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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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리아]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은행권이 오히려 대출금리 인하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시장금리가 상대적으로 낮아진 영향도 있지만, ‘이자 장사’라는 비판 여론과 금융당국의 압박, 정치권의 ‘횡재세’ 논의까지 겹쳤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앞서 우리은행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새해 첫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를 연 지난 13일부터 우대금리를 높이고 일종의 가산금리인 본부조정금리를 인하하는 방식으로 주택담보대출 및 전세대출 금리를 인하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는 급여·연금이체 및 신용카드 관련 우대금리는 기존 0.1%포인트에서 0.2%포인트로 높이고, 신규 코픽스 6개월 및 금융채 6개월 기준 아파트담보대출의 본부조정금리를 0.7%포인트 인하했다. 

대출금리 인하에 나선 것은 우리은행만이 아니다. 신한은행 또한 6%대였던 주담대 금리 상한이 5%대 후반으로 내려 5대 은행 중 가장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하나은행 또한 최근 일부 대출상품 금리를 최대 0.5%포인트까지 낮췄다.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했음에도 주요 은행이 일제히 대출금리를 내린 직접적인 이유는 시장금리의 하락이다. 변동금리의 산정 기준인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가 지난달 예금금리 하락으로 인해 낮아질 가능성이 큰 데다, 주담대 혼합형 및 신용대출의 지표 금리인 은행채 5년물 금리도 지난 6일 4.527%에서 13일 3.918%로 0.394%포인트나 내렸기 때문. 

하지만 최근 금리 상승으로 실적이 크게 성장한 은행권을 향한 따가운 여론의 눈총이 대출금리 인하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도 제기된다. 이달 초 우리은행의 주력 주담대 상품인 ‘우리 아파트론’의 신규 코픽스 기준 대출금리는 지난해 말(연 6.92∼7.72%)보다 오른 연 7.32∼8.12%(내부 3등급)로 집계된 바 있다. 변동금리 상단이 8%대에 진입하면서 차주들의 이자 부담이 가중되자 부정적인 여론이 확산됐고, 이를 의식한 정치권과 금융당국의 시선이 은행권에 집중됐다는 것. 

현재 정치권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은행권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지난해 진보정당을 중심으로 제기됐던 ‘횡재세’ 논의가 여권에서까지 나오는 모양새다. 지난 12일 열린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김상훈 비대위원은 “은행권은 국민들의 고통을 담보로 사상 최대 성과급 잔치를 벌이고 있다”며 “횡재세 논의가 고개를 들고 있지만 부족하다. 자유시장 경제의 첨단인 미국에도 폭리처벌법이 있다”고 은행권을 강도 높게 비난하기도 했다. 

야권에서는 이미 지난해부터 은행권에 대한 횡재세 적용을 주장해왔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지난해 9월 국내 정유사 4곳과 16개 은행을 대상으로 초과이익에 대해 50%의 세금을 부과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지난달 과세표준 3000억원을 초과하는 기업의 해당 사업연도 총 소득금액이 직전 3개 사업연도의 평균소득금액을 20% 이상 초과하는 경우, 초과분에 대해 20%의 세금을 부과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양 의원안의 적용을 받는 국내 기업은 지난 2021년 기준 63개인데, 이 가운데 금융·보험업이 24개(38.1%)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양 의원은 “최근 원유·식료품 등의 가격 급등과 물가 상승, 이에 대응하기 위한 기준금리 인상으로 정유·금융 등 일부 산업 부문이 전례 없는 횡재 이윤을 거둬들이고 있는 반면, 서민들의 경제생활은 힘들어지는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며 입법 취지를 설명했다. 

금융당국의 시선도 따갑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13일 “은행은 가산금리 등 부분에서 조정할 수 있는 재량이 있다”며 “특히 은행은 작년 순이자이익 등 어느정도 여력이 생겼다. 과도한 대출금리 상승으로 가계·기업의 부담이 크다는 점을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NH농협·KB·신한·우리·하나 등 5대 은행의 분할상환식 주택담보대출 평균금리는 지난달 기준 5.452%로 전월(5.308%) 대비 0.144%포인트 올랐다. 조달금리는 전월 대비 0.016%포인트밖에 오르지 않은 반면, 가산금리는 0.154%포인트나 올랐기 때문. 우대금리 등을 포함한 가감조정금리가 0.026% 올랐지만 가산금리 인상폭을 상쇄하기는 어려웠다. 

이미 해외 주요국에서도 에너지 업체를 중심으로 횡재세를 부과한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스페인의 경우 지난해 7월 에너지 기업뿐만 아니라 은행을 대상으로 70억 유로의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다만 국내에서 은행을 대상으로 횡재세를 도입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백종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지난해 9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국내 금융권은 최근 금리 상승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은행과 달리 금융당국의 금리, 수수료 등 전반에 규제 강도가 높아 초과이익 규모가 제한적이며, 최근 예대금리차 비교공시, 안심전환대출 등으로 금융권 공적기능도 강화되고 있다”며 “국내는 횡재세보다 기금 조성을 통한 사회적 책임 강화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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