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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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리아] 최근 국내 증권사들이 공매도 규정 위반으로 금융당국으로부터 과태료 처분을 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매도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개인투자자들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지향하는 개선 방향과 개인투자자들의 요구 사이에 차이가 있어 향후 진통이 예상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한국금융지주는 지난 1분기 사업보고서에서 자회사 한국투자증권이 지난 2월 공매도 호가 표시 위반으로 금융당국으로부터 10억원의 과태료를 부과받았다고 밝혔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 2017년 2월부터 2020년 5월까지 약 3년간 삼성전자 등 938개 종목 1억4089만주를 공매도하면서 이를 제대로 표기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 밖에도 메리츠증권(1억9500만원), 신한금융투자(7200만원), KB증권(1200만원) 등이 공매도 규정 위반으로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한국투자증권 등은 불법 공매도가 아니라 직원의 단순 실수로 인해 표기나 주문이 잘못된 것이라 해명했지만, 이번 사태로 개인투자자들이 줄기차게 요구해온 공매도 개선의 명분은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지난 8일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김주현 금융위원장에게 “불법 공매도, 불공정 거래 등 다중 피해를 일으킬 수 있는 불법 행위를 철저히 감시하고 엄단하라”고 지시했다. 

문제는 개인투자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단순히 ‘불법’ 공매도 근절이 아니라 이를 포함한 공매도 시장 전반의 규제 강화라는 것이다. 실제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이하 한투연)는 지난 4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개인투자자에게 불리한 공매도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외국인·기관투자자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한 바 있다. 구체적으로는 외국인·기관의 공매도 상환기간을 90일로 단축하고 변경하고 담보비율은 140%로 상향해 개인투자자와 동일한 수준의 규제를 받도록 하는 식이다. 

반면 정부의 공매도 개선방향은 개인투자자들의 바램과 정반대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들기 위해 외국인·기관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기 보다는 개인투자자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것. 실제 금융위는 지난달 28일 열린 ‘자본시장 민간전문가 간담회’에서 “공매도를 위한 주식차입 시 요구되는 담보비율에 있어 개인투자자(140%)와 기관(105%)간 차이도 합리적으로 조정해 나갈 계획”이라며 개인투자자의 담보 비율을 120%로 하향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물론 금융당국 입장에서도 개인투자자의 요구를 반영하기 어려운 이유는 있다. 공매도 규제 중에서도 상환기간과 담보비율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국제적인 흐름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김남종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이 지난 13일 발표한 ‘공매도 관련 해외 제도 및 거래관행 현황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해외에서는 금융당국이 차입 주식의 상환기간을 강제로 제한하는 사례가 발견되지 않았다. 대부분 거래 당사자 간 협의에 의해 상환기간이 정해질 뿐, 금융당국이 규제를 통해 개입하는 경우는 없다는 것. 실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나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자료에는 증권대차 거래에 고정된 상환기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명시돼있다.

담보비율 또한 마찬가지다. 미국의 경우 증권대차 거래 개시를 위해 원칙적으로 150%의 담보비율이 적용되지만, 일정 요건을 갖춘 기관투자자에 대해서는 해당 규정의 적용을 면제할 수 있다. 김 연구위원은 “차입 주식 가치의 담보자산 유형, 담보 통화의 종류, 차입 주식의 변동성 등에 따라 가산되는 마진의 폭이 달라질 수 있으며, 통상적으로 102%, 105%의 담보비율이 거래 표준으로 제시된다”고 설명했다.

김 연구위원은 이어 “공매도의 순기능 강화와 개인투자자들의 신뢰 회복을 위해 무차입 공매도 등 불법 공매도 근절을 목표로 투명성 제고 노력을 지속해야 할 것”이라면서도 “상환기간, 담보비율 등 구체적 사안에 관해서는 글로벌 정합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외 규제 및 글로벌 스탠다드를 정확히 파악하고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금융권에서는 이전부터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을 위해 공매도 전면 재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돼왔다. 이미 코로나19 이후 가장 오래 공매도를 금지해온 국가인 한국이 향후 상환기간·담보비율 규제까지 강화할 경우 글로벌 금융시장과의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런 상황인 만큼 금융당국으로서도 (외국인·기관) 규제 강화보다는 (개인) 규제 완화로 공매도 개선 방향을 잡을 수 밖에 없다는 것.

다만 개인투자자들의 반발이 거센 만큼, 금융위가 제시한 방향대로 공매도 제도 개선을 추진할 수 있을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다. 실제 한투연은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장인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주식담보비율과 상환기간을 외국인·기관·개인 모두 130%, 90~120일로 통일하는 내용의 개선안을 제출했다. 공매도 논의가 9월 정기국회로 넘어가게 되면, 개인투자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된 개선안이 쟁점으로 부상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금융당국이 공매도 개선 방향을 둘러싼 잡음 속에서 어떤 해법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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