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국회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 갈무리
사진=국회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 갈무리

[이코리아] 강원도 강릉·삼척에 건설 중인 신규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지하기 위한 탈석탄법 제정 청원에 국민 5만명이 동의했다.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적극적인 법제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욱 높아지고 있는 반면, 정부는 아직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만큼 논란이 예상된다.

국회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에 지난 8월 31일 올라온 ‘신규 석탄발전소 철회를 위한 탈석탄법 제정에 관한 청원’은 지난달 29일 청원 요건을 충족했다.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에 등록된 청원은 30일 이내 100명의 찬성을 받으면 공개되며, 이후 30일 내 5만명의 동의를 받으면 접수된다. 이번 청원은 마감을 불과 3시간 앞둔 9월 29일 오후 9시경 동의 5만명을 채워 기준을 넘겼다. 이에 따라 탈석탄법 제정 논의는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에 회부될 예정이다. 

청원인은 “지구온난화 1.5℃ 방지 목표 달성을 위해서 국제사회와 과학계는 한국을 비롯한 주요국에서 석탄발전을 늦어도 2030년까지 폐지해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국내 석탄발전소 건설 사업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며 “정부는 석탄발전 폐지에 원론적으로 동의하면서도, 이미 인허가한 사업을 임의로 취소할 법적 근거가 없다며 사태를 방관하는 입장”이라고 지적했다.

청원인은 이어 “기후위기는 나날이 심각해지고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는 상황에서 신규 석탄발전 사업을 취소하기 위한 입법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국회는 석탄발전 사업 허가를 취소하고 에너지 전환을 촉진하기 위한 탈석탄법 제정을 통해 기후위기 대응 의지를 증명해주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 CCS, 암모니아 혼소... ‘친환경’ 석탄발전은 가능할까?

현재 강원도 강릉과 삼척에서는 각각 삼성물산과 포스코 등 민간 기업이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4기를 건설 중이다. 환경단체는 이전부터 온실가스 배출과 인근 자연환경 훼손 등을 이유로 해당 사업의 중단을 요구했지만, 사업 주체들은 건설 중인 석탄발전소가 기존과는 달리 탄소저감 기술을 적용한 친환경 석탄발전소라며 반박하고 있다.

실제 삼척 석탄발전소 건설사업에 출자한 포스코에너지는 지난 7월 발간한 ‘2021 기업시민보고서’에서 삼척석탄화력발전소를 “폐광산 부지 활용 친환경 발전소”라고 소개하며 “환경부 요구 수준보다 강화된 내부 관리기준을 적용하여 설계되었으며, 밀폐형 친환경 설비로 비산먼지를 완전 차단하는 등 최첨단 환경 설비를 적용한 국내 최고 수준의 친환경 설비를 갖춘 유연탄 발전소”라고 설명했다. 

또한,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사업 추진을 지지하는 측에서는 탄소포집·저장(CCS) 및 암모니아 혼소 등의 기술을 통해 석탄발전소가 배출하는 온실가스를 상당량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CCS는 흡수제 등을 통해 화석연료 사용 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대기로부터 분리시켜 지중에 저장하는 기술이다. 암모니아 혼소 또한 석탄에 암모니아를 섞어 연소시키는 기술로 석탄발전 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크게 감축할 수 있는 기술로 기대를 받고 있다.

문제는 해당 기술의 실효성이 아직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 에너지경제재무분석연구소(IEEFA)가 지난달 1일(현지시간) 발간한 ‘처치 곤란의 탄소포집, 우리가 얻은 교훈(The carbon capture crux: Lessons learned)’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CCS 사업 중 가장 포괄적인 13개 사업을 분석한 결과 10개 사업이 목표 달성에 차질이 생긴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가운데 7개 사업은 목표 포집량을 달성하지 못했으며, 2개 사업은 실패했고 1개는 아예 중단됐다. IEEFA는 “천연가스의 소비(연소) 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전 주기 배출량의 최대 90%에 육박한다”며 “일부분에 그치는 나머지 이산화탄소를 포집한다는 이유로 석유·천연가스전 개발을 새롭게 추진하는 것은 기후변화를 더 악화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암모니아 혼소 또한 일반적인 석탄발전과 온실가스 배출량이 비슷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환경단체 기후솔루션은 지난 3일 기후 분석 연구기관 ‘트렌지션제로’(Transition Zero)의 일본 전력 부문에 대한 분석 보고서 ‘막다른 골목에 몰린 석탄: 일본 전력 부문의 탈탄소화 과정에서 청정 석탄 기술이 담당하는 역할’의 한국어판을 내고 “암모니아 혼소발전에 대한 실증연구가 앞서 있는 일본의 사례에 견줘봤을 때 국내에서 추진중인 암모니아 혼소발전 확대 정책의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트렌지션제로의 분석에 따르면, 현 기술 수준을 고려할 때 발전 단계에서 암모니아 비중이 20%인 혼소발전은 석탄발전(925gCO2/㎾h) 대비 75%의 온실가스(693gCO2/㎾h)를 배출한다. 하지만, 석탄과 함께 섞어 연소시킬 암모니아를 생산·수송하는 전 과정을 고려하면 그 차이는 더욱 좁혀진다. 암모니아는 별도의 공정을 통해 추출한 수소와 공기 중의 질소를 결합해 생산된다. 만약 화석연료에서 추출한 수소를 활용한 ‘그레이 암모니아’를 혼소발전에 활용할 경우 온실가스 배출량(1153gCO2/㎾h)은 일반 석탄발전(1260gCO2/㎾h)과 큰 차이가 없다.

윤석열 정부 또한 문재인 정부와 마찬가지로 석탄발전 비중을 줄여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하고 있다. 다만 이번 청원의 요구인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 중단에 대해서는 아직 불분명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실제 윤 대통령은 지난 대통령 선거 기간 환경운동연합의 정책질의에 대해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 중단에 동의한다”고 답변했다가, 이후 환경부냐 공약을 발표하는 자리에서는 “신축 중인 것을 중단할 수는 없다”며 태도를 바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정부 출범 후 전력수급 관련 논의가 ‘원전 vs 재생에너지’ 구도로 흘러가면서 탈석탄 논의는 잠시 뒤로 미뤄졌다. 하지만, 탈석탄법 제정 청원이 5만명의 동의를 얻어 국회로 회부되면서 정부도 구체적인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압박을 받게 됐다. 

한편, 환경단체는 청원이 요건을 충족하자 즉각 환영 입장을 밝히며 정부와 국회에 적극적인 움직임을 요구하고 있다. 탈석탄법 제정을 위한 시민사회연대는 지난달 30일 성명을 내고 해당 청원에 국민 5만명이 동의한 것에 대해 “공익과 기후 보호를 우선해 석탄발전 건설 사업을 철회하고 에너지 전환을 촉진하라는 시민들의 뜨거운 요구”라고 평가하며 “ 국회는 탈석탄법 제정에 당장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이어 “기후 재난의 시대에 석탄발전 건설이 계속되며 기후 위기와 공익 침해가 명백히 벌어지는데도 정부와 국회는 기업 이익의 논리에 갇혀 수수방관만 하고 있다”며 “국회 여야는 탈석탄법 제정을 당론으로 정하고 조속히 입법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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