속된 경우는 1535명(4.8%)에 불과했다. 이는 전체 형사사건 범죄자 기소율(30.3%)보다는 높지만, 살인(기소율 68.8%), 강도(66.9%), 방화(53.8%) 등 다른 흉악범죄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수치다. 이는 성범죄에는 강간뿐만 아니라 불법촬용, 통신매체이용음란, 허위영상물편집 및 배포 등 다양한 범위의 범죄가 포함되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 허위영상물편집 및 배포(18.1%), 통신매체이용음란(27.3%) 등 디지털 성범죄의 경우 기소율이 강간 등에 비해 낮은 편이다. 

성범죄의 경우 1심 판결에서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비율도 다른 형사범죄에 비해 높았다. 실제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 2021년 1심 판결이 내려신 형사사건 21만8648건 중 집행유예(재산형 포함)가 선고된 경우는 총 8만1887건으로 37.5%에 달했다. 반면 성범죄 사건의 경우 1심 판결에서 집행유예가 선고된 비율이 39.1%로 전체 형사사건에 비해 1.6%포인트 높았다. 

◇ 검증 결과

사실이다. 한 장관의 발언대로 국내 성범죄 사건이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는 경우는 90% 이상이었으며, 전체 형사사건 유죄율과 비교해도 높았다. 다만 성범죄 피의자에 대한 기소율은 살인, 강도, 방화 등 다른 흉악범죄보다 낮았으며, 집행유예 비율은 전체 형사사건에 비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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