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현 금융위원장이 2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금융규제혁신회의 제2차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2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금융규제혁신회의 제2차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금융당국이 빅테크의 보험상품 비교 서비스를 허용하겠다고 밝히면서, 보험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빅테크의 보험시장 진출로 금융소비자에게 더 많은 선택권을 보장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높지만, 새로운 규제 없는 금산분리 완화는 소비자 보호 문제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3일 정부 서울청사에서 열린 ‘제2차 금융규제혁신회의’에서 플랫폼 금융서비스 활성화 방안 및 규제 샌드박스 내실화 방안을 심의했다. 금융위는 이날 마이데이터사업자, 전자금융업자가 복수 보험사의 보험상품을 비교·추천하는 온라인 서비스를 시범 운영할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앞서 금융당국은 지난해 9월 네이버파이낸셜, 카카오페이 등 온라인 플랫폼의 금융상품 비교·추천 서비스를 광고가 아닌 중개에 해당한다는 판단을 내린 바 있다. 전자금융업자인 빅테크의 경우 보험중개업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사실상 보험상품 비교 서비스를 금지한 셈이다.

하지만 금융위는 23일 회의에서 금융소비자의 선택권을 강화한다는 이유로 온라인 플랫폼의 금융상품 중개를 허용하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금융위는 “현재 대출상품 외에는 온라인 플랫폼의 특성을 고려한 등록제도 등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서비스가 곤란한 상황”이라며 “소비자 편익 증가를 고려해, 예금, 보험, P2P 상품에 대한 온라인 판매중개업의 시범운영을 허용하겠다”고 설명했다. 

다만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보험상품 중개의 경우 불완전판매 등의 문제가 발생할 위험이 큰 만큼, 종신, 변액, 외화보험 등 상품구조가 복잡하거나 고액계약 등 불완전판매 우려가 큰 상품은 제외하고, 허용되는 보장범위 내에서는 대면용, TM용, CM용 상품 모두 취급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실제 빅테크의 진출이 금융소비자의 편익을 증대시킨다는 주장은 이전부터 제기돼왔다. 황인창 보험연구원 디지털혁신팀장은 지난해 7월 발표한 ‘빅테크의 보험업 진출에 대한 기대와 과제’ 보고서에서 “새로운 사업모형을 가진 빅테크의 보험시장 진입은 다양한 보험상품 및 서비스 개발, 기업 간 협쟁(Copetition)을 통한 효율성 제고 등 보험산업 내 경쟁 강화를 통해 보험시장 혁신을 유도하고 소비자 후생을 증대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만약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다양한 보험사의 상품을 한눈에 비교할 수 있고 소비자의 필요와 특성에 따라 가장 적합한 상품을 추천받을 수 있게 된다면, 보험사와 소비자 간의 정보 불균형으로 인한 문제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다.

문제는 빅테크와 경쟁에 나서야 할 보험업계의 우려가 작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 정희수 생명보험협회장, 정지원 손해보험협회장 및 생보·손보사 각 6곳의 최고경영자(CEO)들은 지난 22일 국민의힘과 간담회를 열고, 빅테크에 대한 합리적인 규제체계 마련을 요청한 바 있다. 이 자리에서 정희수 생명보험협회장은 “저출산, 고령화, 금리상승 등으로 생보헙이 어려운 경영환경에 직면했다”며 “여기에 빅테크까지 진출한다고 하니 아마 CEO들의 걱정이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험대리점 업계는 더욱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보험대리점협회와 보험대리점업계 및 보험영업인노동조합연대는 지난 22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집회를 열고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골목상권 침해 및 보험시장 잠식을 초래하고 불공정 경쟁을 유발하며 45만 보험영업인의 일자리를 빼앗는 온라인플랫폼 보험대리점 진출은 반드시 철회되어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금융당국이 보험대리점 업계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은 채 온라인 플랫폼의 보험대리점 진입을 추진하고 있다며, ▲혁신금융을 표방한 거대자본의 수익사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우려 ▲차별성 없는 혁신으로 기존 모집채널과의 갈등 야기 ▲45만여명의 보험대리점과 설계사의 생존을 위협하고 고용감소를 야기 ▲우월적 지위로 독과점 및 골목상권 침해, 불공정경쟁 우려 등을 반대 이유로 제시했다.

빅테크의 보험업 진출로 인해 새로운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황인창 보험연구원 디지털혁신팀장은 “(빅테크의 보험시장 진입은) 시장경쟁·금융안정성·소비자보호 측면에서 새로운 유형의 리스크를 발생시켜 시장실패 가능성도 동시에 높인다”라며 “빅테크 사업모형의 특성상 소수에 의한 지배적 플랫폼이 구축되기 쉬워 불공정경쟁 및 독과점이 발생해 시장효율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금융당국이 빅테크의 보험시장 진출에 앞서 규제 기준을 다듬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유럽연합(EU)의 경우 지난 2018년 보험상품판매지침을 통해 인터넷 등 매체를 활용한 보험상품 비교 및 정보제공 등의 행위 또한 ‘보험판매’에 해당된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비보험사가 보험을 판매하려면 보험중개인으로 등록해 적절한 규제를 받도록 했다. 통일된 기준을 세워 빅테크와 보험업계 간의 불필요한 갈등을 예방한 셈이다. 

한편,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이날 회의에서 “규제혁신 과정에서 이해관계의 충돌이 불가피하게 발생하지만, 규제혁신의 지향점은 소비자를 위한 혁신”이라며 “이번 조치로 디지털 전환 부문에서 금융회사, 핀테크, 빅테크 간의 건전한 경쟁을 통해 자율적인 혁신이 일어나고 소비자 편익이 크게 증대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빅테크의 보험시장 진출로 인한 리스크는 줄이고 소비자 편익은 최대화하는 해법을 제시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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