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서울교통공사 역무원 스토킹 살인사건이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 앞에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18일 오전 한 시민이 추모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14일 서울교통공사 역무원 스토킹 살인사건이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 앞에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18일 오전 한 시민이 추모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으로 인해 피해자 보호조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이번 사건은 피해자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던 가해자에 의해 살해당한 경우인 만큼, 구속 사유에 ‘보복범죄’를 포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경찰은 지난해 10월, 신당역 살인 사건의 범인인 서울교통공사 직원 A씨가 불법 촬영·협박 혐의로 처음 고소됐을 당시 법원에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서울서부지법은 이를 기각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보복범죄 위험을 고려하지 않은 법원의 안이한 판단으로 인해 안타까운 죽음을 막을 기회를 놓쳤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문제는 현행법상 ‘보복범죄’는 독립적인 구속 사유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형사소송법 70조는 ▲일정한 주거가 없거나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거나 ▲도망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는 피고인에 대해서만 구속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물론 70조 2항에는 “구속사유 심사 시 범죄의 중대성, 재범의 위험성, 피해자 및 중요 참고인 등에 대한 위해 우려 등도 고려해야 한다”는 내용도 명시돼있다. 하지만 이는 단순 고려사항으로 다뤄질 뿐, 앞의 세 가지와 같은 독립적 구속 사유로 고려되지는 않는다. 

법원의 ‘인신구속사무의 처리에 관한 예규’에도 증거인멸과 도망우려에 대한 판단 기준은 어느 정도 구체적으로 규정돼있지만, 피해자에 대한 보복 우려에 관한 내용은 들어있지 않다. 검찰과 달리 피의자의 인권 또한 고려해야 하는 법원은 인신구속 기준을 최대한 엄격히 적용하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보복범죄로 인한 피해가 늘어나면서 법원 또한 피해자에 대한 위해 우려를 독립적 구속사유에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김혁 부경대 법학과 교수가 지난해 발표한 ‘보복범죄 방지와 범죄피해자 보호를 위한 구속제도의 재설계’ 논문에 따르면, 2016년 326건이었던 보복범죄 발생건수는 2017년 253건으로 감소한 이후 다시 증가 추세로 전환해 2020년 293건까지 늘어났다. 특히 2020년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전체 범죄 발생건수가 161만1906건에서 158만7866건으로 감소했지만, 보복범죄는 오히려 292건에서 293건으로 소폭 증가했다. 

보복범죄의 피해 강도 또한 높아지고 있다. 2016년에는 보복살인 등 피해자가 사망에 이르는 사건이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지만 2018년 1건, 2019년 2건, 2020년 3건 등 3년간 지속적으로 발생하면서 보복범죄의 심각성이 더욱 악화되는 추세다. 김 교수는 “보복범죄는 원 범죄(1차 범죄)의 피해자 등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여 재차 피해가 발생한 사안”이라며 “보복범죄의 증가는 원 범죄에 대한 피의자의 신병처리의 타당성 여부를 의심스럽게 하는 수치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타당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요 선진국은 이미 피해자 위해와 관련된 내용을 독립된 구속 사유로 인정하는 추세다. 실제 프랑스의 경우 형법에 ▲피의자 보호 ▲범죄 피해로 인한 공공질서 혼란 등을 구속 사유로 명시하고 있으며, 독일 또한 성폭력, 스토킹, 마약류와 관련된 특정 범죄에 대해서는 ‘재범의 위험성’을 구속 사유로 인정하고 있다. 미국 또한 피의자가 증인이나 배심원에게 위해를 가할 우려가 있는 경우, 검사의 요청이 없더라도 판사가 직권으로 보석을 제한할 수 있다. 일본은 ‘피해자에 대한 위해 우려’를 구속 사유로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실질적으로는 이를 증거인멸 우려를 판단하는 요소 중 하나로 다루고 있다. 

김 교수는 “해외 입법례에서도 재범의 위험성이나 피해자 등 위해 우려는 독자적인 구속사유로 규정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피해자 보호를 위하여 필요한 구속사유를 추가함으로써 보석의 불허사유와 구속사유를 균형 있게 규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일선 수사를 담당하는 경찰 내부에서도 보복범죄를 구속사유에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염윤호 부산대 공공정책학부 교수가 최근 발표한 ‘피해자 신변보호 제도 개선에 대한 경찰관의 인식 연구’ 논문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경찰 3171명에게 설문을 진행한 결과 2652명(83.6%)가 ‘피해자 및 중요 참고인 등에 대한 위해 우려’를 독자적 구속사유로 입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이 가운데 “피해자에 대한 보복범죄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는 응답이 1122명(42.4%)로 가장 많았으며, “검사·판사가 피해자에 대한 위해 우려를 실질적으로 고려하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응답도 872명(33%)으로 적지 않았다. 

신당역 사건으로 법원에 대한 비판 여론이 확산되고 있는 만큼 국회가 입법 논의에 적극 나설 것이라는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실제 국회에는 이미 보복범죄 우려를 구속사유에 추가하는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양기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7월 발의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피고인이 피해자 및 중요 참고인 등을 위해할 우려가 있는 때”를 고려사항에서 구속사유로 변경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만 보복범죄 가능성이 구속사유에 포함될 경우 자칫 피의자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실제 양 의원은 “보복범죄 우려에 대한 주관적인 판단과 피고인 인권침해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법안이 통과 된 후 유예기간 동안 제도적 보완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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