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만 전 국민일보 편집인.
임순만 전 국민일보 편집인.

 

[이코리아]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의 말이 거칠다. 검사 시절의 어법이 몸에 배서인지 치고받는 공박형의 대화가 자주 눈에 띄고, 대통령으로서는 격에 어울리지 않는 말이 사용된다. 

윤 대통령은 취임 한달동안 12회의 출근길 도어스테핑(door stepping 약식 회견)으로 국민과의 소통을 시도했다. 외부 일정이 없는 날을 제외하고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출근길에 출입기자들의 질문을 받은 것이다. 대통령실에서는 “중요한 소통의 장”이라고 평가한다. 동의한다. 과거에는 없었던 방식이다. 그렇다고 발언의 수준과 수위가 대통령의 언어로 적합하지 않은 것이 많은 사실까지도 괜찮다는 말은 아니다. 

윤대통령은 취임 이튿날인 지난달 11일 오전 8시34분께 청사로 들어서면서 기자들이 첫 출근 소감을 말해달라고 하자 “어제 취임사에 통합 이야기가 빠졌다고 지적하는 분들이 있는데 (통합은) 너무 당연한 거기 때문에…”라고 말했다. 현장에서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전날 취임사에서 부족했던 부분이 있다는 여론을 그렇게 해명했다. 

5월17일에는 윤재순 비서관에 대해 당에서 우려가 나오고 있다’는 질문에 윤 대통령은 “다른 질문 없죠?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고 답하며 곤란한 답변을 피해갔다. 27일에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 산하 인사정보관리단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질문에 그는 “공직자 비위 정보는 사정기관이 한다. 미국에서 하는 방식”이라고 주장했다. 

30일 ‘물가상승 압박 우려가 있다’는 질문에는 “그럼 추경 안 합니까? 영세 자영업자들 숨이 넘어갑니다.”라는 공박형 대답을 내놨다. 지난 7일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에서 벌어지고 있는 보수단체 시위를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윤 대통령은 “대통령 집무실 시위도 허가되는 판이니까 법에 따라서 되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통합 차원에서 윤 대통령이 시위대에 자제를 요청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했지만, 법을 들고나오는 윤 대통령의 발언은 냉소적으로 들렸다. 전임 대통령에 대한 예의나 피해를 호소하는 마을 주민들을 고려한 말로는 보기 어렵고 오히려 시위를 묵인하는 듯한 모호한 이런 화법에서 사람들은 대통령이 법을 앞세워 정치를 회피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8일 검찰 출신 편중 인사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과거에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출신들이 아주 도배를 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뭐 선진국에서도, 특히 미국 같은 나라보면 거버먼트 어토니(government attorney)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정관계에 아주 폭넓게 진출하고 있습니다. 그게 법치국가 아니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이 말은 과거에도 ‘민변 편중 인사’가 있었으니 별문제가 아니라는 뜻으로 들린다. 

민변이 했으니 검찰도 한다는 대응인가. 시민단체인 민변과 권력기관인 검찰을 등치시키는 발상은 편가르기로 비쳐지기 십상이다. 민변과 검찰은 성격이 다르다. 시민단체는 사회의 모든 영역에 간여할 수 있지만, 검찰이 그랬다가는 검찰공화국의 공안정국이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  소통하자는 것은 국민통합을 바라는 것인데, 과거는 민변이 했으니 이제는 검찰이 한다는 의식은 편가르기로 보이는 측면이 강하다. 

윤 대통령의 과거 감찰 징계 대리인 이완규 전 검사가 법제처장이 됐고, 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주가 조작 의혹 사건 변호인 조상준 전 검사가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에 기용됐다. 이들은 윤 대통령이 말한 ‘거버먼트 어토니’인가? 구분이 필요한 대목이다. 검찰 업무와 큰 관련이 없는 주요 보직에 검찰 출신 인사들을 대거 배치하는 것은 그만큼 편식이 심하다는 방증이다. 

과거 정권이 그렇게 했는데…라는 어법은 혐의가 있는 사람을 심문할 때라면 몰라도 통합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이 사용해서는 곤란한 말이다. 정권을 담당하게 되면 국가의 모든 일을 전적으로 무한 책임진다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이와 관련해 널리 회자되는 것이 오래 전 박지원 의원이 말했던 “경복궁이 무너지면 대원군한테 쫓아갈 거냐”는 말이다.

‘도배’라는 용어도 그렇다. 항간에서 비유적으로 쓰는 이 말은 ‘도배질’과 같은 비아냥거리는 뉘앙스를 풍긴다. 지식인들이 공식적으로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대통령이 공적으로 쓸 만큼 격을 갖춘 말이 결코 되지 못한다. 

취임 한 달을 맞은 지난 10일 윤 대통령은 국민의 힘 지도부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해 오찬 회동을 했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 5층 접견실에 들어서자마자 참석자들과 악수를 하며 “오랜만에 친정 식구들을 만난 것 같다”고 친근함을 표했다고 매체들은 전하고 있다. 전날 우크라이나에서 귀국한 이준석 대표에게는 “(우크라이는) 전쟁만 아니면 진짜 한번 가볼 만한 곳이라고 들었다. 오데사 이런 곳이 좋다면서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친정(親庭)’이라는 말은 글자 뜻대로라면 ‘고향집’ 정도의 의미이겠으나, 이 말을 남자가 쓰는 경우는 처음 보았다. 친정식구 운운하는 데서는 아군과 적군을 구별하는 불안감이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생긴다.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외국을 방문하고 온 당 대표에게 관광지를 언급한다는 것도 번짓수가 빗나간 것이 아니겠는가.

정치는 언어로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를 ‘말의 예술’이라고 하고, 그 예술은 통합을 지향해야 마땅하다. 대통령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거나 못마땅한 의견에는 자세하고 성실한 설명이 필요하고, 그 결과는 화해를 도출해 낼 수 있어야 한다. 정치는 그것을 해낼 수 있는 기술을 필요로 한다. 기자들은 국민을 대신해 질문하는 사람들이고, 기자의 힘은 질문의 힘에서 나온다. 대통령이 국민을 상대로 도전을 하거나 조폭식의 “그래서 너는?”투의 말을 사용한다면 문제를 풀 길은 막혀버린다.

대통령이 치고받는 인식을 하고 있다면 정국이 치고받는 스타일로 형성될 것이고. 설득의 사고를 하고 있다면 정국이 화협형으로 만들어질 것이다. 대통령의 치고받는 대화는 일 년에 한두 번이 나오더라도 그 여파는 대단해지기 마련이다. 한 달 새 벌써 몇 번인가. 

임순만 /작가 · 전 국민일보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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