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헤리티지 피해자 연대, 전국 사모펀드 사기피해공동대책위원회, 금융정의연대, 참여연대 등이 지난 8일 서울 중구 신한금융지주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신한투자증권에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의 전액반환 권고를 수용할 것을 요구했다. 사진=전국 사모펀드 사기피해공동대책위원회
독일 헤리티지 피해자 연대, 전국 사모펀드 사기피해공동대책위원회, 금융정의연대, 참여연대 등이 지난 8일 서울 중구 신한금융지주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신한투자증권에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의 전액반환 권고를 수용할 것을 요구했다. 사진=전국 사모펀드 사기피해공동대책위원회

[이코리아] 환매 중단된 독일 헤리티지 펀드의 판매사들이 금융당국의 배상권고에 대한 수용 여부를 결정할 시한을 연장해달라고 요청했다. 판매사들의 고심이 깊어지는 만큼, 피해자들의 반발도 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독일 헤리티지 펀드의 최다 판매사인 신한투자증권을 비롯해 NH투자증권·하나은행·우리은행 등은 최근 금융감독원에 분쟁조정위원회의 권고안에 대한 답변 시한을 연기해달라고 신청했다. 

앞서 분조위는 지난달 22일 신한투자증권, NH투자증권, 현대차증권, SK증권, 하나은행, 우리은행 등 6개 금융사가 판매한 독일 헤리티지 펀드 관련 분쟁조정 신청 6건에 대해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를 적용하고, 판매사에게 원금 전액을 반환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분조위는 헤리티지 펀드의 해외운용사가 상품제안서를 허위·과장 작성하고, 판매사도 제안서에 따라 독일 시행사의 사업이력, 신용도 및 재무상태가 우수해 계획한 투자구조대로 사업이 가능하다고 설명함으로써 투자자의 착오를 유발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판매사들은 분조위 권고에 대한 답변을 미루고 있다. 신한투자증권을 포함해 4개 판매사가 금감원에 답변 시한 연장을 요청했으며, SK증권과 현대차증권만 분조위 권고를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전액반환을 수용할 경우 판매사들이 부담해야 할 손실이 적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 헤리티지 펀드는 약 4835억원이 판매됐는데, 최다 판매사인 신한투자증권이 이 가운에 약 80%에 해당하는 3907억을 판매했다. 신한투자증권은 이미 헤리티지 펀드와 관련해 2200억원의 충당부채를 쌓아뒀지만, 전액반환을 수용할 경우 1000억원 이상의 추가 자금을 마련해야 한다. 

신한투자증권은 올해 여의도 사옥을 6395억원에 매각한 만큼 여유 자금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실적 악화는 불가피하다. 실제 신한투자증권의 3분기 누적 당기순이익은 570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5% 증가했으나 사옥매각이익을 제외한 실질적인 순이익은 같은 기간 32.4% 줄어든 2485억원 정도다. 신한금융지주가 3년 만에 KB금융지주를 제치고 리딩뱅크 자리를 되찾은 상황에서 핵심 계열사인 신한투자증권의 실적 악화는 뼈아프게 느껴질 수 있다. 

과거 키코(KIKO) 사태처럼 금융사들이 분조위 결정을 불수용한 사례도 있다. 실제 분조위는 지난 2019년 12월 외환파생상품 키코를 판매한 신한·우리·하나·대구·씨티·산업은행에 대해 불완전판매에 따른 배상책임이 적용된다며 피해기업 4곳에 대해 손실액의 15~41%를 배상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하지만 우리은행을 제외한 모든 은행이 분조위 권고를 거부했고, 키코 판매 은행 10곳의 협의체를 중심으로 한 자율조정이 추진됐다. 

반면 라임 무역금융펀드처럼 주요 판매사들이 고심 끝에 분조위의 권고를 받아들이고 전액반환에 나선 사례도 있다. 옵티머스 펀드의 경우 NH투자증권이 분조위 권고를 거부했지만, 이는 수탁사(하나은행)와 사무관리사(한국예탁결제원)에 대해 구상권을 청구하기 위한 조치였다. 실제 NH투자증권은 자체적으로 피해원금 전액을 배상했다. 

키코의 경우는 이미 2013년 대법원에서 사기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법적 판단이 마무리된 문제였던 만큼, 판매 은행이 금융당국의 결정을 거부할 근거가 명확했다. 게다가 키코 배상을 의욕적으로 밀어붙였던 윤석헌 전 금감원장이 2021년 5월 임기를 마치고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키코 배상도 동력을 잃게 됐다. 

반면 라임 무역금융펀드의 경우 금감원이 법률자문을 통해 ‘계약취소’ 적용 가능성을 충분히 검토한 만큼, 판매사들이 확신을 가지고 분조위 권고를 거부하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판매사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제재 절차도 앞두고 있어, 징계 수위를 낮추기 위해 적극적으로 배상에 나설 필요도 있었다. 당시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와 관련해 판매사들을 향한 비판 여론이 들끓고 있었던 것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신한투자증권의 경우 이미 지난해 12월 헤리티지 펀드와 관련해 자본시장법상 위반사항에 대한 금융당국의 제재(업무일부정지 및 과태료)가 확정된 만큼, 제재 경감을 위해 분조위 권고를 수용할 필요성은 크지 않다. 사모펀드 사태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과거보다는 가라앉은 상태다. 

피해자들은 헤리티지 펀드 판매사를 향해 분조위 권고를 수용하라며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앞서 독일 헤리티지 피해자 연대, 전국 사모펀드 사기피해공동대책위원회, 금융정의연대, 참여연대 등은 지난 8일 서울 중구 신한금융지주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미 지난 2020년 라임 무역금융펀드에 대한 금감원의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 결정 이후, 판매사 신한투자증권이 시간끌기를 하며 책임회피를 한 전례가 있고 이에 대한 강한 지탄을 받은 바 있다”며 “시간을 끌수록 신한금융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만 낮아질 뿐이다. 신한금융이 적극 나서서 신한투자증권이 피해자들에게 신속하게 원금 전액을 배상하도록 조치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와 관련해 주요 판매사가 전액반환 자체를 거부한 사례는 없는 만큼, 첫 불수용 사례로 낙인찍힐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또한, 지난 8월 취임한 이복현 금감원장의 임기가 2년 이상 남아있어 금융당국과 대립각을 세우는 것도 부담스러울 수 있다. 신한투자증권을 비롯한 헤리티지 펀드 주요 판매사들이 분조위 권고 수용 여부와 관련해 어떤 결론을 내릴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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