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의 재건축 현장. 사진=뉴시스
사진은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의 재건축 현장.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우량 사업장으로 꼽히는 둔촌주공 프로젝트파이낸싱(PF) 차환이 실패하면서 부동산 PF 시장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현재의 '부동산 PF 위기론'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와 비교해 위기의 시작점과 부동산 PF 구조 등이 다르다는 것이 부각되면서 그 여파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26일 건설업계 등에 따르면 28일 만기를 앞둔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의 PF와 관련해 BNK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등이 자산담보부단기채(ABSTP) 차환 발행에 실패하면서 건설업계에 위기감이 번지고 있다. 부동산 PF는 시행사가 건물 착공 과정에서 필요한 자금을 금융회사가 대주는 행위다. 

증권사들은 기존 사업비 7000억 원에 추가로 1250억 원을 더해 8250억 원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발행을 시도했지만, 투자자를 구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현대건설·HDC현대산업개발·대우건설·롯데건설 4개 건설사로 구성된 시공사업단은 지분율에 따라 자체자금으로 사업비를 상환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각각 1640억에서 1960억 원가량을 투입해야 한다.

앞서 둔촌주공 재건축 조합은 NH농협은행 등 24개 금융사로 구성된 대주단에 7000억 원의 조합 사업비 대출 만기를 연장해달라고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앞서 롯데건설은 롯데케미칼 등 그룹 계열사들로부터 7000억 원을 긴급 수혈받았다. 지난 20일 롯데케미칼과 5000억 원 규모의 금전소비대차계약을 체결했다. 앞서 19일엔 2000억 원 규모의 주주배정증자(유상증자)를 실시한 바 있다.

이번 차환 실패는 강원도 레고랜드 사태가 트리거가 됐다. 레고랜드에서 촉발된 금융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정부가 급박하게 50조 원 이상의 유동성을 긴급 투입하기로 하면서 요동치던 채권시장은 다소 진정되는 모습이지만 부동산PF에 대한 불신은 여전히 크다. 빠른 금리 상승과 부동산 경기 침체가 이어지고 있어서다. 

일각에서는 둔촌주공 같은 우량사업장마저 자금난을 겪으면서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부동산PF 탓에 업계가 휘청한 흐름이 재현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당시 부동산PF 보증 여파 등으로 100대 건설사 중 45개사가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등 파고를 겪은 바 있어 더욱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부동산 경기 호조로 규제가 약한 2금융권을 중심으로 부동산PF가 2013년 말 35조2000억 원에서 올해 6월 말 112조2000억 원으로 3배 이상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부동산 PF 대출과 연관된 유동화증권 규모도 2014년 20조9000억 원에서 올해 6월 39조8000억 원으로 18조9000억 원(90.4%)이나 큰 폭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올해부터 미국발 금리 인상 가속화, 원자재 가격 상승, 분양시장 냉각 등으로 개발사업이 급속히 악화되며 부동산 PF 대출 부실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특히 부동산 침체기에 미분양이 늘어날 경우 대금지급 불능사태가 발생하며 중소건설사 부도 대란으로 번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실제로 전국 미분양 주택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8월 말 기준 전국의 미분양 주택은 3만 2722가구로 지난해 말(1만 7710가구) 대비 84.8% 늘어났다. 수도권 미분양도 같은 기간 1509가구에서 5012가구로 3배 이상 급증했다. 무엇보다 악성 재고로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도 증가 추세에 있다. 1순위 청약경쟁률의 경우에도 전국기준 작년 3분기 30.9대1에서 올해 3분기 3.5대 31로 하락했다.

주택산업연구원이 한국주택협회와 대한주택건설협회 회원사 500여 곳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 따르면 이달 전국 주택사업경기전망지수가 지난달(50.6) 보다 2.8포인트(p) 하락한 47.8을 기록했다. 100을 넘기면 경기 호조를, 100을 밑돌면 그 반대를 의미한다.

다만 건설업계에서는 당장 자금 시장이 얼어붙어 자금을 조달하는 게 어려워지긴 했지만 건설 업체들의 실적 악화 등으로 자금난에 빠진 건 아닌 만큼 금융위기 때와는 다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세라 신영증권 연구원 24일 발간한 ‘부동산PF 위기인가’ 보고서에서 “대개 부동산 경기 악화, 미분양 증가, 시행사현금흐름 악화, PF부실로 이어지는 그림이었다면 지금은 자금시장 경색으로 인한 PF 지급보증 사태라는 점에서 시작점이 다르다”며 “부동산 미분양에 따른 대금 지급 불능 사태가 아직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무서운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부동산 PF는 연대보증과 채무인수 등을 어느 한 쪽이 다 가져가면 집중위험이 크다. 지금은 과거 금융위기와 저축은행 부실 사태 때보다 증권, 캐피탈 등 여러 금융부문에서 채무보증이나 대출을 통해 리스크가 분산된 건 사실”이라면서 “신용 보강에 참여한 증권사·건설사의 신용도가 높고, 개발 사업 대출의 담보 비율도 높은 편이라 금융업에 전이가 크게 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2008년 때 보다 상황은 낫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동산 시장 상황이 가장 중요할 것 같다. 현재 부동산 시장은 금융비용도 커지고 원자재 가격도 오르고 평가가치도 떨어졌다”면서 “금융회사는 사업을 보고 채무보증을 하는 것인데, 시장의 기대가 탄탄하면 아무 문제가 없지만 어떤 사건 하나하나로 시장이 패닉되면 신용위험이 순식간에 커질 수도 있다. 금융기관들은 시장에서 자신들이 부동산 채무구조를 안고 가더라도 크게 무리가 없다는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PF 대출 부실을 막기 위해서는 과감한 규제완화 등 선제 대응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정주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부동산 PF 사업과 관련한 민간·정책금융기관의 공동출자로 기금을 조성한 뒤 부실채권을 신속히 인수해 PF 부실이 금융시장과 경제 전반으로 파급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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