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솔루션과 소비자시민모임은 지난 8일 서울 중구 상연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SK루브리컨츠의 ‘탄소중립 윤활유제품’을 포함해 기업들의 그린워싱 사례를 예방할 조처들을 국가 당국 및 기업에게 제안했다. 사진=기후솔루션
기후솔루션과 소비자시민모임은 지난 8일 서울 중구 상연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SK루브리컨츠의 ‘탄소중립 윤활유제품’을 포함해 기업들의 그린워싱 사례를 예방할 조처들을 국가 당국 및 기업에게 제안했다. 사진=기후솔루션

[이코리아]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기업들의 탄소중립 상품 개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그 반면에 일반 제품을 ‘친환경’ 제품으로 속여 홍보하는 일부 기업의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으로 인해 소비자들의 신뢰가 하락하고 있다. 기후 친화적인 상품의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감독당국의 엄격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후솔루션과 소비자시민모임은 지난 8일 서울 중구 상연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SK루브리컨츠의 ‘탄소중립 윤활유제품’을 포함해 기업들의 그린워싱 사례를 예방할 조처들을 당국 및 기업에게 제안했다. 

앞서 기후솔루션은 지난달 27일 SK루브리컨츠가 지난 9월 출시한 ‘탄소중립 윤활유제품’에 대해 허위·과장 광고라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한 바 있다. SK루브리컨츠는 해당 제품의 생산→운송→소비→폐기 등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과 같은 양의 탄소배출권을 미국의 자발적 탄소배출권 인증기관 ‘베라’(Verra)로부터 구매하는 방식으로 탄소중립을 달성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후솔루션은 ▲탄소배출권 구입이 석유제품 사용으로 발생하는 탄소를 영구적으로 제거하지 못한다는 점 ▲자발적 탄소배출권은 객관적인 탄소 감축 기여도를 검증하기 어렵다는 점 ▲SK루브리컨츠가 실제 구입한 탄소배출권의 수치나 감축량을 명시적으로 공개하고 있지 않다는 점 등을 이유로 SK루브리컨츠의 ‘탄소중립 윤활유’라는 주장이 ‘그린워싱’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 해외 그린워싱 규제는? 명확한 기준 + 구체적 정보공개

SK루브리컨츠의 ‘탄소중립 윤활유’가 그린워싱에 해당하는지는 아직 논쟁의 여지가 남아있다. 하지만 기후변화를 우려하는 소비자들이 마음 놓고 탄소저감 상품을 소비할 수 있도록 하려면 기후 친화적인 상품의 명확한 기준과 그린워싱에 대한 엄격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해외에서는 일반 제품을 친환경 제품이라고 홍보한 기업에 대해 엄격한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실제 프랑스에서는 지난해 4월 그린워싱에 대해 벌금을 부과하는 내용의 법안이 만장일치로 국회를 통과했다. 이 법안은 그린워싱을 한 기업에 대해 허위 홍보캠페인 비용의 80%까지 벌금을 부과하는 한편, 언론 및 기업 홈페이지에 30일간 해명자료를 공개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영국 또한 지난해 9월 경쟁시장청(CMA)에서 ‘친환경 주장 지침’(Green Claims Code)을 발표했다. 해당 지침은 기존 소비자 보호 규정과는 별도로 기업이 ‘친환경’ 제품임을 주장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기준을 담고 있다. 만약 기업이 제품 홍보에 친환경 관련 문구를 사용했다가 그 근거를 제시하지 못할 경우 소비자에게 피해보상을 지급해야 한다. CMA는 최근 해당 지침에 따라 패션계에 대한 강력한 규제를 예고했는데, 의류에 대해 ‘친환경’, ‘지속가능성’ 등의 홍보 문구를 사용하려면 앞으로 섬유의 구성 성분 중 친환경 소재의 비중이 몇 %인지 등에 대해 구체적이고 명확한 정보를 제시해야 한다. 

미국은 연방무역위원회(FTC)가 지난 1992년 ‘그린가이드’(Green Guides)를 발표한 이래 지속적인 수정·보완작업을 해오고 있다. 실제 지난해에는 그린피스 등 환경단체들이 그린가이드 위반을 이유로 석유기업 쉐브론을 FTC에 고발하기도 했다. 또한, 각 주별로 그린워싱 규제를 위한 입법도 추진되고 있다. 특히,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지난해 10월 그린워싱을 방지하기 위해 ‘환경 광고, 재활용 기호, 재활용 가능성, 제품 및 포장 법안’이 통과됐다. 

 

2016년~2021년 환경성 표시·광고 통계 현황.(단위: 건) 자료=국회입법조사처
2016년~2021년 환경성 표시·광고 통계 현황.(단위: 건) 자료=국회입법조사처

◇ 국내 그린워싱 규제, ‘자율시정’이 대부분

국내에도 그린워싱을 방지할 수 있는 규제 수단이 없는 것은 아니다. ‘환경기술 및 환경산업 지원법’은 ‘제품의 환경성’을 “재료와 제품을 제조·소비·폐기하는 전 과정에서 오염물질이나 온실가스 등을 배출하는 정도 및 자원과 에너지를 소비하는 정도 등 환경에 미치는 영향력의 정도”로 규정하고, 이와 관련해 소비자를 기만할 우려가 있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 환경부는 그린워싱이 적발된 기업에 대해 관련 매출액의 2% 또는 5억원 이하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그린워싱 기업에 대한 처벌 수준은 미약한 상황이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유통업계 자율시정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한 지난 2019년 이후 환경성 표시・광고에 대한 환경부의 행정조치는 감소하고 있으며 시행된 조치 또한 대부분 시정권고였다. 실제 지난 2016년부터 2021년까지 환경부가 그린워싱 적발 기업을 고발한 경우는 단 한 건도 없었으며, 시정명령 또한 2019년 5건을 마지막으로 2년간 전혀 조치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조치는 시정권고(2017년 전체 행정조치의 90.2%, 2018년 99.2%)였으며, 2019년 이후에는 그 자리를 자율시정(2019년 97.5%, 2020년 99.6%, 2021년 91.4%)이 대신했다. 

이처럼 처벌 수위가 낮다 보니 환경성 표시·광고 관련 행정조치의 상세한 내용은 공개조차 되지 않고 있다. 그린워싱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기 위해 2020년 3월 환경기술산업법을 개정을 통해 신고포상금제도를 신설했지만, 지난 6월 10일까지 신고포상금이 지급된 사례도 없다. 

국회입법조사처는 “환경부는 적발 기업에 관련 매출액의 2%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지만, 시정권고나 시정명령 등에 그치고 있는 것은 관리감독의무가 있는 정부가 사실상 기업 봐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있다”며 “소비자의 알권리를 강화하고, 사안의 경중에 따라 적절한 행정처분이 가능하도록 근거 법령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공정위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기후솔루션과 소비자시민모임은 8일 기자회견에서 “공정거래위원회는 표시, 광고의 감독기관으로서, 해당 제품이 진정으로 탄소중립을 달성하였는지 기업에 실증을 요구해야 한다”며 “소비자 오인이 없도록, 관련 규정을 정비하고 탄소중립 표시, 광고에 철저한 감독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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