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제는 다양한 국민의 이해를 잘 대변할 수 있는 시스템이 돼야 하는데 소선거구제는 전부 아니면 전무로 가다 보니 선거가 너무 치열해지고 진영이 양극화되고 갈등이 깊어졌다. 그래서 지역 특성에 따라 2명, 3명, 4명을 선출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정치 시작 전부터 오랫동안 그렇게 생각해 왔다. 중대선거구제를 통해서 대표성이 좀 더 강화되는 방안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제안하면서 정치권에 선거제도 개편 논의가 시작됐다. 사진은 10일 경기 국립과천과학관에서 열린 과학기술인·정보방송통신인 신년인사회에서 격려사를 하는 윤 대통령의 모습. 사진=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제안하면서 정치권에 선거제도 개편 논의가 시작됐다. 사진은 10일 경기 국립과천과학관에서 열린 과학기술인·정보방송통신인 신년인사회에서 격려사를 하는 윤 대통령의 모습.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윤석열 대통령이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새해 화두로 던지면서, 정치권에 선거제도 개편 논의가 다시 시작됐다. <이코리아>는 윤 대통령의 주장대로 중대선거구제가 기존 소선거구제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인지 과거 선거 사례와 학계의 논의를 통해 알아봤다. 

◇ 중대선거구제 도입, 지역구도 완화할까?

소선거구제와 중대선거구제는 한 선거구에서 몇 명의 대표를 선출하느냐에 따라 나뉜다. 소선거구제는 한 선거구에서 한 명의 대표만 선출하는 반면, 중선거구제는 2~4명, 대선거구제는 5명 이상의 대표를 선출한다. 

윤 대통령이 한 선거구에서 여러 명의 대표를 뽑는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 이유는 소선거구제가 국내 정치 지형을 왜곡시키고 있다는 인식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 윤 대통령은 지난 2일 조선일보와의 새해 인터뷰에서 “선거제는 다양한 국민의 이해를 잘 대변할 수 있는 시스템이 돼야 하는데 소선거구제는 전부 아니면 전무로 가다 보니 선거가 너무 치열해지고 진영이 양극화되고 갈등이 깊어졌다”고 설명했다.

실제 소선거구제를 비판하는 측은 거대 양당체제와 지역구도를 기존 선거제도의 폐해로 지목하고 있다. 소선거구제라는 승자독식 구조하에서는 정치신인이나 소수자, 소수 정당을 비롯해 지역 기반이 취약한 정당의 후보가 의석을 확보하는 것이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반면 중대선거구제를 지지하는 측에서는 한 선거구에서 여러 명의 대표를 선출하게 되면 지역구도가 완화되고 소수 정당의 원내 진출도 더욱 쉬워질 것이라 주장한다. 

그렇다면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할 경우 이러한 문제들이 해결될까? 국내 선거에서 중선거구제를 도입했던 사례를 살펴보면 효과는 뚜렷하지 않다. 이준한 인천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난 2010년 발표한 논문 ‘한국의 중선거구제가 선거결과에 미친 영향’에서 “ 중선거구제는 소수정당 또는 이념정당의 진출에 다소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지만 이를 제외한 다른 목표에는 주목할 만한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며 “특히 제4회 지방선거를 통해서 보았을 때 중선거구제는 지역주의의 완화와 전혀 관련이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 2006년 실시된 제4회 지방선거에는 지역주의 완화를 위해 중선거구제가 도입됐으나, 정당에 따른 지역독식 현상이 이전 선거와 다름 없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실제 한나라당은 부산(86.7%), 대구(97.0%), 울산(58.1%), 경북(74.1%), 경남(74.7%)에서 압승했으나 광주, 전북, 전남에서는 단 한 석도 확보하지 못했다. 열린우리당은 광주, 전북, 전남에서 선전을 했지만 부산(12.0%), 대구(2.0%), 울산(4.7%), 경북(2.0%), 경남(5.8%) 등 영남지역에서는 고전했다. 민주당(광주, 전북, 전남)과 국민중심당(대전, 충남) 등도 지역 기반을 벗어나지 못했다. 

한 선거구에서 2~4명의 대표를 선출할 수 있었지만 열린우리당이 영남에서, 또는 한나라당이 호남에서 2~4등으로 당선된 경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대부분 한 정당이 선거구에 할당된 의석을 전부 장악했는데, 특히 한나라당은 대구에서 3인 선거구의 75%, 경북에서 4인 선거구 네 곳 전체를 독점했다. 

물론 중선거구제로 치러진 9~12대 선거에서는 지역구도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 교수는 “중선거구제 이외에 다른 변수까지 감안하게 되면 대통령선거에서도 아직 맹아 수준에 머문 지역주의였다는 사실이 더 중요한 배경이 될 것”이라며 “또한 제9대~제12대 국회의원선거가 치러진 정치적 환경은 유신과 군사정권으로 점철되어 자유롭고 공정한 정당활동과 투표선택이 보장되지 못한 시절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여성·정치신인의 기초의회 진출 성과도 불분명했다. 3회 지방선거에 비해 4회 지방선거에서는 40대 비중이 3.5%포인트 늘고 60대 이상 비중이 3.6%포인트 감소했으나, 당선자 연령대가 뚜렷하게 변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무소속 출신 후보의 당선인 비중 또한 9.0%에 불과했으며, 그나마도 대부분 영호남 지역에 편중돼 실질적인 의미의 정치신인으로 분류하기 어렵다. 기성정당의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뒤 다시 입당하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9~12대 총선에서도 중선거구제가 정치신인의 증가에 미치는 영향은 확인되지 않았다. 오히려 소선거구제로 치러진 8대 총선에서 74명(48.4%)의 정치신인이 등장했으며, 11대를 제외한 중선거구제 총선에서는 초선의원 비율이 높지 않았다.

4회 지방선거에서는 110명(4.4%)의 여성 기초의회의원이 탄생해 3회(77명, 2.2%)보다 비중이 크게 늘었다. 하지만 중선거구제와 관련이 없는 광역의회에서도 여성 당선자 비중은 3회 14명(2.3%)에서 4회 32명(4.9%)로 증가했다. 여성 당선자의 증가를 중선거구제의 영향으로 해석할 수 없다는 뜻이다. 9~12대 총선에서도 중선거구제는 여성의 국회 진출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8대 총선에서는 단 한 명도 없었던 여성 당선자가 9대에는 2명으로 늘어나기는 했지만, 그 이후로는 더 증가하지 않았다. 오히려 중선거구제보다 전국구나 유신정우회가 여성의 국회 진출에 더욱 효과 있는 경로였다.

◇ ‘대표성’과 ‘비례성’, 두 마리 토끼 잡으려면?

비록 과거 선거 사례에서 중대선거구제의 효과가 뚜렷하게 확인되지는 않지만, 중대선거구제가 소선거구제보다 대표성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윤 대통령의 주장은 곱씹어볼 가치가 있다. 한 선거구에서 한 명의 후보에게만 투표할 수 있는 경우 대량의 사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유권자 입장에서는 자신이 생각하는 최선의 후보 대신 차선, 또는 차악의 선택을 내리게 될 수도 있다. 반면 2명 이상의 대표를 선출하는 중선거구제에서는 소선거구제보다 사표의 비중이 줄어들고, 최선의 후보에게도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다.

문제는 선거에서 고려해야 할 핵심 요소는 대표성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선거제도는 대표성과 함께 비례성을 고려해 설계된다. 정당이 얻은 득표수와 의석수가 어느 정도 근접하는지를 의미하는 비례성은 중대선거구제와는 별 관련이 없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2017년 발표한 ‘국회의원 중대선거구제 도입논의와 쟁점’ 보고서에서 “중대선거구제는 1표라도 많이 얻은 후보가 당선되는 다수제 방식이기 때문에 득표와 의석의 비례성은 낮게 나타난다”며 “예를 들어, 5인을 선출하는 선거구에서 당선인 5인의 득표차이는 모두 다를 수 있다. 서로 다른 득표차이로 당선인이 결정된다는 것은 비례성이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이어 “한 정당의 복수후보가 당선될 수 있다는 점도 비례성을 낮추는 요인”이라며 “득표수와 무관하게 당선인이 결정되는 중대선거구제에서 한 정당에서 복수당선인이 나올 우 비례성은 더욱 저하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중대선거구제는 선거구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비례성 제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수제방식이고 복수공천을 허용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인물선거라는 점에서 비례성 제고의 효과가 나타나기 어렵다”며 “우리나라와 같은 혼합식 선거제도에서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할 경우 선거구 확대에 따른 단점으로 인해 제도의 취지를 살리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신중한 검토가 요구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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