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스트레스 테스트 모형. 자료=금융감독원
기후 스트레스 테스트 모형. 자료=금융감독원

[이코리아] 국내 금융사의 기후위기 대응 능력을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금융당국이 관련 절차를 추진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금융감독원은 국내 10개 은행 및 보험사 등이 참여하는 ‘기후 시나리오 공동 작업반’을 구성하고 지난 19일 첫 회의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이는 기후변화에 따른 금융리스크 관리를 위해 국내 자연환경 및 탄소중립정책 등에 기반한 기후 시나리오를 개발하고, 그에 따른 기후 스트레스 테스트를 진행해 국내 금융사들의 기후위기 대응 능력을 평가하기 위한 조치다.

금융권은 이미 기후변화를 직접적인 리스크로 인식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10월 발표한 ‘기후변화와 한국은행의 대응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변화가 금융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은 크게 물리적 리스크와 이행 리스크로 나뉜다. 물리적 리스크는 이상기후로 인해 자연재해의 빈도와 규모가 늘어나면서 경제에 미치는 위험을, 이행 리스크는 녹색경제로의 전환 과정에서 고탄소배출 기업 등의 수익과 비용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뜻한다. 

금융사는 물리적 리스크 따른 담보자산 및 채권 가격 하락, 보험 손해율 상승 등의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또한, 고탄소 배출기업 관련 자산의 보유 비중이 높은 금융사는 해당 기업의 주식 및 회사채 가치가 급락하거나 연체율이 높아지는 등 이행 리스크로 인한 손실도 입을 수 있다. 

기후 스트레스 테스트는 기후변화로 인한 충격을 시나리오로 설정하고, 해당 시나리오에 따른 금융산업의 영향을 분석하는 작업이다. 이미 해외 주요 감독당국은 자체적으로 기후 시나리오를 개발해 역내 금융사를 대상으로 스트레스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실제 유럽중앙은행은 지난 7월 역내 은행을 대상으로 한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무질서한 이행 및 장기적인 가뭄·폭염·홍수 등을 가정한 물리적 리스크 시나리오에서 41개 유로존 은행의 전체 신용 및 시장손실은 약 700억 유로(약 97조원)로 추산됐다.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 또한 지난 5월 영국 내 7개 은행 및 12개 보험사를 대상으로 한 기후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영란은행은 ▲조기대응 ▲지연대응 ▲무대응의 3가지 시나리오에서 2050년까지 30년간 기후변화가 금융시스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했는데, 금융권이 기후위기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다면 연평균 수익의 10~15%가 감소할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특히 은행의 경우 3개 시나리오에서 모두 신용손실에 크게 증가하며, 기후위기 대응이 늦어지면(지연대응) 조기대응 시나리오 대비 손실 규모가 약 30%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에서는 아직 금융사를 대상으로 한 기후 스트레스 테스트가 진행된 적이 없다. 다만 한은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기후변화 이행리스크와 금융안정’ 보고서에서 향후 지구 평균온도 상승폭이 ▲1.5℃ 이하인 경우 ▲1.5~2℃인 경우의 두 가지 시나리오로 나눠 기후변화로 인한 은행권의 손실 규모를 추정한 바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은행의 자산 포트폴리오가 변하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고탄소배출 산업 관련 금융자산 가치 하락으로 인해 오는 2050년 국내은행의 자기자본비율(BIS 비율)은 2020년말 대비 2.6%p∼ 5.8%p 하락할 것으로 추정됐다.

한은은 “은행들이 이행 리스크에 선제적으로 대응해나가지 않을 경우 이행 리스크에 취약한 자산에서 부실이 발생하며 큰 폭의 손실을 입을 수 있다”며 “은행들이 내부 자본적정성 평가(ICAAP)에 기후변화 요소를 반영하고 이행 리스크에 취약한 자산에 대해 리스크 관리를 강화해 나갈 경우 이행 리스크가 금융안정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큰 폭으로 축소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금감원은 이번 기후 시나리오 공동 작업반을 통해 기후변화의 물리적 리스크와 이행 리스크를 모두 평가할 수 있는 기후 시나리오를 개발하고 스트레스 테스트를 실시할 방침이다. 금감원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국제협의체’(NGFS)가 제공하는 6가지 표준 기후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정부의 탄소중립정책 및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는 자연재해 등을 감안해 기후 시나리오를 구체화하기로 했다. 

금감원은 “공동작업반 운영을 통해 기후 시나리오 분석 및 스트레스 테스트가 실시될 경우, 향후 금융회사의 주요 잠재위험요인 중 하나인 기후리스크에 대한 측정 및 관리체계 마련을 위한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