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1일 오전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한국은행-한국경제학회 국제컨퍼런스에 참석해 개회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1일 오전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한국은행-한국경제학회 국제컨퍼런스에 참석해 개회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미국의 물가 상승세가 누그러지면서 금리인상 속도조절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오는 24일 열릴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도 인상폭이 축소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앞서 미국 노동부는 지난 10일(현지시간)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월 대비 7.7%, 전월 대비 0.4% 올랐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는 시장 전망치인 7.9%보다 0.2%포인트 낮은 것으로, CPI가 8% 밑으로 내려온 것은 지난 2월(7.9%) 이후 8개월 만이다. 

가파른 물가 상승세가 한풀 꺾이면서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정책에도 여유가 생기게 됐다. 시티즌 파이낸셜 그룹의 에릭 멀리스 글로벌 시장 담당 이사는 이날 CNN을 통해 “오늘 발표된 CPI는 인플레이션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연준이 금리인상폭을 75bp(1bp=0.01%포인트) 미만으로 조정할 수 있는 근거를 얻게 된 셈”이라고 말했다.

연준은 지난 6월부터 4연속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단행하며 긴축정책을 추진해왔다. 지난 9월까지만하도 CPI 상승률이 8.2%를 기록하는 등 물가상승세가 진정되지 않고 있었기 때문. 하지만 급격한 금리인상에 따른 경기둔화, 달러 강세, 유럽 및 신흥국의 금융시장 불안정에 따른 불만 고조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뒤따랐다. 지난달 CPI가 다시 7%대로 내려온 만큼, 연준도 잠시 4연속 자이언트 스텝의 효과를 검토하면서 긴축 속도를 늦추고 숨을 고를 시간을 벌게 된 셈이다. 

만약 연준이 긴축 속도를 늦추게 되면, 한은 또한 금리인상 속도를 조절할 수 있게 된다. 실제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11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한은-한국경제학회(KEA) 국제콘퍼런스에 참석해 개회사를 통해 “최근 들어서는 인플레이션과 환율이 비교적 안정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미 연준의 금리인상 속도도 연준의장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바와 같이 다소 누그러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긴축적 통화기조를 유지함으로써 물가안정기조를 공고히 하고 인플레이션 수준을 낮추는 것은 여전히 한국은행의 우선과제”라면서도 “그동안 기준금리 인상속도가 그 어느 때보다 빨랐기 때문에 경제의 다양한 부문에서 느끼는 경제적 압박의 강도가 증가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금융안정 유지, 특히 비은행부문에서의 금융안정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총재의 발언은 긴축 기조는 유지하되, 금융시장 안정을 고려해 속도조절에 나설 수는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CPI 발표 이전에는 한미 금리차가 1%포인트까지 벌어진 만큼 금통위가 이달 회의에서 올해 세 번째 ‘빅스텝’(0.5%포인트 인상)을 결정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지만, 연준의 속도조절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진 만큼 한은의 베이비스텝(0.25%포인트 인상), 혹은 금리동결까지 기대하는 분위기도 확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은이 이달 금통위에서 베이비스텝에 나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강승원 NH투자증권 연구원은 14일 보고서에서 “미국 10월 CPI가 통화완화적 서프라이즈(Dovish surprise)를 기록하며 시장은 연준의 12월 속도 조절 정도는 확보했고 이에 금통위 의사록에서도 지목한 환율 문제도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며 “이를 감안하면 한국은행은 다소 편하게 금리인상의 속도조절에 나설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다만 강 연구원은 금통위가 금리를 동결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내다봤다. 실제 지난 7월 미국에서는 물가 상승세가 소폭 진정되는 모습을 보이면서 인플레이션이 정점을 지났다는 기대가 커지기도 했지만, 8~9월 모두 물가상승폭이 확대되며 연준도 결국 최종금리 전망을 상향해야 했다. 강 연구원은 “한은이 이미 충분히 11월 금리인상에 대한 신호를 전달했고, 앞서 지적한 7~9월 미국 시장의 교훈을 감안하면 11월 동결 결정은 득보다 실이 훨씬 크다”며 “동결 기대는 다소 과도하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