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가 23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열린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석탄산업 투자배제 정책'을 촉구하는 피케팅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가 23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열린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석탄산업 투자배제 정책'을 촉구하는 피케팅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국민연금이 탈석탄 투자 전략 수립을 또다시 미뤘다. 국민연금의 더딘 탈석탄 행보에 환경단체의 비판도 거세지는 모양새다. 

국민연금은 지난 23일 제5차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를 열고 한국은행과의 통화 스와프 및 외화 조달 방안 등을 논의했다. 하지만 이날 논의할 것으로 예상했던 탈석탄 투자 전략 도입은 안건에서 빠졌다.

앞서 국민연금은 지난해 5월 열린 기금위에서 석탄채굴 및 발전산업에 대한 투자를 제한하는 ‘네거티브 스크리닝’을 도입하고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를 중단하기로 심의·의결한 바 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국민연금도 ‘탈석탄 선언’에 동참하기로 결정한 것. 하지만 탈석탄 선언 이후 1년 4개월이 지난 지금도 네거티브 스크리닝 도입 논의는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이미 석탄 관련 투자기준 수립을 위한 연구용역을 시행해 최종 결과를 보고받은 상태다. 연구용역을 맡은 딜로이트안진은 지난 4월 석탄 관련 매출 비중이 30% 이상인 기업에 대한 투자를 제한하는 1·2안과 50%로 기준을 완화한 3안 등 세 가지 방안을 기금위에 제시했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연구용역 결과대로 엄격한 투자제한 기준을 도입할 경우, 석탄발전 및 제조업 비중이 높은 국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경영계의 우려도 적지 않아 고민이 계속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해외 주요 연기금이 석탄 투자를 지양하는 추세인 만큼, 국민연금도 더는 네거티브 스크리닝 도입을 미뤄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딜로이트안진이 제안한 ‘석탄 관련 매출 비중 30% 또는 50% 이상’이라는 기준은 해외 주요 연기금 및 금융기관 등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실제 미국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CalPERS·캘퍼스) 석탄 관련 매출 비중 50% 이상인 기업에 대한 투자를 제한하고 있으며, 네덜란드 공적연금(ABP)와 노르웨이 국부펀드(GPFG)는 매출 비중 30%를 적용하고 있다. 

일부 글로벌 연기금은 적극적인 투자 철회로 석탄 관련 기업을 압박하는 모습도 보인다. 실제 ABP의 자산운용사인 네덜란드 연금자산운용(APG)과 영국 국가퇴직연금신탁(네스트·NEST) 등은 지난해 한국전력이 해외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이유로 투자를 철회한 바 있다. 특히 APG는 지난해 박유경 아시아·태평양지역 책임투자부 총괄이사 명의로 한국 정부에 서한을 보내 국내 신규 석탄발전소 사업에 대한 우려를 전달하기도 했다. 노르웨이 국부펀드 또한 국내 기업 5곳을 투자제외기업으로 지정했는데, 이 가운데 포스코, 대우인터내셔널 등은 ‘환경파괴’가 이유로 제시됐다.

반면, 국민연금은 오히려 석탄 관련 투자를 늘리는 추세다. 실제 독일 비영리단체 우르게발트 등 25개 NGO가 지난 2월 발표한 ‘세계 석탄 퇴출 리스트’(GCEL)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지난해 석탄 투자액은 총 15조4500억원(128억9400만 달러)으로 전년 대비 1조6700억원(14억 달러)이나 증가했다. 이는 전 세계 연기금 중 일본 공적연금(GPIF)과 네덜란드 국부펀드에 이어 3위에 해당하는 규모다. 

게다가 국민연금은 최근 한전 지분을 늘려 논란이 되기도 했다. 국민연금은 지난 6월 9일 ‘국내 우량기업 지분 확대’를 이유로 금융위원회에 대량주식취득 승인 신청서를 제출했는데, 여기에는 향후 3년간 한전 주식 2207만1416주(3.44%)를 추가 취득하겠다는 계획이 담겨 있다. 계획대로 주식을 취득한다면 국민연금의 한전 보유지분은 총 6419만6407주(10.00%)로 늘어난다.

탈석탄 선언 이후 실질적인 변화가 보이지 않는 국민연금에 대한 환경단체의 비판도 점차 거세지고 있다. 기후솔루션, 환경운동연합, 플랜1.5, 녹색연합 등 170개 시민사회단체는 기금위를 하루 앞둔 지난 22일 김태현 국민연금 이사장에게 석탄산업 투자배제 정책을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보냈다. 이들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2030년 이전에 석탄 자산이 좌초할 것으로 전망하고, 국민연금 스스로 지난해 5월 ‘탈석탄 선언’을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아직까지 어떻게 실행할 것인지 구체적인 안을 내놓지 않고 있는 상태”라며 ‘석탄 관련 매출 비중 30% 또는 50%’라는 기준 또한 GCEL이 제시한 글로벌 표준(20%)에 미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이어 ▲석탄 관련 매출 비중 30% 이상인 기업에 대한 투자 제한 ▲석탄산업의 범위를 석탄의 전체 가치사슬로 확장 ▲기업의 에너지 전환 계획에 대한 엄격한 심사 및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 방지 ▲석탄 기업에 대한 수탁자책임 활동 기준을 명확히 수립하고 투명성 강화 ▲해외 석탄 자산에 대해 즉각적으로 전면적인 투자 배제 등을 5대 요구사항을 제시하고, 김 이사장에게 오는 10월 24까지 답변해달라고 요청했다. 

참여 시민단체들은 “해외 주요 연기금은 탈석탄 이행을 넘어 화석 연료 전반에 대한 투자 배제 정책을 이행하고 있다. 이들이 탈화석연료에 나선 것은 비단 기후위기 대응뿐 아니라 화석연료의 좌초자산 위험을 관리하기 위해서”라며 국민연금이 전 세계적인 기후위기 대응과 지속가능투자에 동참할 것을 촉구했다. 국민연금이 환경단체의 비판에 응답해 더딘 탈석탄 행보에 속도를 낼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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