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과 한국은행 총재를 비롯한 경제 관련 부처장들이 23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비상 거시경제 금융회의에 참석했다. 사진=기획재정부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과 한국은행 총재를 비롯한 경제 관련 부처장들이 23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비상 거시경제 금융회의에 참석했다. 사진=기획재정부  

[이코리아] 강원도 레고랜드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면서 자금시장의 불안이 커지자 정부가 50조원 이상의 유동성을 긴급 공급하기로 했다. 금융시장 불안심리 확산 및 유동성 위축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 시장 안정 기대가 가능할 것이라는 긍정적인 평가와 더불어 향후 추이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24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23일 “시장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을 '50조원 플러스알파(+α) '규모로 확대해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날 서울 은행회관에서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를 개최했는데,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김주현 금융위원회 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최상목 경제수석 등 경제·금융 수장들이 참석했다.

지난달 28일 레고랜드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의 만기가 도래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갚아야하는 강원도가 상환이 아닌 기업회생을 신청하기로 하자 단기 자금시장이 급격하게 경색됐다. 국채와 비슷한 신용도를 지닌 지자체가 발행한 채권이 사실상 '부도' 처리되자 채권시장이 급속하게 얼어붙은 것이다. 

이에 더해 최근 한국은행의 '빅스텝'으로 기준금리가 한 번에 0.5%포인트 인상되자 기업들이 발행하는 회사채의 금리가 빠르게 뛰었다. 지난 20일 기준 가장 대중적인 신용등급 AA- 회사채 3년물 금리는 5.588%로 연중최고치를 기록했다. 심지어 이달엔 최고신용등급(AAA급)인 한국전력공사 5%대 회사채 발행도 유찰됐다.

이렇게 레고랜드 발 상황이 가라앉지 않자 결국 정부가 긴급회의를 소집해 대규모 자금을 풀기로 했다.

정부는 먼저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을 50조 원 이상의 규모로 확대해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20조 원 규모의 채권시장안정펀드는 1조6000억 원을 먼저 투입해 회사채·기업(CP) 어음 매입을 곧바로 재개하기로 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이날 “추가 펀드 자금요청 작업도 속도를 내서 11월 초부터 본격적으로 집행하도록 하고 필요 시 추가 조성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신용보증기금이 운영하는 회사채·기업어음 매입 프로그램의 매입 한도는 기존 8조 원에서 16조 원으로 확대하고, ‘프로젝트파이낸싱 자산유동화기업어음’(PF-ABCP) 어려움으로 유동성이 부족한 증권사에 대해서는 3조 원 규모의 유동성을 지원하기로 했다.

부동산 PF 시장 불안에도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로 했다. 

추 부총리는 “자금 조달 어려움을 완화하기 위해 주택도시보증공사 등의 사업자 보증 지원을 10조 원 규모로 확대하고, 지자체 보증 자산유동화기업어음에 대해 모든 지자체가 지급보증 의무를 성실히 이행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또 시장 불안을 조성하는 교란 행위와 악성 루머 등 허위사실 유포에 대해서도 적극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번 대규모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으로 단기 시장의 안정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장근혁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4일 <이코리아>와의 통화에서 “일단 50조 원 이상으로 확대 조정된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으로 단기금융시장 불안 해소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단기적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고 평가했다. 

장 연구위원은 “이번 조치는 단기자금시장 경색 해결을 위한 대책이고, 50조 원을 조성했다고 해서 한 번에 다 쓰이는 것은 아닌 만큼 유동성의 급격한 확대는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코로나19 때 했던 기업유동성지원기구(SPV) 등 정부가 추가대책으로 쓸 수 있는 카드가 남긴 했지만 일차적으로 증권사 등 개별기관들이 향후 리스크관리에 대한 자구적인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정대호 KB증권 크레딧 연구원은 “한은 역시 크레딧 시장내 최종 지원책인 기업유동성지원기구(SPV)를 재가동하는 조치에 대한 논의를 금통위에서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언급했는데, 이는 직접적인 크레딧 시장 경색을 해소하는데 가장 효과가 크지만, 장기적으로 향후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다는 입장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고 분석했다. 

이어 “기재부 및 금융위 등에서 마련한 미시적인 조치를 통한 수습 과정을 지켜본 후 최종적인 대책으로 마련할 가능성을 내비친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정 연구원은 “금전신탁 자금의 대부분이 법인형인 상황에서 이제까지 롤오버 경향이 축소되고 환매가 나타난다면 이번 유동성 지원 대책 효과는 반감될 수 있다”면서 “근본적인 시장 해결은 채무 감축 속도와 그 과정에서의 유동성 미스매치를 보완할 장치 마련 여부”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단기자금시장 안정 조치는 기준금리를 올려 시중의 유동성을 흡수하고 있는 한국은행의 기조와 엇박자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비상 거시경제금융회의 이후 나온 질문에서 “시장안정 조치가 신용 경계감이 높아진 데 따른 미시 조치”라고 설명하면서 빅스텝 전제조건이 바뀌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이어 한은도 자금시장 안정방안 중 하나로 적격담보증권 대상으로 국채 이외에 공공기관채와 은행채 등을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금융권에서 요청하는 금융안정 특별대출의 경우, 한은이 대출을 통해 유동성을 늘려야 하기 때문에 현 통화정책방향과 상충하고 있는 것.

백윤민 교보증권 연구원은 “시장에서 기대했던 기업유동성지원기구(SPV)나 금투협에서 요청한 금융안정특별대출제도 등이 포함되지 않았고, 전술한 대책들의 경우 현재 국내 펀더멘탈 여건이나 통화정책 기조 등을 고려할 때 한은이 쉽게 재가동을 결정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에서 비상 거시경제금융회의에 나온 정책의 효과가 얼마나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말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 규모는 8조1219억 원에 이른다. 게다가 내년 만기 도래 회사채 규모는 무려 69조9589억 원에 달해 내년까지 도합 78조의 회사채 만기가 도래하는 것.

회사채는 만기 시 약속된 금액을 회사가 지불하지 못하거나, 새로운 회사채를 발행하지 않으면 채무불이행(디폴트)이 발생한다. 이에 일각에서는 증권사들의 PF 채무보증 규모가 20조 원이 넘는 걸 감안하면 3조 원은 적은 금액이라는 우려도 있다.

그러면서 이창용 총재의 빅스텝 인상 관련 발언을 채권시장이 어떻게 소화할지도 관건이라고 짚었다. 

백 연구원은 “당사는 다소 비둘기파적이었던 10월 금통위 결과에도 불구하고, 추가적인 50bp 기준금리 인상 전망을 유지한다”면서 “10월 금통위에서 50bp 인상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전제 조건들이 11월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했다. 

레고랜드 사태 강원도 산하 강원중도개발공사(GJC)는 2020년 특수목적회사를 설립하고 2050억원 규모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발행했다. 강원도는 해당 채권 발행에 지급을 보증했으나 최종 부도 처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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