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공동언론 발표를 통해 김진표 국회의장과의 회담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공동언론 발표를 통해 김진표 국회의장과의 회담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방한을 두고 의전 홀대 논란이 일어나 여야가 공방을 펼치고 있다. 언론 또한 이번 논란을 계기로 한미·한중 관계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보이고 있다.

앞서 펠로시 의장은 지난 3일 오후 9시 26분 경기도 오산 미 공군기지에 도착했다. 하지만 입국 당시 대통령실은 물론 국회에서도 의전 관계자가 나타나지 않아, 펠로시 의장을 홀대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어났다. 특히 TV조선이 4일 주한미국대사관 관계자가 “펠로시 의장은 한국 측 의전 관계자가 아무도 안 나온 것에 대해 매우 불쾌하게 생각한다”고 언급했다고 보도하면서 홀대 논란은 일파만파로 확산됐다.

대통령실은 논란이 커지자 4일 브리핑을 열고 “펠로시 의장 방한에 따른 공항 영접 등 제반 의전은 (상대인) 우리 국회가 담당하는 것이 외교상, 의전상 관례”라고 해명했다. 또한 윤석열 대통령과 펠로시 의장의 면담 일정이 없는 것 또한, 윤 대통령의 휴가 일정과 겹쳤기 때문이라며 미국 측에 사전에 설명을 했다고 말했다. 

국회 관계자 또한 공항에 의전 관계자가 나가지 않은 것은 “미국 측과 사전 협의된 것”이라며 늦은 도착 시간과 보안 일정 등으로 인해 영접을 나가지 않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윤 대통령은 펠로시 의장과 직접 만나는 대신 4일 오후 2시30분부터 약 40분간 서초동 자택에서 전화통화를 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은 펠로시 의장이 자유 민주주의와 인권 증진을 위해 오랫동안 헌신해 온 것을 높이 평가하였으며, 한미 간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 발전을 위해 앞으로도 변함없는 성원을 보내줄 것을 당부했다”라며 “펠로시 의장과 미 의회 대표단은 역내 평화와 안정을 위한 핵심축으로서 한미동맹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하고, 한미동맹의 발전을 위해 미 의회 차원에서도 적극 노력해 나가겠다고 했다”라고 이날 통화 내용을 전했다. 

 

3~5일 보도된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방한 관련 기사의 연관키워드 목록. 자료=빅카인즈
3~5일 보도된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방한 관련 기사의 연관키워드 목록. 자료=빅카인즈

◇ 언론이 제기한 尹-펠로시 회동 불발 이유

펠로시 의장이 방한한 지난 3일부터 5일까지 언론의 관심은 모두 펠로시 의장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중됐다. 실제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운영하는 뉴스 빅데이터 분석시스템 ‘빅카인즈’에서 ‘펠로시’를 검색한 결과 총 1843건의 기사가 보도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펠로시 의장 방한 다음날인 4일에는 의전 홀대 논란, 윤 대통령과 펠로시 의장 간의 전화통화 등 이슈가 겹쳐 하루동안 무려 807건의 기사가 쏟아졌다.

펠로시 의장 방한 관련 기사에서 가장 자주 언급된 키워드는 ‘중국’과 ‘대만’이었다. 언론은 윤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을 만나지 않기로 결정한 이유가 중국을 의식했기 때문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미국 내에서도 가장 강경한 반중 인사로 꼽히는 펠로시 의장이 지난 2일 대만을 방문해 미중 갈등이 고조된 상황인 만큼, 윤 대통령도 대중관계 악화를 고려해 직접 만남 대신 전화통화를 선택했다는 것. 

조선일보는 4일 기사에서 윤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을 만나지 않은 것에 대한 대통령실의 해명이 하루 만에 바뀌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대통령실 관계자는 전날 윤 대통령과 펠로시 의장이 만나는 일정이 없다면서, 윤 대통령의 ‘휴가’를 이유로 들었다... 그런데 하루 만에 ‘국익을 총체적으로 고려해 결정한 것’이라는 해명이 나왔다”라며 “윤 대통령이 휴가 때문에 펠로시 의장을 만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중국을 고려한 결정이라는 취지로 해석돼 또 다른 논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한겨레 등은 윤 대통령의 외교적 행보에 대한 여권 내부 비판을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4일 “대학로 연극을 보고 뒤풀이까지 하면서 미 의회 대표를 만나지 않는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라는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의 페이스북 글을 인용하며  “비판은 오히려 여권에서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경향신문은 이어 “윤 대통령의 이번 결정이 미국 보수층 등에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며 “한·미 정상회담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 등을 통해 ‘가치에 기반한 동맹’을 강조해온 윤 대통령이 막상 부담스러운 상황이 닥치자 그간 입장과 다른 행동을 보인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한겨레 또한 이날 기사에서 “여권에선 이날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8년 7월 취임 후 첫 여름 휴가 중 셰이크 나세르 당시 쿠웨이트 총리의 면담 요청으로 휴가 기간을 일주일에서 닷새로 줄였던 사례까지 회자되며, 윤 대통령이 휴가를 이유로 펠로시 의장을 만나지 않는 것은 한·미동맹 강화 기조와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이어졌다”고 보도했다.

한겨레는 이어 익명의 중진 의원을 인용해 “반도체 동맹, 한·미 군사동맹 등 현안이 얼마나 많은데 대통령이 휴가 중이라고 미국 하원의장을 만나지 않는 게 말이 되느냐”는 비판을 전했다. 

◇ 언론, “尹, 펠로시 안 만난 것 미국에 잘못된 신호”

한편 펠로시 의장 방한을 둘러싼 혼란을 두고 언론은 정부에 비판적인 논조를 보이고 있다. 특히 보수성향 매체는 윤 대통령과 펠로시 의장의 만남이 불발된 것에 대해 한미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조선일보는 4일 사설에서 “윤 대통령은 대선 과정과 취임 이후 굳건한 한미 동맹을 강조해왔다”라며 “이런 윤 대통령이 서울에 있는데도 ‘사전 양해를 구했다’며 펠로시 의장을 만나지 않는 것에 대해 일각에선 중국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이어 “중국은 우리 최대 교역국이자 북핵 문제 핵심 관련국으로 신중하게 다뤄야 할 대상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처럼 굴종적 자세로는 왜곡된 관계만 계속될 뿐”이라며 “윤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을 만나지 않는 것이 미국과 중국에 잘못된 신호를 주지는 않을지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중앙일보 또한 5일 사설에서 윤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과 만나지 않은 것에 대해 “한·미 동맹 강화를 외교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외쳐 온 윤석열 정부에서 벌어진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중앙일보는 “엊그제 서울에 도착한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동아시아 순방은 의례적 방문 일정이 아니다... 미국의 외교 전략이 고스란히 반영된 외교 일정”이라며 “(동아시아 순방 중) 대면 만남이 이뤄지지 않은 유일한 예외는 윤석열 대통령”이라고 지적했다.

중앙일보는 이어 “대통령실이 부랴부랴 윤 대통령과 펠로시 의장의 전화 통화를 마련한 것은 아무런 일정을 갖지 않기로 했던 당초 결정이 부적절했음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라며 “중국과의 관계는 우리에게 미국 못지않게 중요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다고 해서 모처럼 한국을 찾은 미국 의전서열 3위인 하원의장의 대통령 예방까지 마다할 이유는 없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