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천왕봉의 가문비나무. 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지리산 천왕봉의 가문비나무. 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이코리아] 영하의 날씨가 시작되며 본격적인 겨울이 찾아왔다. 추운 날씨에 거리에는 두꺼운 외투와 목도리로 무장한 사람들이 많아지고, 바깥의 추운 공간보다는 따뜻한 건물 안에서의 생활이 익숙해지는 듯하다. 따뜻한 날씨가 그리워지는 시기이지만, 우리가 생활하는 곳보다 더 혹독한 추위를 맨몸으로 견디는 나무들이 있다. 바로 산의 정상부에서 살아가는 침엽수종이다. 이들은 우리가 사는 생활권보다 더 강한 겨울의 추위와 차디찬 바람을 견디며 겨울을 보낸다. 그중에서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사는 나무로 ‘가문비나무’가 있다.

가문비나무 구과. 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가문비나무 구과. 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가문비나무는 해발 1,500m 이상에서 자라는 고산 침엽수종 중에서도 제일 높은 곳에서 자라는 나무이다. 가문비나무라는 이름은 나무껍질이 검다고 하여 ‘검은피나무’라고 하던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가문비나무는 우리나라에서는 지리산, 덕유산, 계방산 등 매우 일부 지역에서만 살아남은 우리나무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산 침엽수종인 구상나무, 분비나무보다도 훨씬 높은 곳에 자리 잡은 나무이다.

가문비나무 자생지 중 가장 넓은 지리산을 살펴보면, 1,300m 부근까지는 구상나무가 주로 보이다가 1,500m를 넘어서면 구상나무는 점차 사라지고 잎이 작고 뾰족하며 청록색 빛깔이 도는 나무가 나타나는데, 이 나무가 바로 가문비나무이다. 분포하는 곳도 적고 산의 높은 곳에서만 제한적으로 살아남은 가문비나무는 멸종위협이 높은 취약종으로 평가되어 보전이 필요한 상황이다. 특히 자생지 내 어린나무가 거의 나타나지 않고 솔방울도 몇 년에 걸쳐 맺히는 등 가문비나무 숲의 유지가 어려운 것으로 예측된다. 이에 산림청에서는 ‘제2차 멸종위기 고산 침엽수종 보전·복원 대책’을 수립하여 적극적인 보전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독일가문비의 검은색 나무껍질. 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출처=들꽃세상
독일가문비의 검은색 나무껍질. 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출처=들꽃세상

 

산의 높은 곳에서만 자라는 가문비나무는 우리가 쉽게 만나기 어려운 나무이다. 한편, 우리 주변의 공원이나 가로수로 쉽게 만날 수 있는 독일가문비가 있다. 나무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독일가문비는 유럽이 원산지로 우리나라에 도입된 나무이다. 가문비나무와는 다르게 고도가 낮은 곳에서도 잘 자라고 생장이 매우 좋아서 실제 독일에서는 주요 조림수종으로 널리 심고 있다. 산에 심는 나무로도 가치가 있지만, 나무줄기가 아래로 처질 듯 휘어지는 멋진 나무 모양으로 관상용으로도 매력적인 나무이다. 잎의 모양은 우리나라 가문비나무와 유사하지만 큰 솔방울(10~15cm)과 잎의 단면(찌그러진 사각형)이 우리나라 가문비나무(솔방울 4~7cm, 렌즈형)와는 뚜렷하게 구분되는 특징이 있다.

뽀족한 독일가문비 잎.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출처=들꽃세상
뽀족한 독일가문비 잎.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출처=들꽃세상
독일가문비 구과. 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출처=들꽃세상
독일가문비 구과. 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출처=들꽃세상

 

독일가문비와 유사하게 큰 솔방울이 특징인 종비나무가 있다. 종비나무는 함남 방언이고 전나무와 비자나무를 뜻하는 종비에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 남한에는 자생지가 없고 북한의 함경북도 지역 이북에 자라는 나무지만 서울의 홍릉숲에 가면 입구에 우뚝 선 커다란 종비나무를 만나 볼 수 있다. 종비나무는 각진 잎의 단면과 큰 솔방울이 특징으로 형태적으로는 가문비나무보다는 독일가문비와 유사하다.

독일가문비 수꽃. 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출처=들꽃세상
독일가문비 수꽃. 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출처=들꽃세상
독일가문비 암꽃. 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독일가문비 암꽃. 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출처=들꽃세상

 

가문비나무, 독일가문비, 종비나무는 높은 산에서, 혹은 우리 주변의 경관을 풍성하게 해주는 소중한 우리나무이다. 특히, 급변하는 기후위기 속에서도 당당히 우리 땅을 지켜 온 가문비나무를 우리 후손들에게 온전히 물려주기 위해서 국립산림과학원은 지속가능한 숲을 유지할 수 있는 기술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 주변과 높은 산을 지키고 있는 가문비나무 3형제를 만난다면 고마운 마음을 담아 정성어린 응원을 보내주기를 바란다.

[필자소개]

임효인 박사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명정보연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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