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영국은 소년범죄 엄벌정책 궤도 수정, 반면 교사 삼아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9일 오후 경기 과천시 법무부 청사로 들어서며 촉법소년 연령 하향 추진 관련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9일 오후 경기 과천시 법무부 청사로 들어서며 촉법소년 연령 하향 추진 관련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촉법소년 연령을 하향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소년범죄 처벌 수위가 다시 사회적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 

앞서 한 장관은 지난 8일 법무부 주례 간부 간담회에서 촉법소년 연령 기준 현실화를 추진하기 위해 관련 사안을 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 한 장관은 “소년범죄 흉포화에 대응하기 위해 연령 하향 조정뿐만 아니라 적절한 소년범 선도 및 교정교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며 관련 부서에게 종합적인 검토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형법은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청소년을 형사책임능력이 없는 ‘형사미성년자’로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해당 연령대의 청소년은 범죄를 저질러도 형사처벌 대신 감호위탁, 사회봉사, 소년원 송치 등의 보호처분을 받게 된다. 하지만 자신이 촉법소년이라는 점을 악용해 무분별하게 범죄를 저지르는 사례가 반복되면서, 촉법소년 연령을 하향하고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계속 확산되고 있다. 

◇ 아직 부실한 촉법소년 범죄 통계

촉법소년 연령 하향 조정은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형사처벌을 확대하는 조치인 만큼 명확한 근거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사회적 논의 없이 연령만 하향할 경우 자칫 ‘처벌 만능주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경찰청 통계를 보면, 촉법소년의 범죄 사례는 매년 증가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김용판 국민의힘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공받아 지난해 8월 공개한 ‘최근 5년간 촉법소년 소년부 송치현황’ 자료에 따르면, 범죄를 저지른 촉법소년의 수는 지난 2016년 6576명에서 2017년 7533명, 2018년 7364명, 2019년 8615명, 2020년 9606명으로 매년 늘어났다. 특히 2019년 각각 1건과 7건에 불과했던 살인과 강도는 2020년 8건과 42건으로 크게 늘어났다. 

촉법소년 중 강력범죄자 수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김회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공받은 ‘최근 5년간 촉법소년 소년부 송치 현황 자료’에 따르면, 살인·강도·강간·추행·방화·절도 등 강력범죄를 저지른 촉법소년의 수는 2017년 6286명에서 2018년 6014명으로 감소했으나 2019년 7081명, 2020년 7535명, 2021년 8474명으로 증가했다. 특히 최근 5년간 촉법소년 강력범죄자 중 만 13세 비중이 무려 62.7%에 달한다는 사실은 촉법소년 연령 하향을 지지하는 근거로 인용되고 있다. 

다만 경찰청 통계만으로 촉법소년의 범죄가 심각해지고 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해당 자료는 경찰에서 법원으로 송치한 건이 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지, 전체 소년보호사건의 증감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 국내에는 촉법소년의 범죄에 대한 객관적 통계자료가 부족한 상황이다. 소년보호사건의 경우 경찰에서 검찰을 거치지 않고 법원으로 곧바로 송치되거나, 시설 등에서 수사기관을 거치지 않고 법원으로 송치하는 경우가 많아 각 기관에서 촉법소년 범죄 전체를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은 지난 3월 성명을 내고 “2018년부터 경찰청 범죄통계와 대검찰청 범죄분석에서 촉법소년 통계는 완전히 제외되었고, 법원행정처 사법연감에 나타난 경찰서장 송치사건 접수내용도 촉법소년과 ‘우범소년’에 대한 사건 전부를 체계적으로 보고하고 있지 않다”며 “촉법소년의 범죄유형도 주요 강력범죄를 중심으로 한 7개 유형으로 매우 단순화되어 있는 등 사건의 규모와 특성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통계는 없다”고 지적했다. 

◇ 엄벌 vs 교화, 해외 소년범죄 대응 추세는?

일각에서는 한국의 촉법소년 연령이 다른 국가에 비해 다소 높다며 하향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 영국(10세), 캐나다(12세) 등은 한국보다 촉법소년 연령이 낮다. 하지만 독일·일본·오스트리아 등의 촉법소년 연령은 한국과 같은 만 14세이며 프랑스(13세) 또한 한국과 큰 차이가 없다. 미국은 주별로 촉법소년을 만 7~14세 사이에서 다양하게 규정하고 있다.

소년범죄에 대한 대응 방식 또한 연령 기준과 마찬가지로 국가마다 다르다. 우선 미국, 영국 등은 최근 엄벌주의 정책이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는 비판에 따라 정책을 수정하는 모양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소년사법제도 개선에 관한 기존 논의와 새로운 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강력한 처벌을 받은 소년들의 재범률이 높고 재범까지 걸리는 기간도 짧았다는 연구결과가 다수 보고되면서 ‘엄벌주의’를 수정하고 교정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바뀌고 있다. 또한, 소수인종에 대한 형사법원 이송제도의 불공정성, 소년법원의 이송재량권 남용 등의 문제가 제기되면서 소년법원 대상연령을 높이거나 형사법원으로의 이송을 제한하는 등의 변화도 나타나고 있다.

영국 또한 지난 2015년 구금시설을 나온 아이들 가운데 67%가 1년 이내에 재범한다는 통계가 발표되면서, 재범을 방지하기 위해 소년범들의 사회·시설 내 처우를 개선하는 방향의 개혁을 시작했다. 또한, 영국은 소년범의 인종·계층·가정문제·학습능력·약물남용 등에 대한 통계를 수집하고, 이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소년범죄 예방 및 조기 개입, 교육, 직업훈련 등 소년범 특성에 맞는 다양한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프랑스는 지난 2019년 처벌보다 교화의 우선, 미성년자에 대한 형사절차의 간소화, 연령에 따른 책임 경감 등을 강조하는 ‘미성년자의 형사사법 법률편에 관한 신규 법규명령’을 신설했다. 구체적으로는 13세 미만 범죄자에 대한 형사절차를 간소화하고 재판기간을 단축하며, 중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도 우선 소년범을 폐쇄형교육센터에 수용한 뒤 구금은 최후의 수단으로 삼도록 했다. 

반면 일본은 1997년 14세 중학생에 의한 고베 아동연쇄살인사건 이후 소년법 폐지 여론이 높아지면서 소년범죄에 대한 엄벌주의 정책 기조가 계속 유지되고 있다. 실제 일본은 2000년 촉법소년 연령을 기존 16세에서 14세로 하향하고, 소년원 송치 대상 또한 12세에서 11세로 낮췄다. 18세 미만에 대한 징역 상한은 15년에서 20년으로, 가석방 최소 기간은 3년에서 형기의 3분의 일로 연장됐다. 다만 국회입법조사처는 “이러한 엄벌화 정책에 대해서 일본 내에서 엄벌화 정책으로 소년범죄가 감소했다는 근거가 없고, 범죄유형으로 볼 때 절도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전체적인 범죄 경향이 나빠졌다고 보기 어렵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촉법소년의 연령을 하향하고 처벌 대상을 확대할 것인지 아니면 범죄예방을 위한 조기 개입과 재범방지를 위한 교정프로그램에 초점을 맞출 것인지에 대한 선택은 국가마다 다르며 각자의 이유와 근거를 가지고 있다. 현재 국회에 촉법소년 연령 하향을 위한 법안이 다수 발의돼있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결론이 나지 않고 있는 것 또한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한 법무부 장관이 다시 시작한 촉법소년 연령 하향 논쟁이 소년범죄에 대한 '처벌'과 '교화' 중 어느 쪽에 무게를 두고 전개될 것인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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