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채널A 방송화면 갈무리
사진=채널A 방송화면 갈무리

[이코리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장례식 비용을 두고 국내에서 때아닌 논란이 벌어졌다. 외신의 추정치를 전한 국내 언론의 보도에 대해 ‘오역’이라는 비판이 제기된 것. 

채널A는 지난 18일 저녁 뉴스에서 영국 여왕 장례식 소식을 전하며 “국장과 새 국왕의 즉위식을 포함해 최대 9조원이 들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고 보도했다. 채널A는 “물가가 천정부지로 뛴 가운데 세계 각국 정상들의 대거 참석으로 경호 비용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라며 “1965년 윈스턴 처칠 전 총리 이후 57년 만에 치러지는 국장이지만 엄청난 장례 비용에 싸늘한 시선도 새어 나온다”고 전했다.

그러자 채널A가 외신을 오역해 잘못된 정보를 전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외신에서는 장례식 비용을 900만 달러(9 million)로 추정했는데, 채널A가 이를 90억 달러(9 billion)로 오해했다는 것. 실제 채널A 유튜브 채널에 게시된 해당 영상에는 “지적해줬는데 왜 안 고쳐요. 9조가 아니에요”, “방송사 노동자들 실수가 너무 많아요. 좀 더 관리하고 쉬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등의 댓글이 달렸다. 

 

사진=뉴스닷컴 홈페이지 갈무리
사진=뉴스닷컴 홈페이지 갈무리

◇ “여왕 장례식 비용 9조원”은 오보?

이번 논란은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로 확산됐다. 다수의 커뮤니티 회원들은 기초적인 단어조차 제대로 번역하지 못했다며, 방송사를 향해 조롱의 댓글을 남기고 있다. 

그렇다면 누리꾼들이 비판한대로 채널A는 정말 외신을 오역해 오보를 낸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해당 기사는 오보가 아니다. 오히려 이번 논란은 누리꾼들이 서로 다른 외신 보도를 혼동해 발생한 해프닝에 가깝다.

누리꾼들이 “채널A가 오역한 기사”라고 지목한 것은 호주매체인 뉴스닷컴(News.com.au)이 지난 18일(현지시간) 보도한 “영국 여왕의 장례식 비용은 900만 달러 이상; 웨스트민스터 수도원이 선택된 이유(Queen’s funeral to cost UK over $9m; why Westminster Abbey was chosen)”라는 제목의 기사다. 뉴스닷컴은 해당 기사에서 “영국 정부가 비용을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열흘간의 장례식 비용은 900만 호주 달러($A)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유튜브 댓글에 오역 의혹을 제기한 누리꾼은 이를 미국 달러로 오해하는 바람에, 뉴스닷컴의 추정치가 한화로 약 120억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뉴스닷컴의 추정치는 900만 호주 달러로, 우리 돈으로 약 84억원에 해당한다. 

 

사진=AJ+ 트위터 갈무리
사진=AJ+ 트위터 갈무리

장례식 비용을 900만 미국 달러로 추정한 매체도 있다. 아랍권 매체 알자지라가 운영하는 소셜미디어 ‘AJ+’는 지난 14일 트위터를 통해 “치솟는 생활비와 경기침체 우려 속에서 영국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례식에 900만 달러($)를 지출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뉴스닷컴의 기사가 이보다 나중에 보도된 만큼, 뉴스닷컴이 AJ+의 주장을 인용하는 과정에서 미국 달러를 호주 달러로 바꿨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채널A가 인용한 ‘9조원’이라는 추정치의 근거는 무엇일까? 이는 호주가 아닌 인도 언론에서 제시한 수치로 이미 채널A 방송 전 다수의 국내 언론이 인용했다. 뉴스1은 채널A 방송 5일 전인 지난 13일 기사에서 “이코노믹타임스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장례식과 이후 열릴 찰스 3세의 대관식에 60억 파운드의 비용이 들 수 있다고 전망했다”고 보도했다. 한국일보 또한 16일 “장례식과 이후 예정된 찰스 3세 대관식에 직접 드는 비용만 60억 파운드, 우리 돈으로 9조원이 넘을 것이라는 분석마저 나왔다”고 전하며, 인용 출처를 ‘인도 이코노믹타임스’라고 명시했다.

실제 인도 이코노믹타임스는 지난 12일 “사망한 국가 원수의 장례식과 (새 왕의) 대관식에만 60억 파운드의 막대한 비용이 들 것”이라며 “하지만 이는 조직변화에 쓰일 비용과 비교하면 여전히 적은 편”이라고 보도했다. 60억 파운드는 우리 돈으로 약 9조5000억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채널A는 방송에서 구체적인 출처를 밝히지는 않았으나, 해당 보도를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인도 이코노믹타임스 홈페이지 갈무리
사진=인도 이코노믹타임스 홈페이지 갈무리

◇ 여왕 장례식, 정확한 비용은 얼마일까?

이러한 논란이 발생한 이유는 외신들이 저마다 불확실한 근거로 여왕 장례식 비용에 대한 추정치를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추정된 수치도 수십억원에서 수조원으로 제각각이다. 

영국의 팩트체크 전문 비영리단체 ‘풀팩트’(Full Fact)는 지난 16일 인도 이코노믹타임스의 추정치(60억 파운드)에 대해 “장례식과 찰스 왕의 대관식으로 인해 영국 은행들이 이틀간 휴무에 들어간 것이 영국 경제에 미치는 손실을 반영한 수치”라며 “하지만 이는 장례식 및 대관식과 직접 관련된 비용을 정확히 반영하지 않으며, 최근 왕실 장례식 비용보다 수백 배나 더 많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AJ+의 추정치(900만 달러)에 대해서는 “해당 수치를 입증할 어떤 근거도 찾지 못했다”며 “다만 과거 왕실 장례식의 대략적인 비용과 비슷하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영국 여왕의 장례식에 드는 비용은 정확히 얼마일까? 영국 정부가 구체적인 수치를 밝히지 않아, 어떤 외신의 추정치가 사실에 가까운지 확인하기는 어렵다. 다만 과거 왕실 행사나 국장 등에 쓰인 금액을 통해 이번 여왕 장례식 비용을 대략 추정해볼 수는 있다. 풀팩트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지난 1965년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의 장례식에 약 4만8000 파운드가 사용됐다고 밝혔다. 이 금액을 현재 물가로 환산하면, 2022년 기준 약 100만 파운드(약 16억원)에 해당한다. 

1997년 다이애나비 장례식 비용은 약 400~500만 파운드로 추산되는데, 이는 현재 물가로 약 700~800만 파운드(111~127억원) 정도다. 2002년 엘리자베스 2세의 모후 장례식에는 540만 파운드(현재 약 840만 파운드, 134억원)의 비용이 들었으며, 2013년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 장례식에는 320만 파운드(현재 약 380만 파운드, 60억원)가 들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례식의 경우, 기존 왕실 행사에 쓰인 것보다는 더 큰 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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