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기획재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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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리아] 정부는 탄소중립 실현을 목표로 지난해 약 2조5000억 원 규모의 '기후대응기금'을 처음으로 편성했다. 기후대응기금은 탄소중립 친화적인 재정 지원을 위해 배출권거래제 유상할당 수입을 재원으로 한다. 이와 관련, 산업계에서는 기금을 소규모 사업위주로 분산 지원 대신 감축효과가 큰 업체나 기술혁신에 지원하는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산업연합포럼(KIAF)이 지난 8월 2일 개최한 제27회 산업발전포럼에서 기후대응기금이 소규모 사업위주 지원에서 현상파괴적 기술혁신 지원체제로 전환하고 기업의 탄소중립R&D에 대해서는 해당액만큼 배출권 추가할당과 세액공제를 제공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정만기 KIAF 회장은 이날 열린 기조 발제에서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규제강도가 높은 배출권거래제를 운영하고 있다”며 “배출권거래제가 탄소중립수단인 현상파괴적 기술혁신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정 회장은 “전 세계 37개 지역/국가 단위에서 탄소세를, 한국을 포함한 34개 지역/국가 단위에서 배출권거래제를 도입 중이다. 한국은 거의 유일하게 전기사용 등 간접배출을 포함시킴으로써 배출총량 중 거래대상이 73.5%로, EU 39% 중국 40% 대비 30%p정도 높을 뿐만 아니라 대상산업을 EU는 발전, 산업, 항공부문만 포함하는 반면 한국은 전 부문을 포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은 CO2뿐만 아니라 CH4, N2O SF6 HFCs PFCs 등 6개에 적용하는 하는 반면, EU는 CO2 N20 PFCs 등 3개, 중국은 CO2에만 적용하고 있는 것이 그 예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배출권거래제는 기업이 할당 받은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 있는 권리인 배출권이 남으면 팔고 부족하면 사도록 거래를 허용하는 제도를 뜻한다.

탄소배출권 거래제가 목적을 달성하려면 유상할당이 필요하다. 유상할당이란 정부로부터 할당 받은 배출권 일부를 돈을 주고 받는 것을 뜻한다. 경매를 통한 유상할당의 경우 환경부장관이 배출권거래소인 한국거래소에 입찰계획을 공고하면, 유상할당업체가 참가하는 방식이다. 배출권 판매수입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에 따라 기후대응기금의 재원으로 쓰인다.

올해는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제3차 계획기간(2021~2025년)'으로, 시행령 등에 근거해 배출권 할당업체 중 일부는 경매 등의 방법으로 할당량의 10%를 돈을 주고 사도록 됐다. 나머지 90%의 배출권은 무상으로 준다. 

자료=한국산업연합포럼
자료=한국산업연합포럼

이날 포럼에서 배출권거래제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배출권거래제가 현상파괴적 기술혁신을 저해할 우려를 들었다. 

정 회장은 “우리의 2050년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모두 수소환원제철 등 파괴적 기술혁신을 전제로 설정됐고, 실제로도 기존 기술개량으로는 목표달성이 어려워 파괴적 기술혁신이 필요하지만 정책은 역으로 가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철강업의 경우 2018년 배출량 1억 1백만톤 대비 약 1억톤인 90.8%의 온실가스를 2050년까지 감축해야하는 데, 이는 아무리 현존 기술을 개량하고 시설교체를 한다 해도 달성할 수 없는 목표”라면서 “CO2배출이 전혀 발생하지 않는 수소환원제철 공법의 조속 개발외는 방법이 없다”고 주장했다. 

정 회장은 “반면, 정책은 생색내기 잡다한 소규모 사업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 문제”라면서 “배출권유상할당 수입금 등으로 조성된 우리의 기후대응기금은 탄소중립 도시숲 조성 등 나눠쓰기·생색내기 사업에 치중하여 예산낭비 및 기술혁신 동기 위축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배출권유상할당 자금 7000억원 등으로 지난 정부 도입된 기후대응기금은 2022년 현재 2조7000억 원이 조성됐으나, 이 기금 중 R&D투자는 5482억원 전체 자금 중 22.3%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공공건축물 리모델링 2245억 원, 도시숲 조성 2688억 원 등 일상적 잡다한 생색내기 소규모 감축사업에 소진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정 회장은 “기후대응기금을 소규모 사업위주 지원에서 현상파괴적 기술혁신 지원 체제로 전환함은 물론 국가R&D지원도 수소환원제철, 수소스택개발, CCS, SMR 등 현상파괴적 기술개발에 집중 지원하는 한편, 기업의 탄소중립R&D에 대해서는 해당액만큼 배출권 추가할당과 세액공제를 제공해야 궁극적으로 탄소중립이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15일 (재)기후변화센터 정책위원회와 미래에너지정책연구원이 서울 레스케이프 호텔에서 공동 개최한 제32차 전력포럼에서도 이 같은 논의가 나왔다. 

이날 '배출권거래제 활성화를 위한 기후대응기금 발전 방안' 발제를 맡은 오형나 경희대학교 국제학부 교수는 “배출권 판매 수입이나 일반회계를 활용해 저감 기술과 기업을 지원해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산업과 전환 부문의 온실가스 저감 기술을 개발하고 지원해야 한다”며 “이런 지원을 바탕으로 감축 활동 기반의 잉여 배출권이 만들어지고, 이를 통해 탄소가격과 배출권거래제 수용성 제고되면 배출권 거래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배출권 판매 수입 비중이 확대되거나 확대될 것을 전제해 배출권거래제 적용 부문의 저감 사업에 집중한 지원대상 선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재윤 산업연구원 실장은 “온실가스 다배출 산업의 전환이 매우 강조되고는 있지만 유럽의 혁신 기금과 같이 다배출 산업을 대상으로 하는 대형 프로젝트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정부의 저탄소 정책이 여러 분야에 걸쳐 소형 프로젝트에만 집중되어 있는 것 같다”며 “우리 기업이 글로벌 속도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배출 업종의 탄소중립을 위한 기술과 인프라에 대한 지원이 이뤄져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기후대응기금 사업 대부분은 국가재정법 및 지침 등에 따라 사업 수행부처에서 성과관리를 실시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예산소관과 추진부처가 상이할 경우, 실제 사업추진부처가 해당 세부사업을 성과관리 대상으로 포함하여 성과계획서를 작성한다”며 “향후 기금을 운용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경우 현행 집행부처 중심의 성과관리체계를 개선·보완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어 “온실가스 감축효과성을 바탕으로 하는 사업선정기준 보완, 성과관리 강화 방안 등을 마련하여 필요 사업들을 적극 발굴·선정하고 사업 효과성을 제고함으로써 실질적인 기후대응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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