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별 국내 ESG 펀드 개수 변화 추이. 자료=서스틴베스트
반기별 국내 ESG 펀드 개수 변화 추이. 자료=서스틴베스트

[이코리아]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글로벌 금융시장의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ESG 펀드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름만 ‘ESG’를 내세우고 내용은 일반 펀드와 다름없는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의 위험도 함께 커지고 있어, 이를 규제하기 위한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 국내 ESG 펀드 총 127개, 전반기보다 11개 증가

ESG 전문 평가 기관 서스틴베스트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 ESG 펀드는 총 127개로 전반기 대비 11개 증가했다. 전년 동기와 비교하면 37개(41%)가 늘어난 것으로, 기후위기 등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지속적으로 시장에 반영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올해 상반기 국내 ESG 펀드 순자산은 전반기 대비 10.8% 감소한 7조548억원에 그쳤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강력한 통화 긴축과 인플레이션, 증시 침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무기·화석연료 산업에 대한 관심 증가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자산 규모는 줄었지만 ESG 펀드의 수익률은 일반 펀드와 비교해 오히려 양호한 모습을 보였다. 서스틴베스트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 주식형 ESG 펀드 수익률은 -19.07%로 코스피200 대비 3.50%포인트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또한, 국내 채권형 ESG 펀드도 KIS종합채권지수 대비 5.16%포인트 높은 –1.11%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금융시장이 전반적으로 침체된 상황에서도 수익률을 방어해내며 일반 펀드보다 높은 성적을 기록한 것. 

◇ 이름만 ESG  ‘그린워싱’에서 투자자 보호하려면?

이처럼 ESG 펀드가 하락장에서고 견고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데다, 기후변화에 대한 위기의식도 커지고 있는 만큼 투자자들의 관심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ESG 펀드가 실제 ESG 요소를 투자에 반영하고 있는지, 아니면 일반 펀드와 별 차이가 없는데 이름만 ‘ESG’를 내세워 투자자를 기만하고 있는지 판별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인형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24일 발간된 ‘자본시장포커스’ 최근호에 기고한 글에서 “국내 ESG 펀드들은 일반 펀드와 비교하여 ESG 수준이 유의미하게 차이나지 않고 있으며, ESG 요소를 활용하여 엑티브 운용전략을 추구하는 펀드 간에도 포트폴리오의 ESG 점수가 두 배 이상 차이 나는 것으로 보고됐다”며 “투자자가 사전에 이러한 정보를 현재의 투자설명서를 통해 식별하여 선호에 따른 선택을 하기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ESG 테마형 펀드 52개의 투자유형과 ESG 분석방법 및 준거지수 등을 비교했는데, ESG 요소가 투자 결정의 주된 요인으로 작용하는 펀드는 4개에 불과했다. ESG를 주제로 투자 대상 기업과 소통하거나 주주총회에서 주주권 행사를 통해 기업가치 제고를 목표로 한다고 설명한 ESG 펀드 또한 6개뿐이었다. 

국내 ESG 펀드 대부분은 투자 대상의 ESG 요소를 분석하기 위해 자체 평가 기준을 갖추기보다는 외부 ESG 평가사에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ESG 펀드 투자설명서에는 외부 평가사가 사용하는 자료나 방법론에 대한 내부 실사를 시행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적혀있지 않았으며, ESG 분석방법론이나 자료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없는 경우도 절반이 넘었다. 또한, ESG에 특화된 지수가 아니라 코스피 지수를 사용하거나, 아예 준거지수를 설정하지 않은 펀드도 20개에 달했다.

투자설명서를 읽어도 금융사가 ESG 요소를 고려해 투자하는지 확인하기 어려운 만큼, 금융사의 ‘그린워싱’을 예방하려면 명확한 공시규정이 필수적이다. 실제 미국·유럽연합(EU)에서는 투자상품의 ESG 관련 정보공시를 의무화하는 규정을 도입했다.

EU는 지난해 3월부터 ‘지속가능금융 공시규정’(SFDR)을 시행하고 유럽 내 금융기관의 투자 및 상품 관련 지속가능성 정보의 공시를 의무화했다. SFDR에 따라 금융사는 ESG 펀드의 투자 결정에 ESG 요소가 어떻게 반영되는지 투자자에게 설명해야 하며, 만약 ESG와 무관한 상품인 경우 이를 투자설명서에 명확하게 기재해야 한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또한 지난 5월 25일 그린워싱을 방지하기 위해 ‘ESG 투자상품 공시 규정안’과 ‘펀드 명칭 규칙 개정안’ 등 두 안건을 상정하고 의견을 수렴하기 시작했다. 이 규정들은 금융사가 투자자에게 ESG 펀드의 구체적인 정보를 공개하도록 의무화하는 한편, 펀드 이름 명시된 특정 분야에 전체 투자자산의 80% 이상을 투자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내의 경우 금융투자협회의 ‘금융투자회사의 영업 및 업무에 관한 규정’에 투자자의 오해를 살 우려가 있는 펀드 이름은 사용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이 명시돼 있지만, 이를 위반할 경우 제재할 수단은 없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ESG 펀드를 표방하지만, 내용상 그러하지 않을 때 이에 대한 행정 제재 방안이 없기 때문에 의도적인 그린워싱의 가능성이 없지 않다”며 “이를 예방하기 위해 최근 유럽연합과 미국이 금융투자 상품의 ESG 관련 정보공시를 의무화하려는 움직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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