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 여성 브라이언 응우옌이 지난 6일(현지시간) 미국 뉴햄프셔주 데리에서 열린'미스 그레이터 데리 2023'에서 우승한 뒤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사진='미스 그레이터 데리 장학 프로그램' 페이스북 갈무리
트랜스젠더 여성 브라이언 응우옌이 지난 6일(현지시간) 미국 뉴햄프셔주 데리에서 열린'미스 그레이터 데리 2023'에서 우승한 뒤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사진='미스 그레이터 데리 장학 프로그램' 페이스북 갈무리

[이코리아] 미국의 한 미인대회에서 트랜스젠더(성전환) 여성이 우승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국내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다. 성 소수자를 위한 기회의 문이 넓어지고 있다며 축하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생물학적 남성’이 ‘생물학적 여성’의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코리아>는 해당 소식과 관련된 구체적인 사실관계와, 트랜스젠더 여성의 미인대회 우승이 우리 사회에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에 대해 알아봤다.

① 트랜스젠더 여성이 ‘미스 아메리카’ 대회에서 우승했다? (△)

정확하게 말하면 트랜스젠더 여성이 우승한 미인대회는 미국 각주별 대표가 모여 경쟁하는 미스 아메리카 본 대회가 아닌 지역 예선이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19세의 트랜스젠더 여성 브라이언 응우옌은 미스아메리카협회 미국 뉴햄프셔주의 소도시 데리(Derry)에서 진행된 미인대회 ‘미스 그레이터 데리 2023’으로 선정됐다. 데리는 2020년 기준 인구 3만4317명의 도시로, ‘미스 그레이터 데리’로 선정된 응우옌은 뉴햄프셔주 대표를 뽑는 주 예선에 나갈 자격을 얻게 된다.

‘미스 그레이터 데리’는 지난 1986년부터 시작된 지역 행사로, 젊고 역량 있는 지역 여성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프로그램이다. 실제 응우옌은 ‘미스 그레이터 데리 2023’에 선정되면서 7500달러의 장학금을 받게 됐다. 

일각에서는 응우옌의 성 정체성뿐만 아니라 외모를 지적하며 대회 결과가 잘못됐다고 비난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미인대회에서 우승하기에는 응우옌의 외모가 전형적인 미인상과 거리가 있다는 것. 다만 ‘미스 그레이터 데리’ 홈페이지에는 “학업과 재능, 인성, 지역 사회에 대한 공헌, 미스 뉴햄프셔 및 미스 아메리카 협회의 평가 기준 등을 고려한다”는 내용이 적혀있을 뿐, 외모를 평가한다는 내용은 없다. 

실제 미스 아메리카는 지난 2017년 협회 CEO와 작가진 등이 참가자의 외모를 비하하는 내용의 이메일을 주고받은 사실이 폭로되면서 거센 비판을 받은 뒤 대회의 성격이 크게 변했다. 사건과 관련된 이들이 모두 사퇴한 뒤 새로 취임한 그레첸 칼슨 신임 조직위원장은 2018년 수영복 심사 폐지를 시작으로 미스 아메리카를 미인대회가 아닌 모든 여성의 롤모델이 될 수 있는 역량 있는 여성을 선정하는 대회로 바꾸기 시작했다. 실제 칼슨 위원장은 “미스 아메리카는 더 이상 미인 대회가 아니다”라며 “미스 아메리카는 학업과 사회적 영향력, 재능, 임파워먼트 등에 초점을 맞춰 새로운 세대의 여성 지도자를 대표할 것”이라며 “미스 아메리카는 더는 미인대회가 아니다”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② ‘미스 아메리카’에서 트랜스젠더 여성이 우승한 것은 처음이다? (△)

“미스 아메리카 100년 역사상 첫 트랜스젠더 우승자”라는 표현은 ‘미스 그레이터 데리 2023’으로 선정된 응우옌 본인이 인스타그램에 수상 소감을 밝히며 사용한 것이다. 응우옌 이전에 미스 아메리카 대회에서 트랜스젠더 여성이 우승한 적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하기는 어렵다. 물론 미스 아메리카 협회 홈페이지나 미스 그레이터 데리 홈페이지에서 역대 우승자 명단을 찾아볼 수는 있다. 하지만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미인대회’로 출발한 만큼, 참가자의 성별이나 성정체성, 성적지향 등의 정보까지 나와 있지는 않다. 다만 미스 아메리카와 관련된 미국 현지 언론의 보도를 찾아본 결과, 응우옌 이전 트랜스젠더 여성이 지역예선이나 본 대회에서 우승했다는 사실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미스 아메리카가 아닌 모든 미인대회로 범위를 넓힌다면 응우옌 이전에도 트랜스젠더 여성이 출전하거나 수상한 사례가 있다. 우선, 미스 아메리카와 함께 미국의 양대 미인대회로 꼽히는 미스 USA의 경우 트랜스젠더 여성이 주 대표로 선정된 적이 있다. 실제 지난해 미국 네바다주에서는 트랜스젠더 여성 카탈루나 엔리케스가 미스 네바다로 선정됐다. 다만 엔리케스는 미스 아메리카 본 대회에서는 최종 후보 16명에 선정되지 못하고 조기 탈락했다. 당시 엔리케스는 “미스 아메리카 대회가 아직 (트랜스젠더 여성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면서도 “사회적 기준에 따라 제한받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성소수자 아이들과 커뮤니티를 대표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미국이 아닌 다른 국가에서도 트랜스젠더 여성이 미인대회에 출전하거나 우승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뉴질랜드는 지난 2012년 이후 트랜스젠더 여성의 미인대회 출전을 허용하고 있으며, 2020년에는 트랜스젠더 여성인 아리엘 케일이 ‘미스 국제 뉴질랜드’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스페인 또한 지난 2018년 트랜스젠더 여성인 안젤라 마리아 카마초가 미스 스페인으로 선정된 바 있다.

2012년에는 ‘미스 유니버스 캐나다’에 참가한 제나 텔레코바라는 트랜스젠더 여성이 밴쿠버대회 결선에 진출했다가 성전환 사실이 밝혀져 탈락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다만 해당 사건이 논란이 되자 조직위원회 측이 텔레코바의 대회 참여를 다시 허락했고, 텔레코바는 미스 유니버스 캐나다 결선 최종 후보 12인까지 올랐으나 수상은 하지 못했다. 

③ 트랜스젠더 여성을 ‘여성’의 범주에 포함할 수 있나? (△)

응우옌의 ‘미스 그레이터 데리 2023’ 선정 논란은 단순한 가십거리일 수도 있지만, 우리 사회에 ‘여성’의 범주는 어디까지인지, 트랜스젠더 여성과 시스젠더(생물학적 성과 성 정체성이 일치하는 경우) 여성의 경쟁은 공정한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안겨주는 사건이기도 하다.

실제 응우옌 이전에도 미인대회에 트랜스젠더 여성이 출전하거나 우승한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다. 여전히 트랜스젠더 여성이 시스젠더 여성의 영역에 진출하는 것은 사회적 반발을 사고 있다. 국내 여초 커뮤니티에서도 응우옌의 우승에 대해 “미인대회에 출전한 여성에게는 전형적인 아름다움을 강요하면서, 트랜스젠더에게서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보겠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결국 ‘생물학적 남성’이 ‘여성’의 밥그릇을 빼앗아간 꼴이 아닌가”, “대회 취지에 따라 장학금은 ‘여성’ 참가자에게 돌아가야 한다” 등 비판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미국 또한 마찬가지로 트랜스젠더 여성과 시스젠더 여성의 경쟁에 대해 아직 부정적인 의견이 더 많은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미국 연방 제9 항소법원에서 미스 USA 대회 주최측이 트랜스젠더 여성의 참가 신청을 거절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트랜스젠더 여성이 '차별받지 않을 권리'보다 주최측의 '표현의 자유'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한 판결인 셈이다. 

미인대회뿐만 아니라 스포츠 분야에서도 트랜스젠더 여성의 참여 문제에 대한 논쟁이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다. 트랜스젠더 여성이 여성부 경기에 출전해 좋은 성적을 내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트랜스젠더 여성과 시스젠더 여성의 경쟁은 공정하지 않다는 비판 여론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 워싱턴포스트와 메릴랜드대가 지난 5월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 성인 150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5%는 트랜스젠더 여성이 고교 스포츠에서 다른 여성과 경쟁하는 것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 및 프로스포츠에서의 경쟁에 반대하는 응답도 58%였다. 

국제수영연맹 또한 지난 6월 성적 성숙도 등급 2기 이후 혹은 12세 이전 남성으로의 사춘기를 전혀 거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한 경우에만 여성부 경기 출전을 허용하도록 하는 규정을 신설했다. 연맹은 대신 성전환자의 참여를 위해 이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오픈 부문의 신설을 논의하겠다는 방침이다. 

반면, 트랜스젠더 여성을 경쟁에서 배제하는 것은 일종의 ‘생물학적 결정론’이라며 이러한 담론이 결국 소수자 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타니 사토코 간사이대학 문학부 교수는 지난 2020년 일본 학술지 ‘젠더연구’에 기고한 논문에서 “트랜스젠더 배제 담론은 트랜스젠더 여성을 여성으로 지칭하기를 거부하고, 대신 ‘트랜스젠더화된 남성’이라고 지칭하며 여성의 안전을 위협하는 ‘사기꾼’, 잠재적 ‘성 범죄자’라고까지 부른다”며 “이런 종류의 정치가 주류(시스젠더) 여성의 접근권을 보호하기 위해 소수자(트랜스젠더) 여성 집단을 배제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이것은 보수적이고 차별적 정치”라고 말했다.

이타니 교수는 이어 “소수 엘리트 여자 선수들의 우승할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트랜스젠더 여성 전체에 스포츠를 할 권리를 부여하지 않으려는 페미니스트 운동은 가치가 있는 것인가”라고 반문하며 “트랜스젠더 소녀가 여자 대회에 참가할 권리가 시스젠더 소녀가 우승할 권리보다 우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참고자료

미스 아메리카 협회 홈페이지(www.missamerica.org)

미스 그레이터 데리 홈페이지(missderry.org)

이타니 사토코, 2020, "스포츠 분야 트랜스젠더 배제(Trans-Exclusion)에 대한 페미니즘 담론", 일본비평 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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