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제강 인적분할 전후 사업구조. 사진=동국제강
동국제강 인적분할 전후 사업구조. 사진=동국제강

[이코리아] 무분별한 물적분할에 대한 개인투자자들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상대적으로 주주친화적인 방식이라 평가받는 인적분할에 나서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물적분할에 나선 기업들과 다를 바 없이 주가가 하락하고 있어, 투자자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앞서 동국제강은 지난 9일 이사회를 열고, 인적분할을 통해 존속법인인 동국홀딩스(지주회사)와 신설법인인 동국제강(열연사업) 및 동국씨엠(냉연사업)을 각각 설립하고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다. 지주사 체제 하에서 각 사업부문의 전문성을 키워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취지에서다. OCI 또한 주력 사업인 화학부문(베이직케미칼, 카본케미칼)을 인적분할해 존속법인 OCI홀딩스와 신설회사인 OCI를 각각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이들이 물적분할 대신 인적분할을 결정한 이유는 주주가치 훼손이라는 비판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모회사의 핵심 사업부문을 물적분할해 새 자회사를 설립한 뒤 이를 상장하는 방식은 경영권을 확보하면서도 손쉽게 자금을 모을 수 있어 한동안 다수의 기업에게 활용된 바 있다. 하지만 기존 모회사 주주에게는 신설 자회사 주식도 주어지지 않는 데다, 핵심 사업부문의 이탈로 모회사 주가가 하락해 손실을 볼 수 있는 만큼 악재로 여겨졌다. 이 때문에 금융당국도 최근 공시 및 상장심사 강화, 주식매수청구권 도입 등 물적분할 후 모자회사를 동시 상장하는 ‘쪼개기 상장’으로부터 개인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도입하고 있다. 

반면 인적분할은 기존 모회사 주주에게 신설 자회사의 주식이 주어지는 만큼, 상대적으로 주주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안전한 방법으로 여겨졌다. 주주 구성은 그대로 두고 회사만 나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동국제강과 OCI 외에도 올해 기업 분할에 나선 다수의 기업이 주주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인적분할을 선택한 바 있다. 현대백화점, 현대그린푸드 등은 인적분할을 선택했고, 한화솔루션은 인적분할과 물적분할을 동시에 활용하기로 했다.

문제는 ‘물적’이든 ‘인적’이든 기업분할이 여전히 주주들에게 ‘악재’로 여겨지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동국제강은 인적분할 계획을 공시한 지난 9일 1만3450원이었던 주가가 27일 1만2100원으로 10%(1350원)나 하락했다. OCI 또한 인적분할 발표 당시(11월 23일, 10만4000원) 보다 주가가 1만8000원(17.3%)나 떨어졌다. 

주주들이 신설 자회사의 주식을 받을 수 있는 인적분할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인적분할이 오너일가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꼼수’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인적분할 시 기존회사가 자사주를 보유한 경우 기존회사를 주주로 간주해 신주를 배정하는데, 이를 통해 기존회사의 지배주주는 추가적인 비용 없이 신설회사에 더 강한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자본시장연구원이 지난 8월 발표한 ‘자사주 마법과 자사주의 본질’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21년까지 상장기업의 인적분할 193건을 분석한 결과 92건이 지주회사 전환과 관련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를 작성한 김준석 선임연구위원은 “자사주 마법을 이용한 인적분할과 이어지는 현물출자 유상증자를 통해 지배주주의 존속회사와 신설회사에 대한 지분율은 인적분할 이전에 비해 각각 15%포인트, 11%포인트 증가해 지배력이 크게 상승한다”며 “반면, 외부주주의 시가총액 보유비중은 인적분할 이전에 비해 6%포인트 감소하여 지배력뿐만 아니라 부의 배분에서도 왜곡이 발생하는 것으로 확인된다”고 설명했다.

시민사회단체도 인적분할이 지배주주의 사익추구에 악용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26일 논평을 내고 “경제개혁연대는 동국제강과 OCI의 자사주 보유 목적이 총수일가의 지배력 확대를 위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으며, 나아가 이들의 지주회사 전환이 지배구조 개선과는 다소 거리가 먼 것으로 판단한다”며 “자사주를 활용한 편법적 지배력 확대 시도를 즉각 중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국제강은 장세주 회장이 14.54%(6월말 기준)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친족 지분을 모두 더하면 약 26.28%까지 지분율이 상승한다. 경제개혁연대는 장 회장과 특수관계인이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 동국홀딩스(분할 존속회사) 유상증자에 현물출자 방식으로 참여할 경우, 분할 후 지주사 지분율이 26.28%에서 약 83%까지 높아질 것으로 추정했다. 또한, 자사주를 활용해 자회사 지분율 요건(지주사가 자회사 지분을 최소 30% 이상 보유) 또한 충족할 수 있을 것(26.28%→약 30.4%)으로 내다봤다. 

OCI 또한 인적분할 공시 후 신탁계약을 통해 자사주 30만주(1.26%)를 취득하고 이를 분할 존속회사 OCI홀딩스에 배정하기로 했다. OCI는 지배구조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지만, 경제개혁연대는 인적분할을 통해 이우현 부회장 등 총수일가 지분율이 22.4%에서 29%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정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총수일가의 지배권 강화를 위해 자사주를 활용하는 편법은 더 이상 용납되어선 곤란하다”며 이들 기업이 인적분할 이전에 자사주를 먼저 소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지배주주가 ‘자사주 마법’을 악용하지 못하도록 관련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인적분할에서 자사주 마법이 가능한 것은 경제적으로 자산으로 간주하기 어려운 자사주를 법령상 자산으로 인정하는 모순이 근본 원인”이라며 “지배주주가 자사주를 남용할 가능성을 줄이고 자사주의 경제적 실질을 정확히 반영하기 위해서는 자사주 취득을 자본의 환급, 주식의 소각으로 간주하는 일관된 규제 체계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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