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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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리아]  독일 헤리티지 펀드 환매중단 사태 관련 분쟁조정 절차에 시간이 더 걸릴 전망이다. 해당 펀드의 투자구조가 복잡한 데다 피해자들도 전액 반환을 요구하고 있어, 금융감독원이 분쟁조정을 연내 마무리하겠다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앞서 금융감독원은 지난 14일 독일 헤리티지 펀드 관련 분쟁조정위원회를 열고 7시간에 걸쳐 논의했으나 결론을 내지 못했다. 

독일 헤리티지 펀드는 수도원·병원·우체국 등 독일 내 ‘기념물 보존 등재 부동산’을 주거용 건물 등으로 리모델링하는 사업에 투자한 뒤 이를 분양·매각해 자금을 회수하는 방식의 펀드다. 신한투자증권, NH투자증권, 하나은행, 우리은행, 현대차증권, SK증권, 하나증권 등 7개사가 해당 펀드를 총 4885억원 판매했으며, 미회수된 금액만 4764억원에 달한다. 

이번에 분조위가 열린 것은 독일 헤리티지 펀드가 처음 환매중단된 지난 2019년 6월 이후 3년 5개월 만이다. 당초 금감원은 독일 헤리티지 펀드 관련 제재심을 지난해 2분기 중 마무리하고 이후 분쟁조정 절차를 추진할 방침이었으나, 일정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지난 14일에야 겨우 첫 분조위가 열리게 됐다. 판매는 국내 금융사가 했지만, 운용사는 싱가폴, 최종 사업자는 독일에 소재하는 등 투자구조가 복잡해 분쟁조정에 필요한 사실관계 확인에 걸리는 시간이 길었기 때문이다. 

일정이 많이 미뤄진 만큼 피해자뿐만 아니라 관련 금융사들도 첫 분조위에서 빠른 결론이 내려지기를 기대했으나, 최종 결론은 다음 분조위로 미뤄지게 됐다. 금감원은 다수의 신청인 및 피신청인의 의견진술과 질의응답에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며 향후 분조위를 다시 개최해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사모펀드 사태와 마찬가지로 독일 헤리티지 펀드 분쟁조정에서 피해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배상비율이다. 피해자들은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를 적용해 피해금액을 전액 반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는 법률 행위의 중요 부분에 착오에 있을 경우 계약을 무효로 할 수 있는 권리다. 앞서 라임 무역금융펀드의 경우 판매예약 체결 시점에 이미 투자원금의 최대 98%가 부실화됐으며, 운용사가 이를 알면서도 투자제안서에 수익률 및 투자위험 등 핵심정보를 허위·부실 기재하고 판매사도 이를 그대로 투자자에게 설명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가 적용된 바 있다. 투자자가 미리 알았을 경우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을 정도로 중요한 정보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융정의연대, 독일 헤리티지 피해자연대, 전국 사모펀드 사기피해 공동대책위원회 등은 14일 서울 여의도 금감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판매사가 작성하고 교부한 계약서에는 해외부동산 선순위 담보 투자로 명시되었고, 사모펀드 라는 사실은 판매사에서 숨겼기 때문에 인지할 수 없었다. 또한 투자자 성향 조작 사실도 피해 발생 후에야 알 수 있었다”며 “회계장부도 없는 독일 현지 시행사의 신용등급조작 보고서가 국내 신용평가 기관에서 발급한 것을 판매사가 인용했고, 현지 시행사가 9년전 매입하고 방치한 부동산을 2018년도에 매입했다고 거짓보고한 사실도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헤리티지 펀드에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가 적용될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펀드 판매의 사기성을 법리적으로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 라임, 옵티머스, 디스커버리, 이탈리아 헬스케어, 독일 헤리티지 등 5대 사모펀드 중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를 적용해 투자금 전액 반환이 이뤄진 경우는 라임 무역금융펀드와 옵티머스 펀드 두 가지뿐이다. 라임펀드 중 국내투자 펀드와 디스커버리, 이탈리아 헬스케어 펀드 등은 모두 분조위에서 60~80% 수준의 배상비율이 결정됐고, 나머지 피해자에 대해서는 40~80%의 배상비율로 자율조정할 것이 권고됐다. 

이 때문에 금감원도 계약취소 가능성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독일 헤리티지 펀드) 피해 구제에 강한 의지가 있다”면서도 “계약취소 요건이 맞는지, 손해배상으로 많은 배상을 할 수 있을지, 손해배상 시 과실상계비율을 어떻게 구성할지 등 기술적 부분이 있다”며 원론적인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다만 분조위에서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가 아닌 불완전판매로 인한 일부 배상으로 결론이 나게될 경우, 피해자들의 반발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피해자 단체는 기자회견에서 “만약 독일헤리티지펀드 분조위가 계약취소가 아닌 배상비율 방식으로 상투적인 결정을 한다면 이 기구는 감독원의 책임회피수단 내지는 책임분산을 위한 위장수단에 불과할 뿐인 것을 엄중히 경고한다”며 “금감원 분조위는 더 이상 좌고우면 하지말고 계약취소 결정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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