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기업 수(왼쪽), 차입금(가운데), 취약 지속기간별 비중(오른쪽). 자료=한국은행
한계기업 수(왼쪽), 차입금(가운데), 취약 지속기간별 비중(오른쪽). 자료=한국은행

[이코리아] 고금리·고물가·고환율로 경영여건이 악화한 가운데 자금시장까지 얼어붙으면서 벼랑 끝에 몰린 한계기업이 늘어날 것으로 우려된다. 코로나19 이후 미뤄진 구조조정이 눈 앞으로 다가온 만큼, 적절한 정책 지원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9월 예금은행의 신규취급액 기준 기업대출 평균 금리는 4.66%(대기업 4.38%, 중소기업 4.87%)으로 지난 2013년 12월(4.67%) 이후 약 9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4연속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에 발맞춰 한국은행도 연달아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대출금리도 급등한 것.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상하기 전인 지난해 7월까지만 해도 2.85% 수준이었던 기업대출 금리는 불과 1년 2개월 만에 1.81%포인트나 올랐다. 

‘레고랜드’ 사태로 인해 자금시장이 경색된 상황에서 기업의 이자부담이 크게 늘어난 만큼, 한계기업의 비중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한계기업은 벌어들인 이익으로 이자도 갚기 어려운 상황에 부닥친 기업을 뜻하는 용어로, 통상 3년 연속 이자보상비율(영업이익÷이자비용)이 1 미만인 기업을 지칭한다. 

구정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달 29일 발표한 ‘한계기업 증가 가능성과 향후 과제’ 보고서에서 “지난해에는 경기회복에 따른 매출증가, 수익성 회복의 영향으로 (한계기업 비중이)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하락했다”면서도 “그러나 최근 금리·물가·환율 상승 등으로 기업의 경영여건이 악화되는 가운데 국내외 경기도 점차 둔화될 전망임에 따라, 향후 한계기업의 비중은 크게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기업대출 규모는 1321.3조원으로 코로나19 이전(2019년 말 967조원) 대비 345.3조원이나 증가했다. 이 가운데 72.7%는 변동금리로 고정금리 비중은 27.3%에 불과했다. 기업 10곳 중 7곳은 급격한 금리상승에 따른 이자부담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 한국전력공사 발행 채권조차 투자자를 채우지 못하는 상황인 만큼, 기업들은 자금조달과 이자부담이라는 이중고를 겪게 됐다. 

금리상승과 경기둔화로 인해 기업 수익이 감소할 경우 한계기업의 수가 늘어날 위험은 커질 수밖에 없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 2일 한은이 향후 빅스텝에 나설 경우 조사 대상 기업 1만3989곳 중 한계기업 수는 2170곳, 비중은 15.51%로 당초보다 각각 86곳, 0.61%포인트 증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계기업이 증가할 경우 코로나19로 인해 미뤄진 구조조정이 당면 과제로 떠오를 수 있다. 실제 한은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19 이전부터 한계기업의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여왔다. 부실징후기업(외부 도움 없이 차입금 상환이 어려운 기업)의 수 또한 2017년 199곳에서 2019년 210곳으로 11곳 증가했다. 물론 코로나19 이후 한계기업 수가 일부 감소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동안 만기연장·상환유예 등 금융지원 조치가 시행된 데다 코로나19 피해를 감안해 기업신용위험평가를 실시한 측면도 있는 만큼 이를 완전히 신뢰하기는 어렵다. 

구 선임연구위원은 “장기간 지속된 저금리 기조, 중소기업·소상공인에 대한 대출 만기연장, 원리금 상환유예 등의 조치로 기존 신용위험평가 기준의 적정성에 의문이 제기됨에 따라 최근 상시평가 운영협약이 기업신용위험평가를 엄격하게 하도록 개정됐다”며 “최근 원자재가격, 금리상승 등 비용상승에 따라 재무구조가 악화되는 기업이 다수 발생할 것으로 예상돼, 기업 구조조정이 당면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 선임연구위원은 이어 “일률적인 잣대로 기업구조조정을 추진하기보다는 기업이 처한 상황에 맞는 구조조정 방식이 채택되어 추진될 수 있는 효율적인 기업구조조정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며 ▲기업구조조정촉진법 재입법 ▲기업구조조정 참여 채권금융기관에 대한 인센티브 부여 ▲구조조정 펀드에 대한 정책지원 ▲한계기업이 되기 전 선제적으로 환경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사업재편이 필요한 기업 지원 등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한계기업이 늘어날 경우 상장폐지의 위험도 커지는 만큼 투자자들도 더욱 신중한 판단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2017년~2022년 6월 상장폐지된 75개 기업을 분석한 결과, 상장폐지기업은 2017년 12곳에서 지난해 20곳으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상장폐지기업은 대체로 자기자본 대비 당기순손실이 점차 확대돼 자본잠식이 심화되며, 이를 피하려고 주식관련사채 및 주식(유상증자)을 빈번하게 발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최대주주가 자주 변경되거나,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되는 경우도 늘어난다는 특징을 보였다.

금감원은 “최근 고금리 등의 영향으로 상장기업들이 자금조달 등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투자자들의 보다 현명한 투자판단이 요구된다”며 “상장기업의 단순 외형상 계속가능성뿐만 아니라, 실질적 측면의 회계・경영투명성에 대해서도 각별한 관심과 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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