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미국이 새로 만든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IRA)’엔 미국 땅에서 조립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준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우리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할지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당장 보조금을 못 받게 된 현대자동차는 미국에 전기차 공장을 짓는 시기를 앞당기기로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상·하원을 통과한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서명했다. 이번 법안에는 전기차 보급 확대를 위해 중고차에 최대 4000달러(약 535만원), 신차에 최대 7500달러(약 1004만원)의 보조금(세액공제)을 지원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단 미국 현지에서 생산되는 전기차에만 혜택을 주기로 했다. 미국은 이를 통해 2030년까지 자국 내 신차 판매 중 전기차 비중을 50%로 높일 계획이다.

이 법안에 따르면,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가 배터리 관련 일정 비율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에 한해 보조금이 지급된다. 배터리 광물은 미국과 FTA를 체결한 국가에서 추출·가공 또는 북미에서 재활용된 광물이어야 하고, 배터리 부품은 북미에서 제작·조립된 것에 한정한 것이다. 

또 미국에서 생산되고 일정 비율 이상 미국에서 제조된 배터리를 사용한 전기차만 혜택 대상에 포함되다 보니 국내에서 만들어 수출 중인 현대차 아이오닉5, 기아 EV6 등은 약 1000만 원 정도의 보조금 혜택에서 제외된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한국산 차량을 전기차 보조금 지원 대상에서 제외한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과 관련해 세계무역기구, WTO 제소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장관은 22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국민의힘 이인선 의원이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통상규범에 위배될 가능성이 있는지 검토하느냐는 질의에 이같이 답했다. 

이어 “IRA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며 “법이 나오자마자 통상교섭본부장 명의로 USTR(미국 무역대표부) 대표에게 WTO 규정, FTA(자유무역협정) 규정 위반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전했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또 “외교부 장관 등 여러 루트를 통해 우려를 전달하고 있다”며 “통상 담당 간부를 보내서 미국의 의사를 확인하고 다음 주에는 통상교섭본부장이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회의와 관련해 미국 출장에서 또 논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덕근 통상교섭본부장은 IPEF 의제 협의를 위해 다음 달 초 미국을 방문하는데 이때 IRA 관련 우려를 미국 측에 전달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현대차·기아가 아직 미국에서 생산 중인 전기차가 없어 경쟁력을 잃을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대차는 오는 11월 GV70 전기차, 기아는 내년 하반기 EV9을 미국에서 생산할 예정이지만 경쟁에서 이기기엔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당장 지난주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시행으로 현대·기아차의 전기차는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는 차종에서 제외되면서 아이오닉5는 테슬라 모델3보다 더 비싸졌다. 하나금융투자에 따르면 현재 미국 전기차 시장 점유율은 올해 6월 누적 기준 테슬라 72%, 현대·기아차 9%, 포드 6%, 폭스바겐 4%, GM 2% 순이다. 미국 시장에서 약진하고 있는 현대차 아이오닉5와 기아 EV6는 전량 한국에서 생산되고 있다. 

한편,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 그룹은 미국 내 전기차 전용공장 착공을 내년 상반기에서 오는 10월로 앞당기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새로 짓기로 한 현대차의 조지아주 전기차 공장은 당초 2025년 상반기 완공 및 전기차 양산이었다. 조기 착공이 실현되면 공장 완공과 주력 전기차종의 미국 내 양산 시점도 2024년 하반기로 앞당겨진다. 현대차가 착공 일정을 앞당기는 것은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23일 <이코리아>와의 통화에서 “우리 정부의 WTO 제소는 현 시점에서 필요한 액션이긴 하나 시장에서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라면서 “인플레 감축법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에 진출해 있는 약 203개의 한국 부품업체들의 전기차 부품 전환도 시급하지만 현재로서는 현대차의 미국 조지아주 전기차공장의 조기완공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다만 미국에서 생산을 늘릴 경우 국내 수출이 줄어드는 만큼 국내 자동차 생산에 타격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이 연구위원은 “국내 전체 자동차 생산량이 2021년 기준 346만대로 2011년도 최고치인 466만대 대비 120만대나 줄었는데, 이 법안의 영향으로 국내 자동차산업의 생산 및 고용 회복에 제약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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