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 2018년 10월 2일 오후 관저에서 '2018 남북정상회담 평양’ 북측 선물 풍산개 수컷 '송강'을 어루만지고 있다. 사진=청와대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 2018년 10월 2일 오후 관저에서 '2018 남북정상회담 평양’ 북측 선물 풍산개 수컷 '송강'을 어루만지고 있다. 사진=청와대

[이코리아] 문재인 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선물로 받은 풍산개의 거취를 두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풍산개 논란이 전·현직 대통령 간의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가운데, 동물의 법적 지위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8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문 전 대통령은 최근 퇴임 후 경남 양산 사저로 데려간 풍산개와 관련해 대통령기록관에 관리 협의를 요청했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2018년 9월 3차 남북정상회담 뒤 김 국무위원장으로부터 풍산개 ‘곰이’와 ‘송강이’를 선물받은 바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이후 퇴임 시 곰이와 송강이, 곰이가 낳은 새끼 7마리 중 다운이까지 3마리를 양산 사저로 데려갔다. 

곰이와 송강이는 문 전 대통령이 국가 원수 자격으로 선물 받은 것인 만큼 국유재산이자 대통령기록물로 분류되기 때문에 퇴임 후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해야 한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인 지난 3월 “(강아지는) 일반 물건과 다르다. 키우던 주인이 계속 키우는 것이 맞다”는 입장을 밝혀 문 전 대통령 퇴임 후에도 사저에서 함께 지내게 됐다.

문제는 여전히 곰이와 송강이의 거취와 관련된 근거 규정이 없는 상태라는 것이다. 규정상 풍산개 2마리는 문 전 대통령이 국유재산을 위탁관리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근거 규정 없이 개인 소유물처럼 키우는 것은 사실상 위법이라는 것. 실제 문 전 대통령 비서실은 풍산개 관리 협의가 ‘파양’ 논란으로 번지자 지난 7일 페이스북을 통해 해명에 나섰다.

비서실은 “(전임 대통령이 국가소유의 반려동물을 위탁관리하는 것은) 선례가 없는 일이고 명시적인 근거 규정도 없는 까닭에, 대통령기록관과 행안부는 빠른 시일 내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시행령을 개정하여 명시적 근거 규정을 마련할 것을 약속했다. 그에 따라 행안부는 지난 6월 17일 시행령 개정을 입법예고 하였으나 이유를 알 수 없는 대통령실의 이의제기로 국무회의에 상정되지 못했다”며 “행안부는 일부 자구를 수정하여 재입법예고 하겠다고 알려왔으나 퇴임 6개월이 되는 지금까지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역시 대통령실의 반대가 원인인 듯하다”고 해명했다. 이번 사태의 책임은 근거 규정 마련을 미룬 윤 대통령에게 있다는 것. 

반면 윤 대통령은 문 전 대통령의 주장이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대통령실은 7일 “해당 시행령은 대통령기록관 소관으로, 행안부·법제처 등 관련 부처가 협의 중에 있을 뿐 시행령 개정이 완전히 무산된 것이 아니다”라며 “시행령 입안 과정을 기다리지 않고 풍산개를 대통령기록관에 반환한 건 전적으로 문 전 대통령 측 판단일 뿐, 현재의 대통령실과는 무관하다”고 반박했다. 행안부 또한 이날 설명자료를 내고 “행정안전부 대통령기록관은 풍산개 관리를 지원하기 위해 그간 시행령 개정을 포함하여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에 있었다”고 말했다. 

◇ 동물=국유재산? 논란 핵심은 동물의 법적 지위

일각에서는 전·현직 대통령 간의 갈등을 불러온 풍산개 논란의 핵심은 위탁관리 규정이 아니라 동물의 법적 지위라는 지적도 나온다. 우희종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7일 페이스북에서 “들여다보면 (문제는) 법적으로 동물을 물건 취급하는 것에 있다”며 “아기라는 생명체를 놓고 생긴 갈등에 접근한 솔로몬은 생명체에 대한 존중과 정서에 근거해 판결한다. 21세기, 그 시절보다도 못하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실제 국내에서 동물의 법적 지위는 물건과 동일하다. 이 때문에 키우던 반려견이 타인에게 구타·학대를 당하거나 맹견에게 물려도 가해자를 처벌할 마땅한 방법이 없는 상태다. 동물을 해쳐도 물건을 훼손한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재물손괴죄’를 적용할 수 있을 뿐이다. 동물보호법에 따라 동물학대 행위에 대해 최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지만, 대부분 소액의 벌금형에 그치고 있다. 실제 지난 5월 MBN 보도에 따르면, 2013년 이후 동물학대범 판결문 194건을 분석한 결과 평균 벌금액은 142만6000원이었으며 실형을 받은 경우는 단 1건(징역 6개월)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물건으로 취급되는 동물의 법적 지위를 인정하기 위한 입법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실제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10월 1일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조항을 신설한 민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는 “반려동물을 양육하는 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동물 학대·유기 방지, 동물에 대한 비인도적 처우 개선 및 동물권 보호 강화 등을 위한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인식이 확산되고 있으나, 현행 민법에서는 동물을 물건으로 취급하고 있어 이러한 사회적 인식 변화에 부합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며 “민법상 동물은 물건이 아님을 규정하여 동물에 대한 국민들의 변화된 인식을 반영하고, 동물의 법적 지위를 개선하려는 한다”고 개정 취지를 설명했다.

해외에서는 이미 다수의 국가에서 동물의 법적 지위에 대한 규정을 마련해, 물건이 아닌 생명체로서 동물의 권리를 보호하고 있다. 독일은 지난 1990년 민법에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동물은 별도의 법률에 의해 보호된다. 그에 대하여 다른 정함이 없는 한 물건에 관한 규정이 준용된다”는 내용의 조항을 신설했으며, 오스트리아 또한 1988년 ‘동물의 법적 지위에 관한 연방법률’을 제정했다. 최근에는 칠레에서 동물을 물건으로 취급하는 기존 민법 조항을 수정하는 논의가 진행 중이다. 

스위스의 경우 민법뿐만 아니라 채무법 또한 동물의 법적 지위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개정했다. 만약 반려동물이 타인에게 피해를 당하게 되면, 반려동물의 교환가치뿐만 아니라 이를 초과한 치료비용 및 반려인과 반려동물 간의 애호관계 등을 반영해 손해배상액을 산정하게 된다. 

만약 민법이 개정돼 동물에게 물건이 아닌 생명체로서의 법적 지위가 보장됐다면, 곰이와 송강이의 거취를 둘러싼 논란은 애초에 벌어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현재 동물의 비물건화를 골자로 하는 민법 개정안은 1년 넘게 국회 소관위에 계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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