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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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리아] 금융당국이 중대 금융사고와 관련해 금융사 최고경영자(CEO)의 책임을 강화하기로 했다.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 관련 CEO 제재가 수년째 지연되고 있는 만큼, 불명확한 현행 처벌 근거를 정비하겠다는 취지로 보인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지난 29일 ‘금융권 내부통제 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 중간논의 결과를 발표했다. 내부통제는 금융회사가 장래 발생가능한 리스크를 줄이는 등 목표달성을 위해 임직원의 업무처리 및 행위와 관련해 스스로 마련・운영하고 준수해야 하는 각종 기준과 절차를 의미한다.

국내에서는 지난 2016년부터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이하 지배구조법)에 따라 모든 금융사에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할 의무가 부과됐다. 하지만 지난 2019년 해외금리연계형 파생결합펀드(DLF) 사태를 시작으로 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 등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내부통제 제도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특히 내부통제와 관련해 금융사 CEO 및 임원의 책임과 의무가 명확하지 않아, 대형 금융사고를 일으킨 금융사 CEO에 대한 제재가 제대로 부과되지 않고 있다. 현행 지배구조법은 내부통제 기준을 ‘마련’할 의무를 규정하고 있을 뿐, ‘준수’할 의무는 규정하지 않고 있다.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했다는 사실이 인정된다면, 이후 해당 기준을 준수하지 않더라도 처벌할 법적 근거가 불명확하다는 것. 

실제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경우 DLF 사태와 관련해 문책경고의 중징계를 받았으나, 금융당국을 상대로 제기한 징계 취소 소송 1·2심에서 모두 승소했다. 내부통제 기준을 마련한 이상, 해당 기준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발생한 문제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는 판단에서다. 

손 회장의 승소 이후 금융당국은 사모펀드 관련 CEO 제재 절차는 모두 멈춰있는 상태다. 이미 금감원은 박정림 KB증권 사장, 양홍석 대신증권 부회장,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 등에게 대해 문책경고의 중징계를 결정했지만, 금융위에서는 제재 확정을 계속 미루고 있다. 손 회장의 징계 취소 소송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이 있기 전까지는, 제재 여부를 결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금융위는 지난 3월 “지배구조법 상 내부통제기준 마련의무 위반사항에 대해서는, 우선 제재조치 간 일관성・정합성, 유사 사건에 대한 법원의 입장, 이해관계자들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충분한 확인 및 검토를 거친 후, 심의를 진행하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내부통제의 최고책임자인 CEO에 대한 제재가 불가능하다면, 내부통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것이라 기대하기 어렵다. 금융위가 29일 발표한 내용 중 가장 관심을 끈 것 또한 내부통제 관련 금융사 CEO 책임을 강화할 방안이다. 금융위는 우선 내부통제 총괄책임자인 대표이사에게 포괄적인 내부통제 관리의무를 부여해, 금융사고 발생 방지를 위해 적정한 조치를 취할 의무를 부과하기로 했다. 또한, 이사회의 내부통제 감시・감독의무를 명문화된다.

다만, 현실적으로 대표이사가 모든 금융사고를 방지하는 것은 어려운 만큼, 책임범위는 사회적 파장이나 소비자 및 금융회사 건전성에 미치는 영향이 심각한 ‘중대 금융사고’에 한정할 계획이다. 만약 금융사 대표가 금융사고를 예방・적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는 규정・시스템을 구비하고, 해당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되도록 관리했다면 의무를 충분히 이행했다고 간주해 책임을 경감·면책하기로 했다.

금융당국이 내부통제 관련 CEO 책임을 강화하기로 한 만큼, 아직도 확정되지 못한 부실 사모펀드 관련 CEO 제재에 미칠 영향에도 관심이 쏠린다. 이번 내부통제제도 개선안이 과거 발생한 금융사고에도 소급 적용될 수 있을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이미 금융사고가 적발돼 제재 절차가 진행 중인 사안까지 바뀐 규정을 적용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CEO 제재와 관련해 금융당국이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은 변수다. 실제 금융위원회는 최근 라임 사태와 관련해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에 대해 문책경고의 중징계를 확정했다. 중징계 사유는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 위반이 아닌 부당권유 등 불완전판매다.

이미 손 회장이 DLF 소송 2심까지 승소한 상황에서 또다시 중징계를 의결한 만큼, 금융당국이 미뤄뒀던 사모펀드 관련 CEO 제재에 다시 속도를 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 9일 “지금 금융시장이 매우 어렵지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더 미룰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며 “국회에서 관련 사안이 너무 지체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우리가 해야할 것은 하고, 정리할 건 연말까지 빠르게 하려는 차원”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한편, 금융위는 “향후 TF에서는 법리적 검토 및 업계 의견수렴을 거쳐 세부 제도내용을 확정하고, 법령 개정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내부통제 관련 CEO 책임 강화에 나선 금융당국이 미뤄둔 부실펀드 제재에 속도를 낼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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