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리아] 금융당국이 미뤄왔던 가상자산 법제화에 나서기로 했다. 루나 사태 등으로 가상자산 시장에서의 소비자 보호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만큼, 투자자들의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지난 8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업무보고에서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금융위는 “가상자산 시장이 투자자 신뢰를 토대로 책임있게 성장하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겠다”며 “증권형 토큰은 자본시장법 규율 정비를 통해, 그 외 디지털자산은 기본법 마련을 통해 일관된 규율체계를 확립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국내에는 가상자산과 관련된 각종 사고 및 분쟁에 대응하기 위한 법률이 제정되지 않은 상태다. 지난해 3월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금법) 개정안이 시행됐지만, 자금세탁을 방지하기 위한 법안으로 투자자 보호와는 관련이 없다. 법률 공백이 계속되는 동안 가상자산 시장에서는 각종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했고, 지난 5월에는 루나 폭락 사태까지 발생하면서 투자자들의 피해가 확산됐다. 이 때문에 투자자들은 가상자산 시장을 규제할 업권법의 제정이 시급하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해외에서는 유럽연합(EU)을 필두로 가상자산 규제법 제정이 빠르게 추진되고 있다. 실제 EU는 지난 6월 30일(현지시간) 가상자산 규제 법안 ‘미카’(MiCA, Markets in Crypto Assets) 제정에 합의했다. 아직 구체적인 내용이 전부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충분한 합의를 거쳐 오는 2024년 시행될 예정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또한 지난 3월 가상자산 관련 미 연방정부 기관의 공조를 촉구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으며, 미카 합의가 발표된 6월 30일에는 금융당국 관계자들과 스테이블코인 규제 입법에 대해 논의하기도 했다. 

반면 국내에서는 아직 금융당국의 관리·감독보다는 가상자산 사업자의 자율 규제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실제 지난 6월 13일 열린 ‘가상자산 시장의 공정성 회복과 투자자 보호’ 당정 간담회에서는 시장의 자율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내용이 주로 논의됐다. 실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가상자산 시장의 복잡성, 예측이 곤란한 환경 등을 고려할 때 민간 전문가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한 시장 자율규제의 확립이 보다 강조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금융위가 국회 정무위원회에 제출한 ‘가상자산 이용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기본 방향 및 쟁점’ 보고서 또한 비슷한 내용이다. 법률에는 투자자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규제만 담고, 민간협회를 통한 자율규제와 분쟁조정으로 투자자 피해를 예방하자는 것. 보고서 내용이 논란이 되자, 금융위는 해당 보고서가 전문가 의견을 종합한 것이지 금융위 공식 입장은 아니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물론 국회에도 가상자산 투자자들의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다양한 법안이 발의돼있다.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가상자산 관련 제정법 7건 및 전자금융거래법·특정금융정보법 등의 개정안 6건 등 지난해에만 총 13건의 법안이 발의됐다. 이 법안들은 모두 가상자산 사업자의 불공정거래행위를 규제하고, 해킹 및 전산장애 등의 사고로 발생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규정하는 등 투자자 보호를 위한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 가상자산 관런 법안들은 아직 소관위 문턱을 넘지 못한 상태다. 하지만 금융위가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을 추진하기로 한 만큼 멈춰있던 논의가 재개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기존에 발의된 법안에도 구멍이 있는 만큼, 투자자 보호를 위해 향후 논의 과정에서 해외 법제를 충분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를 들어, 현재 발의된 가상자산 업권법에는 대부분 백서를 공시 대상으로 지정하는 등의 공시 관련 규정이 포함돼있으나, 가상자산 발행인을 공시 주체로 지정한 경우는 드물다. 반면 EU의 가상자산 규제안 ‘미카’에는 발행인을 공시 주체로 지정하는 한편, 백서의 내용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지고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피해가 발생하면 투자자에게 보상하도록 하는 등 더욱 강력한 규제가 포함돼있다.

한편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8일 업무보고 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EU가 ‘미카’를 발표했고, 일본도 법이 마련된 만큼 이들 법안을 우리나라 특성에 맞게 보완해 안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을 선언한 금융위가 오는 11일 열릴 제3차 민·당·정 간담회 및 디지털 자산특별위원회 출범식에서 어떤 밑그림을 제시할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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