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3 경제계 신년인사회에서 격려사를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3 경제계 신년인사회에서 격려사를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이코리아] 윤석열 대통령이 ‘중대선거구제’를 새해 정치권 화두로 던졌다. 언론은 선거제도 개편 논의에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매체별로 미묘한 온도차도 엿보였다.

중대선거구제는 선거구당 1인의 대표를 선출하는 ‘소선거구제’와 달리 2인 이상의 대표를 선출하는 제도를 말한다. 중대선거구제에서는 지지도가 취약한 정당도 당선인을 낼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에, 소선거구제의 단점인 ‘승자독식’을 완화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중대선거구제는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병폐인 ‘지역구도’와 ‘거대양당체제’를 극복할 해법 중 하나로 주목을 받았으나 ▲정당의 복수공천에 따른 경쟁 과열 ▲당선인의 대표성 약화 ▲선거비용 증가 등의 단점으로 인해 도입 논의는 평행선을 달려왔다. 하지만 최근 윤 대통령이 언론 인터뷰에서 중대선거구제 도입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정치권에서 논의가 재점화되는 모양새다. 

◇ 尹‘이 던진 ‘중대선거구제’ 화두... 여야 모두 반응 제각각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운영하는 뉴스 빅데이터 분석시스템 ‘빅카인즈’에서 ‘중대선거구제’를 검색한 결과, 지난 2일부터 6일까지 총 436건의 기사가 보도된 것으로 집계됐다. 날짜별로 보면, 4일 129건으로 가장 많은 기사가 나왔다. 이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중대선거구제에 관한 의견을 밝힌 데다, 김진표 국회의장도 선거제도 개편을 위해 2월 중 복수안을 도출한 뒤 전원위원회 논의에 착수할 것을 제안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중대선거구제 관련 기사에 가장 많이 등장한 키워드는 ‘윤석열 대통령’이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중대선거구제를 통해 대표성을 좀 더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며 “모든 선거구를 중대선거구제로 하기보다는 지역 특성에 따라 한 선거구에서 2명, 3명, 4명을 선출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달 2일 조선일보가 윤 대통령 인터뷰 기사를 보도하면서, 중대선거구제는 새해 정치권의 가장 뜨거운 이슈로 급부상했다. 

중대선거구제 논의에 관한 언론의 초점은 여야 의원들의 반응에 맞춰져 있다. 중대선거구제 도입에 따른 득실 계산이 복잡해, 여야 모두에서 일관된 지지·반대의 반응이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신문은 4일 기사에서 “지역별로 의원들 개개인의 입장이 상이해 의견을 모으기도 쉽지 않다”며 “중대선거구제는 특성상 ‘텃밭’에선 불리하고 ‘험지’에선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울신문은 이어 “특히 이다. 민주당이 국민의힘에 석패하는 경우가 잦은 영남 지역에서는 중대선거구제가 도입되면 민주당의 진입장벽이 낮아지기 때문에 야당 의원들은 환영하지만 여당 의원들은 반대한다”며 “민주당이 신승한 지역이 많은 수도권에서는 여당의 찬성 목소리가 높다”고 설명했다.

경향신문 또한 여야의 미지근한 반응 때문에 선거제도 개편이 속도를 내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경향신문은 3일 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띄운 중대선거구제에 3일 국민의힘은 뜨뜻미지근한 반응”이라며 “핵심 지지 기반인 영남권 일부를 더불어민주당에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풀이된다”라고 말했다. 경향신문은 이어 “민주당도 소선거구제 폐해에 공감하면서도 중대선거구제가 만병통치약일 수 없다는 반론이 내부에서 제기된다”며 “정의당은 중대선거구제 도입안에 판단을 유보했다”고 전했다.

 

2~6일 보도된 중대선거구제 관련 기사의 연관 키워드. 자료=빅카인즈
2~6일 보도된 중대선거구제 관련 기사의 연관 키워드. 자료=빅카인즈

◇ 언론, 중대선거구제 논의 환영하지만 온도차 ‘뚜렷’

한편, 윤 대통령의 ‘중대선거구제’ 도입 제안에 대한 언론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인 편이다. 선거제도마다 장단점이 있지만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병폐인 지역구도와 양당체제를 극복하기 위해 변화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는 형성돼있기 때문.

특히, 보수 성향 매체에서는 중대선거구제 도입 필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높다. 윤 대통령과 인터뷰를 진행한 조선일보는 3일 사설에서 “지역구마다 국회의원 1명을 뽑는 현행 소선거구제는 승패가 분명해 책임정치를 구현한다고 하지만, 승자독식 구조여서 여야 정당, 지지자 간 극단적 대립과 갈등을 키워왔다”며 “한 지역구에서 여러 명의 의원을 뽑는 중대선거구제는 군소 정당 난립 우려가 제기되지만 여야 간 죽기 살기식 대결을 완화하고 사표도 최소화할 수 있다. 지금처럼 철저하게 양극단으로 갈라진 정치 현실에서는 도입의 득이 실보다 클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이어 중대선거구제 도입 여부는 “현역 의원, 그중에서도 압도적 의석을 가진 민주당 의원들 입장이 관건”이라며 “지난해 지방기초의원 선거 때 30개 지역구에서 중대선거구를 시범 실시한 결과 민주당은 이득을 보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중앙일보 또한 이날 사설에서 “(소선거구제에서는) 지역구 선거에서 한 명만 당선되기 때문에 상대 정당과 후보를 최대한 악마화해 표를 얻지 못하게 하려고 애쓴다”며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상대를 적으로 간주해 격돌하면서 의석을 나눠 갖는 ‘적대적 공생관계’를 이어 왔다”고 말했다. 중앙일보는 이어 “‘승자 독식’의 선거제도는 정당 내부도 망가뜨린다. 공천을 한 명만 받으니 경쟁이 치열하다”며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앞두고 ‘친윤’ 경쟁이 벌어지고 민주당에서 팬덤 편승 정치가 기승을 부리는 배경”이라고 말했다. 

반면, 진보 성향 매체는 윤 대통령이 촉발한 중대선거구제 논의를 환영하면서도, 중대선거구제 자체가 아니라 전반적인 선거제도 개편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겨레는 2일 사설에서 소선거구제의 폐해를 지적하면서도 “중대선거구제가 만능의 해법이거나 유일한 대안이라고 할 순 없다”라고 말했다. 한겨레는 “(중대선거구제가) 자칫 기득권의 과점 체제로 흘러가지 않도록 심사숙고해 대비책을 찾아야 한다. 비례성 강화도 선거구제 개편 못지않게 중요하다”며 “거대 여야의 위성정당 꼼수로 실패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부터 제대로 손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겨레는 5일 사설에서도 “중요한 건 원칙과 방향성부터 뚜렷이 하는 일이다. 승자 독식과 양당의 과대 독점, 대결 정치로 귀결된 기존 선거제의 폐단을 바로잡고 표를 준 국민의 뜻이 최대한 반영되는 구조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라며 “이 원칙에 설 때 선거제 개혁은 소선거구제냐 중대선거구제냐는 협소한 선택의 틀을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또한 2일 사설에서 “한 지역구에서 2~3인을 뽑는 중선거구제와 4인 이상을 뽑는 대선거구제는 소선거구제의 보완책이 될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도농 지역에 모두 도입할지, 2인·3인·4인 이상 선거구를 어떻게 정할지, 한 선거구에 정당 복수공천을 허용할지 등 짚고 따질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경향신문은 이어 “승자·지역 독식을 막는 방법에 중대선거제만 있는 것도 아니다. 비례대표제를 전국 권역별로 뽑거나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위성정당을 막고, 지역구 다득표 탈락자를 비례대표로 구제하는 석패율제도 있다”며 “모든 선거제의 장단점을 두루 따지고 조합해 최대한 합리적인 제도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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