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현지시간) EU는 기후 조치의 일환으로 탄소 국경 조정 메커니즘(CBAM)에 대해 잠정 합의했다. 출처=유럽연합 집행위원회 보도자료 갈무리 
13일(현지시간) EU는 기후 조치의 일환으로 탄소 국경 조정 메커니즘(CBAM)에 대해 잠정 합의했다. 출처=유럽연합 집행위원회 보도자료 갈무리 

[이코리아] 유럽연합(EU)이 탄소를 과다하게 배출하는 수입품에 추가 관세를 도입하기로 잠정 합의했다. EU의 이번 '탄소 국경세' 도입 결정으로 철강업계를 비롯한 우리 기업들에게 무역장벽으로 작용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13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EU 회원국들과 유럽의회는 철, 철강제품, 시멘트, 화학비료, 알루미늄, 전기, 수소를 수입할 때 탄소 배출 비용을 부과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도입에 합의했다. 이는 탈탄소에 따른 유럽 산업 지원을 목표로 하는 세계 최초의 계획이다.

세계 첫 '탄소 국경세'로 불리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는 EU로 수입되는 제품의 탄소 함유량에 EU ETS(탄소배출권거래제)와 연동된 탄소 가격을 부과해 징수하는 조치다. 탄소 배출량이 많은 국가에 수출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 골자로, 수출 기업에는 일종의 추가 관세 성격이 있어 무역 장벽 우려가 제기돼왔다.

이날 합의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지난 7월14일 탄소배출 감축 계획을 발표한 지 5달 만에 이뤄졌다. 대표적인 탄소 집약 산업으로 꼽히는 철강, 시멘트, 비료, 알루미늄, 전력, 수소 등이 우선 적용 대상이다. 이 중 수소의 경우 당초 EU 원안에는 없었지만 유럽의회 의원들이 협상 과정에서 강하게 추진하면서 수입 수소에도 적용하기로 했다. 유기화학물과 플라스틱 등을 포함하는 방안도 검토 예정이라 대상은 더 늘어날 수 있다. 

현재 EU는 역내 기업의 수출과 관련한 탄소누출 방지조치로 배출권 무료할당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나, 배출권 무료할당량은 단계적으로 폐지되어 CBAM으로 대체될 예정이다. CBAM은 해외 기업에도 EU 내 기업과 동일한 탄소 비용을 적용하기 위해 고안됐다. 

유럽의회는 이날 공식 성명을 통해 "보호무역주의라는 비판을 받지 않도록 세계무역기구(WTO)의 규정에 어긋나지 않게 제도를 설계했다"고 밝혔다.

유럽의회 법률협상대표인 모하메드 차힘은 "CBAM은 기후 변화와 싸우기 위한 유럽 연합의 노력에 결정타가 될 것"이라며 "이는 우리가 무역 파트너들에게 제조업을 탈탄소화하도록 장려해야 하는 유일한 메커니즘 중 하나"라고 말했다. 

시범 운용 기간은 내년 10월부터 개시될 예정으로, 이르면 오는 2026년부터 시행될 전망이다. 이날 회원국들이 타결한 잠정 합의안에 따라 시험 운영 기간에는 수입업체들이 탄소배출 의무사항에 대한 보고만 하면 된다.

유럽연합은 이날 합의 결과를 바탕으로 오는 16∼17일께 탄소 국경세 부과 기준이 될 배출권거래제(ETS) 개편을 위한 추가 논의를 할 예정이며, 그 뒤 구체적인 시행시기를 정하게 된다.

EU의 이번 '탄소 국경세' 도입 결정은 우리 기업들에게 무역장벽으로 작용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특히 철강 업계가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대유럽 철강 수출 규모는 지난해에만 43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5조6000억 원에 달했다. 이밖에 알루미늄 수출 금액은 5억 달러, 시멘트는 140만 달러로 다른 품목에도 영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정부도 이달 초 안덕근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이 EU를 방문해 CBAM의 차별적 조항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는 등 이 제도가 국제 통상규범에 부합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혀왔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최근 유럽 언론과 인터뷰에서 "CBAM이 기후변화 대응의 중요한 정책 수단이나, 글로벌 통상질서에 부담이 되어서는 안 되며, 자칫 유럽판 IRA(인플레이션 감축법)처럼 운영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면서 CBAM 도입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또 미국의 IRA법의 전기차 보조금 등 미국의 교역상대국에 대한 차별적 조치에 대해 한국과 EU가 공동으로 대응할 여지가 많다는 점을 지적하며 공동 대응 가능성을 시사했다. 

지난 13일 열린 범정부 회의에서 방문규 국무조정실장은 "산업부 통상교섭본부가 중심이 되어 3~4년의 전환기간 동안 EU 측과 협의를 지속해달라"고 당부했다. 

현재로선 제도 시행 전, 일정 부분 적용 면제 등, 예외 조처를 EU 측에 요구하는 방안이 검토될 것으로 관측된다. 

오태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유럽팀 선임연구원은 15일 <이코리아>와의 통화에서 "철강업의 경우 직접적인 영향이 예상되지만 즉각적인 비용부담은 3년 뒤에나 가능할 것"이라면서 "국내의 경우 ETS에 이미 기업이 탄소비용으로 납부했다면 EU가 어느 정도 인정해주냐에 따라 차익만큼 낼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국가적인 탄소저감 노력뿐만 아니라 역외국 협상 결과에 따라서 아직은 달라질 수 있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와 기업이 합동으로 준비를 철저히 한다면 부정적인 파급효과를 줄일 여지가 있을 것"이라면서 "기업차원에선 생산공정에서 탄소배출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저탄소기술을 많이 도입하고 기술개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다보면 자연스레 우리기업이 만든 제품이 또 다른 수출경쟁력을 담보할 수 있는 요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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