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경보가 발효된 7일 오전 부산 북구 만덕동 남해고속도로 진입구간에서 토사가 유출돼 도로가 침수되면서 차량들이 힘겹게 이동하고 있다. 사진=부산경찰청
태풍경보가 발효된 7일 오전 부산 북구 만덕동 남해고속도로 진입구간에서 토사가 유출돼 도로가 침수되면서 차량들이 힘겹게 이동하고 있다. 사진=부산경찰청

[이코리아] 지난 8월 중부지방을 덮친 집중호우와 9월 태풍 힌남노로 인한 타격이 이어지면서, 기후변화로 인해 보험사 손실이 증폭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기후변화로 자연재해 빈도가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보험사도 더욱 커진 사회적 역할에 맞게 대응력을 키워야 한자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손해보험업계에 따르면, 국내 11개 손해보험사의 지난달 평균 자동차보험 손해율은 88.3%로 전년 동월(80.5%) 대비 7.8%p 증가했다. 8월 중부지방을 강타한 집중호우의 영향으로 침수피해가 급증했기 때문. 이달 태풍 힌남노로 인해 남부지방이 큰 피해를 입은 것을 감안하면 손해율은 더욱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당장 폭우로 인한 손보사의 손실은 실적에 큰 타격을 입힐 만큼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 실제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8월 집중호우로 인한 손보사 손해액은 약 400억원 규모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손보사 대부분이 재보험에 가입했기 때문에, 실제 부담하는 손해액은 총 피해액의 28.2% 수준에 그쳤기 때문. 이로 인한 자동차보험 손해율 상승폭은 연간 0.2%p 정도다. 

◇ 보험사, 기후변화 잠재적 리스크는?

하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 빈도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임을 감안할 때 보험사가 완전히 마음을 놓기는 어렵다. 홍수, 가뭄, 화재 등 이상기후로 인한 자연재해가 늘어날수록 보험사의 손실이 커지는 것은 불가피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실제 글로벌 재보험사 스위스리(Swiss Re)는 지난해 4월 ‘기후변화의 경제학: 무대응은 선택지가 아니다’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내고, 기후변화로 인해 폭염, 산불, 가뭄, 집중호우 등의 자연재해가 빈번해지면서 보험금 청구가 급증하는 것을 보험업계의 위험 요인으로 지목한 바 있다. 또한, 영국 보험사 로이드(Lloyd’s)도 지난 2014년, 1980년대에는 연간 500억 달러 수준이었던 기후변화 관련 손해액이 최근 10년간 2000억 달러까지 증가했다고 밝힌 바 있다. 

생명보험사들도 기후변화 리스크에서 예외는 아니다. 보험연구원 손민숙 연구원은 지난 2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기후변화로 인한) 매개 전염성 질병 증가, 대기 질 저하, 급격한 온도 상승, 물과 식품의 오염, 정신 건강 등에 대한 영향은 사망률과 질병률을 증가시킬 수 있다”며 “또한 생계 수단 및 주거 안전, 의료 및 사회적 지원에 대한 접근성 등과 같은 사회적·환경적 결정요인에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 기후변화로 인해 건강 관련 비용이 증가할수록 생보사의 손실도 늘어날 수 있다는 것.

기후변화로 인한 보험업계의 잠재적 위험는 높은 손해율뿐만이 아니다. 기후변화로 인해 각국 정부가 탄소중립 정책을 추진함에 따라, 화석연료 등 고탄소배출 산업에 속한 기업의 가치는 이전보다 낮게 평가될 수 있다. 만약, 보험사의 자산 포트폴리오에서 고탄소배출 기업 관련 자산의 보유 비중이 높다면, 향후 보유자산 가치 하락으로 인해 손실을 입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아직 국내 보험사들은 이러한 위험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다수의 보험사들이 탈석탄을 선언했지만, 구체적인 투자 기준과 달성 시점을 제시한 곳은 드물기 때문. 금융사 탈석탄 정책 데이터베이서 ‘FFOC’에 따르면, 국내 보험사 중 2050년까지 자산 포트폴리오의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곳은 푸르덴셜생명보험, KB생명보험, 신한라이프, KB손해보험 등 4개사뿐이다. 석탄 관련 기업을 투자 대상에서 배제하겠다며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한 곳은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등 두 곳에 불과했다.

◇ 보험사, 친환경 투자·상품개발 나서야...

기후변화로 인한 위험이 증가하는 만큼, 보험사에게 주어진 사회적 역할은 더욱 확대될 수밖에 없다. 보험연구원 임준 연구위원은 지난 19일 발표한 ‘기후변화로 인한 홍수재해 대비 방안’ 보고서에서 “기후변화로 인해 홍수재해의 빈도와 심도가 증가하게 되면 홍수재해의 사후 복구에 있어서 국가 재정의 한계는 더욱 분명해질 것”이라며 “보험산업의 경우에는 기후변화로 인해 새로운 시장 기회가 주어짐과 동시에 위험관리자 및 사회안전망으로서의 역할에 있어서 더 큰 책임을 요구받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임 연구위원은 “보험산업이 개인이나 정부 등 다른 주체에 비해 강점을 가지고 있는 분야 가운데 하나는 위험 평가”라며 “자연재해와 관련된 위험을 평가해서 개인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세계 최대 재보험사인 독일 뮤니크리는 사내 과학연구 부서를 신설하고 기상학자와 지질학자를 고용해 자연재해 관련 위험 예측 방법론을 개발했다. 이는 뮤니크리가 자연재해로 인해 입을 손실을 줄이기 위한 시도였지만, 이후에는 호주에 해당 부서 직원을 파견해 현지 손보사들의 언더라이팅 역량을 높이는 등 보험산업 전반을 위한 긍정적인 효과로 작용했다.

친환경 기업에 대한 장기투자나 친환경 보험상품을 적극 추진함으로서, 수익성도 제고하고 보험사의 사회적 책임 또한 수행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조언도 나온다. 실제 국내에서도 NH농협생명이 대중교통 사고 보장금액을 높이거나 친환경 차량의 보험료를 할인해주는 등의 새로운 보험상품을 출시해 기후위기에 관심이 높은 금융소비자들의 관심을 모은 바 있다. 

삼성화재 또한 지난 7월 ESG 보고서를 통해 오는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관련 투자를 10.5조원 규모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기후변화를 맞아 국내 보험업계가 위험요인을 최소화하고 새로운 시장기회를 확보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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