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혜인(기본소득당), 권인숙(더불어민주당), 윤미향(무소속) 의원 및 학계, 시민단체 등이 13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촉법소년 연령 하향 등의 내용을 담은 법무부의 소년법 등 개정 입법예고안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사진=용혜원 의원실
용혜인(기본소득당), 권인숙(더불어민주당), 윤미향(무소속) 의원 및 학계, 시민단체 등이 13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촉법소년 연령 하향 등의 내용을 담은 법무부의 소년법 등 개정 입법예고안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사진=용혜원 의원실

[이코리아] 법무부가 촉법소년 연령 하향을 추진 중인 가운데, 야권과 학계,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이를 철회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용혜인(기본소득당), 권인숙(더불어민주당), 윤미향(무소속) 의원과 한국아동복지학회, 한국청소년복지학회 등 학계,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민변 아동청소년인권위원회 등 시민단체 17개는 지난 13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무부가 추진 중인 소년법·형법 개정 입법예고안 철회를 요구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달 2일 촉법소년 연령 상한을 현행 14세에서 13세로 낮추고, 소년보호사건 절차를 개선하며 소년범죄 피해자 보호를 강화하는 내용의 소년법·형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바 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6월 “소년범죄 흉포화에 대응하기 위해 연령 하향 조정뿐만 아니라 적절한 소년범 선도 및 교정교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한지 5개월 만이었다.

이날 기자회견을 연 국회의원 및 시만·학술단체 등은 법무부의 입법예고안에 대해 “아무런 실효성도, 정당성도 없다”며 “법무부가 발표한 소년범죄 종합대책과 개정안은 아동·청소년의 권리를 침해하며, 소년에 대한 차별적인 낙인을 강화한다”고 비판했다. 

용혜인 의원은 “촉법소년 연령 하향은 한동훈 표 포퓰리즘”이라며 “‘국민의 법 감정’ 운운하며 근거 없는 혐오에 동조하는 것이 법무부 장관이 할 일이냐”고 질타했다. 용 의원은 이어 “당사자의 사회복귀와 피해자의 회복에 방점을 둔 소년법 개정을 추진하고, 청소년이 범죄에 연루되지 않을 수 있는 사회경제적 안전망을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文정부, 소년법 개정·폐지 80% 여론에도 촉법소년 연령 하향 결론 못내

이날 기자회견과는 달리 촉법소년 연령 하향에 대한 국민 여론은 긍정적이다. 실제 지난 6월 여론조사기관 ‘미디어리얼리서치코리아’가 성인 350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현행 촉법소년 연령 기준이 ‘적절하지 않다’는 응답자 비중이 전체의 69.1%를 차지했다. 촉법소년 연령을 하향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는 응답자도 전체의 80.2%를 차지해 반대(5.4%)와 압도적인 격차를 보였다.

현행 형법은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청소년을 형사책임능력이 없는 ‘형사미성년자’로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해당 연령대의 청소년은 범죄를 저질러도 형사처벌 대신 감호위탁, 사회봉사, 소년원 송치 등의 보호처분을 받게 된다. 이를 악용한 일부 청소년들이 저지른 범죄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면서 소년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된 것. 

하지만 여론의 지지가 높다고 해도 법무부의 소년법·형법 개정이 계획대로 진행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촉법소년 연령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은 이전부터 제기됐지만, 찬반론이 강하게 대립하는 사안인 만큼 사회적 합의에 이르기 어렵기 때문. 이미 전 정부에서도 촉법소년 연령 하향을 추진했지만 결국 임기 내에 결론을 내지 못했다.

실제 문재인 정부가 처음 답변한 ‘1호’ 국민청원은 소년법 개정 청원이었다. 당시 청원인은 2017년     9월 부산 사하구에서 발생한 중학생 집단폭행 사건을 예로 들며, 소년법을 폐지해달라고 요청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2017년 8월부터 2020년 4월까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소년법 관련 청원은 무려 1935건으로 여기에 동의한 국민의 수는 중복 포함 약 390만명에 달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2019년 9월 발표한 소년법 관련 여론조사 결과도 올해 6월과 비슷하다. 리얼미터가 501명에게 소년법 폐지 의견을 물은 결과, 62.6%가 처벌강화를 위해 개정이 필요하다고 답한 것. 성인과 소년범을 동일 처벌하기 위해 소년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21%나 됐으며, 현행 유지를 원한 응답자는 12.9%에 불과했다.

이러한 여론에 힘입어 문재인 정부도 2018년 법무부 장관 소속의 소년비행예방협의회를 설치하고 촉법소년 연령을 14세에서 13세로 하향하는 내용의 ‘제1차 소년비행예방 기본계획(2019~2023)’을 수립했다. 이후 협의회를 중심으로 법조계, 학계, 시민단체 등 각계 각층의 의견을 수렴했으나,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하며 법 개정 논의도 흐지부지됐다. 

 

최근 10년간 촉법소년 법원접수 건수 현황. 자료=국회입법조사처
최근 10년간 촉법소년 법원접수 건수 현황. 자료=국회입법조사처

◇ 소년범죄 흉포화 근거 부실, 객관적 통계 구축이 우선

촉법소년 연령 하향의 근거가 부실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촉법소년 연령 하향을 지지하는 측에서는 최근 소년범죄가 점차 늘어나고 흉포화되고 있다며 처벌 또한 현실을 반영해 더욱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촉법소년 범죄 접수 건수가 지난 2017년 이후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10년간 촉법소년 소년부 송치 현황을 보면 2016년까지 접수 건수가 줄어들다가 2017년 이후 증가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으며, 아직 2012년 수준을 넘지는 못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박소현 입법조사관은 “2020년 이후부터는 세계적으로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특수상황이 발생하면서 등교제한과 같은 예상치 못한 변수가 어떻게 작용하였는지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라며 “이러한 점에서 ‘증가현상에 의한 엄벌’ 이전에 장기적 관점에서의 증가여부, 근본적인 원인과 대응방안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부 사건만으로 소년범죄가 흉포화되고 있다고 진단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보고서는 “법무부가 소년범죄 흉포화의 근거로 들고 있는 강력범죄 비율의 지속적 증가추세 자료는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촉법소년에 의한 행위들이 아니라, 14세 이상 19세 미만자, 즉 범죄소년의 강력범죄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며 “이미 형사처벌이 가능한 범죄소년들의 범죄가 흉포화되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하여 형사미성년자인 촉법소년의 연령을 하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논리적 연관성을 파악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해외 주요국보다 한국의 촉법소년 제재 강도가 약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박 조사관은 “만 14세 미만의 소년에 대하여 어떠한 제재도 부과하지 않는 독일이나 12세 이상부터 구금처분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일본에 비해, 우리나라는 이미 10세부터 소년원 송치라는 구금처분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보호처분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현행 제재수준이 가볍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오히려 해외에서는 소년범죄에 대한 ‘엄벌주의’가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며, 관련 정책을 수정하는 추세다. 실제 영국에서는 지난 2015년 구금시설을 나온 아이들 중 67%가 1년 내 재범한다는 통계가 발표되면서, 재범 방지를 위해 소년범의 처우를 개선하는 방향의 정책이 추진되기 시작했다. 또한, 영국은 소년범의 사회적 배경 및 학습능력, 약물 사용 등에 대한 각종 통계자료를 분석해 소년범죄 예방 및 조기개입 등의 조치를 시행하는데 활용하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아직 소년범죄에 대한 자세한 통계자료조차 부족한 실정이다. 경찰청에서 촉법소년의 법원 송치 현황을 공개하고 있지만, 검찰을 거치지 않고 법원으로 바로 송치되거나, 시설에서 수사기관을 거치지 않고 법원으로 송치하는 등의 경우는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년범죄의 유형도 세분화되지 않고 7개 유형으로 단순 분류되고 있는 만큼, 정확한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는 먼저 객관적인 통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편, 법무부의 소년법·형법 개정 입법예고안에 대한 국민 의견 수렴 기간은 지난 13일로 종료됐다. 아직 사회적 합의에 이르지 못한 촉법소년 연령 하향 논쟁과 관련해 법무부가 어떤 결론을 내릴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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